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비마다 ‘합의 비틀기’… 일본 꼼수 주의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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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비마다 ‘합의 비틀기’… 일본 꼼수 주의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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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11.26 0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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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가 “한국에 사죄한 사실 없다” 거듭 해명 불구 

 일본대사관 통해 사과 전달한 듯 

 위안부 합의 이후 왜곡된 언론 플레이로 한국 자극 ‘악순환’ 

김유근 청와대 국가안보실 1차장이 22일 오후 청와대에서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지소미아) 조건부 종료 유예를 발표하고 있다. 연합뉴스

한국과 일본 정부가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ㆍ지소미아) 조건부 종료 유예 결정을 둘러싸고 또다시 불신을 드러냈다. 일본 정부의 일방적인 평가와 협상 과정들이 자국 언론을 통해 여과 없이 보도되면서 양국 간 최대 현안인 강제동원 배상논의에 먹구름이 끼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온다. 외교 협상 이후 각자 자국에 유리한 해석과 평가를 내놓는 게 통상적이지만, 한일 간에는 협상 이후 일본의 언론 보도, 이에 대한 한국 정부의 반박, 일본 정부의 재반박, 양국 여론의 동요로 이어지며 협상 결과마저 위태롭게 만드는 악순환이 반복돼 왔기 때문이다. 언론을 앞세워 협상의 성과를 과장하거나 왜곡해 자국 여론을 만족시키려는 이러한 일본의 행태는 2015년 위안부 합의 이후 대부분의 양국 갈등 국면에 등장해왔다. 결국 위안부 합의 이후 대법원 강제 동원 배상 판결, 수출규제 파동, 그리고 지소미아 종료 유예에 이르기까지 양국 관계는 지속적으로 악화 일로를 걸었다. 전문가들은 일본의 ‘전술’에 휘둘려 급한 불을 끈 한일 양국의 관계가 위기에 봉착할 수 있다고 지적하고, 흔들리지 않고 대화를 통해 관계 회복을 위한 실마리를 찾는데 주력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22일 지소미아 결정 직후 일본의 ‘언론보도’를 통한 합의 비틀기는 24일 청와대 고위관계자가 아사히(朝日)신문에 보도된 “일본은 아무 것도 양보하지 않았다. 미국이 매우 강경했기 때문에 한국이 물러났다”는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의 발언을 거론하며 공론화됐다. 일본의 합의 발표에 의도적인 왜곡이 있어서 일본 측에 항의했고 사과를 받았다는 게 우리 정부의 반응이었고, 곧바로 일본은 이에 불편한 심기를 보이며 응전했다.

일본 정부 대변인인 스가 요시히데(菅義偉) 관방장관은 25일 “한국 측 발언 하나하나에 논평하는 것은 생산적이지 않다고 생각한다”면서 “어쨌든 (일본) 정부로서 사죄한 사실은 없다”고 했다. 다만 “한국 측에서 세계무역기구(WTO) 제소 절차를 중단한다는 통고가 있었다는 것을 수용해 앞으로 당국 간 대화가 이뤄질 것”이라고 말했다. 경제산업성은 전날 밤 트위터를 통해 “골자는 한국 정부와 사전에 조율한 것”이라고 반박했다.

합의 내용인 수출 당국 간 협의는 진행한다면서도 발표 내용은 한국과 조율을 거쳤고 한국에 사과한 적도 없다는 설명이다. 아베 총리의 발언도 사실상 묵인했다. 하지만 22일 외교부로 초치된 주한 일본대사관 관계자가 외무성 차관 명의로 ‘죄송하다’는 뜻을 조세영 외교부 1차관에게 전한 것으로 알려졌다. “사죄하지 않았다”는 스가 장관 해명의 신빙성을 의심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다.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22일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지소미아)의 조건부 종료 유예 발표에 대한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도쿄=교도 연합뉴스

