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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열며] 대학원의 질에 국가미래 달렸다

입력
2019.11.27 04:40
3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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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우리나라의 연구개발(R&D) 지원도 대학원생이 자신의 가족을 부양할 수 있는 최소한의 삶의 조건을 보장하는 방향으로 깊어져야 한다. 그래야 형편은 어렵지만 우수한 학생에게 지도교수가 선뜻, 대학원에 와서 공부해 보지 않겠느냐고 물어볼 수 있다. 지금은 학생에게 경제적 짐을 지울까 하여 우수 인재를 보고도 진학 제의를 망설여야 하는 경우가 많다. 사진은 서울대 공대 박사과정 연구원이 실험재료를 살펴보고 있는 모습. 고영권 기자
이제 우리나라의 연구개발(R&D) 지원도 대학원생이 자신의 가족을 부양할 수 있는 최소한의 삶의 조건을 보장하는 방향으로 깊어져야 한다. 그래야 형편은 어렵지만 우수한 학생에게 지도교수가 선뜻, 대학원에 와서 공부해 보지 않겠느냐고 물어볼 수 있다. 지금은 학생에게 경제적 짐을 지울까 하여 우수 인재를 보고도 진학 제의를 망설여야 하는 경우가 많다. 사진은 서울대 공대 박사과정 연구원이 실험재료를 살펴보고 있는 모습. 고영권 기자

아직도 그 날을 잊지 못한다. 유학 중 아내의 출산일은 다가오는데, 아직 박사 과정 전액 장학금 혜택을 받지 못하는 상황이었다. 출국 전 나름 꼼꼼하게 세웠다고 생각했던 유학비 사용 계획은 첫달부터 어그러져 있었다. 그대로라면, 겨우 1년 남짓 버티고 귀국할 짐을 쌀 수밖에 없다는 위기감이 엄습했다. 도움을 요청하려 학과에 한 명뿐인 아시아계(중국인) 교수의 방을 들락거리기만 할 뿐 차마 경제적으로 어렵다는 말을 꺼내지도 못하다, 이제 더 미룰 수 없다는 생각에 진지한 태도로 절박한 유학생의 사정을 호소하려 한 날이었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교수 앞에 서니 입이 떨어지질 않는 것이다. 그냥 눈시울만 시큰해질 뿐,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그러자 그가 먼저 말을 시작한다. “난 네가 왜 찾아왔는지 알 것 같아. 아내와 유학생활 하느라 경제적으로 많이 힘들지? 중국에서 유학을 온 나도 아내와 무척 고생을 많이 했어. 자네의 성실함을 알고, 또 얼마나 경제적으로 힘들지 알기에 나와 자네 지도교수가 지난주 교수회의에서 자네의 전액 장학금과 생활비 지원을 제기했네. 모든 교수가 찬성해서 다음 학기부터는 수혜자가 될거야. 축하하네!”

그랬다. 안심하고 연구에 전념하기 위해서는 경제적 여건이 정말 중요했다. 최소한의 의식주는 걱정할 필요가 없을 정도의 생활비와, 아이가 갑자기 아플 때를 대비한 좋은 의료보험이 절박했다. 그게 갖춰지니 극단적 상황에 대한 대비에 소모되는 정신적 에너지가 온전히 연구로 모아질 수 있었다.

이제 우리나라의 연구개발(R&D) 지원도 대학원생이 자신의 가족을 부양할 수 있는 최소한의 삶의 조건을 보장하는 방향으로 깊어져야 한다. 그래야 형편은 어렵지만 우수한 학생에게 지도교수가 선뜻, 대학원에 와서 공부해 보지 않겠느냐고 물어볼 수 있다. 지금은 학생에게 경제적 짐을 지울까 하여 우수 인재를 보고도 진학 제의를 망설여야 하는 경우가 많다.

정부는 4차 산업의 제반 분야에서 최고 경쟁력을 가진 국가를 만들기 위해 연구개발 예산을 집중 지원하고 있다. 링크(LINC)사업, 소프트웨어 대학 사업, 인공지능 대학원, BK21플러스 등. 이러한 지원에서 꼭 필요한 것은 현장의 목소리다. 상위 5% 이내의 연구 업적을 보이는 인재는 대학원생이든 연구원이든 교수든 하고 싶은 연구에 망설임이 없을 정도의 집중 지원이 필요하다. 동시에, 아직은 만개하지 않았지만, 새로운 영역에 묵묵히 도전하는 인재에 대한 지원도 잊지 않았으면 한다. 벌써 20년의 역사를 갖게 된 BK21사업의 경우, 그동안 수많은 인재를 지원해서 수혜자 중 일부는 세계적인 연구성과를 내는 학자로 성장했다.

얼마 전 싱가포르의 주요 대학들, 다시 말해 싱가포르국립대, 난양공대, SUTD를 돌아볼 기회가 있었다. 싱가포르국립대의 한 강의에 참석해 보니, 경영학석사(MBA) 프로그램에 동남아시아의 엘리트 관료들과 기업인들이 한국의 IT산업에 관해 귀를 쫑긋하며 깊은 관심을 보였다. 난양공대에서는 한국인 학자들이 세계적인 학자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며 활발한 연구활동을 하고 있었고, SUTD(싱가포르기술디자인대)는 MIT의 융합학문 전통을 아시아적 문법으로 적용해 개교 10년 만에 또다른 명문대학으로 발돋움하고 있었다. 세 학교의 공통점은 역시 젊은 연구자들이 연구에만 몰입할 수 있는 환경이었다. 이제 아시아의 선도국 중 하나로 부상한 한국에는 대학원의 질에 대한 과감한 투자라는 숙제가 주어졌다. 연구에 몰입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들어 주고, 두각을 나타내거나 깊은 잠재력을 보여 주는 연구자에게는 과감히 지원을 할 수 있는 문화. 그렇게 누구나 들어오고 싶어하는 대학원을 만드는 일은 곧 과학기술과 인문사회 연구의 질적 상승을 의미한다. 거기에 국가의 미래가 달렸다.

김장현 성균관대 인터랙션사이언스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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