이러한 과정은 2015년 12월 28일 한일 위안부 합의 직후 벌어진 상황과 포개어진다. 기시다 후미오(岸田文雄) 당시 일본 외무장관은 협상 타결 후 자국 취재진에게 화해ㆍ치유재단 설립에 투입되는 10억엔의 성격에 대해 “배상금이 아니다”고 못박았다. 합의문에 없는 주한 일본대사관 앞 소녀상 이전에 대해서도 “적절히 이전되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했다. 이후 일본 언론들은 일본 정부가 소녀상 이전이 정부가 10억엔을 내는 전제라는 사실을 한국으로부터 확인 받았다고 보도했다. 또 한국이 위안부 기록물의 유네스코 세계기록 유산 등재 신청을 보류하기로 합의했다고도 보도했다. 합의문의 잉크가 마르기도 전에 일본 언론이 정부 관계자를 인용해 자국에 유리한 보도를 쏟아내자, 한국 내 비판 여론이 비등했고 합의의 진정성에 대한 의구심이 커졌다.

지난해 10월 대법원 강제동원 배상 판결과 11월 한국 정부의 화해ㆍ치유재단 해산 이후 양국 간 이슈가 있을 때마다 일본 측의 언론플레이는 더욱 노골화했다. 지난해 말 일본 해상자위대 초계기의 위협비행과 한국 해군 구축함의 레이더 조사(照射ㆍ비추어 쏨) 갈등 4개월 뒤인 올 4월 양국 국방 당국 간 비공개 협의에서 오간 ‘초계기가 3해리 이내 근접 시 레이더 조사’ 방침이 일본 언론을 통해 공개됐다. 지난 10월엔 이낙연 국무총리가 아베 총리와의 회담에서 문 대통령의 친서를 전달했으나, 아베 총리가 눈길도 주지 않은 채 국제법 위반 시정을 재차 요구했다는 보도가 나오기도 했다. 한국 측의 대화 노력을 일본 정부 관계자들의 전언을 통해 평가절하한 것이다. 언론이라는 ‘칼’을 빌려 목적을 달성하려는 일본 정부의 전형화된 수법이다.

살얼음에 놓인 한일관계를 더 궁지로 몰아넣을 수 있는 지소미아 종료 유예 결정 후 갈등에 대해 조진구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교수는 “누가 더 양보했느냐는 평가를 하다 보니 일본이 한국을 자극한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 김숙현 국가안보전략연구원 대외전략연구실장은 “아베 총리가 ‘벚꽃을 보는 모임’ 사유화 비판 등으로 지지율 하락을 겪고 있기 때문에 한국에 양보하지 않았다는 모습으로 리더십을 평가 받으려 한 것 같다”고 했다. 아베 장기집권으로 사회 전반에 만연한 손타쿠(忖度ㆍ윗 사람의 의중을 헤아려 행동함) 측면이 없지 않다는 지적이다.

그러나 일본이 빌미를 제공했지만 “일본의 지도자로서 과연 양심을 갖고 할 수 있는 말인지 되묻지 않을 수 없다”는 청와대 고위 관계자의 발언도 감정적이었다는 지적이 나온다. 다음달 강제동원 해법 등을 논의할 한일 정상회담 개최를 앞둔 상황에서 상대국 정상을 거론하는 것은 지나쳤다는 말이다.

다만 일본 정부와 언론의 획책에 일희일비할 이유가 없다는 의견이 나온다. 청와대 고위 관계자도 지소미아 조건부 종료 유예 발표 직후 “일본은 표면적으로 다른 얘기를 할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을 만큼 국내 여론을 의식한 예상 가능한 반응이었기 때문이다. 양기호 성공회대 일본학과 교수는 “일본 정부도 한국에 대한 불신과 불만이 쌓여 있기 때문에 언론을 통해 ‘한국 때리기’에 나선 측면이 있다”면서 “강제동원 배상문제 해결을 위한 시간이 얼마 남지 않은 만큼 양국이 논란을 확대하기 보다는 해법 모색에 진력해야 한다”고 말했다.

도쿄=김회경 특파원 hermes@hankookilbo.com

양진하 기자 realha@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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