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베 총리 발언은 한국에 배려가 전혀 없는 결례”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ㆍ지소미아)의 조건부 종료 연기 결정 후 한일 양국 간의 ‘진실 공방’이 심화하는 양상이다. 24일 아사히(朝日)신문이 보도한 “일본은 아무것도 양보하지 않았다. 미국이 매우 강경했기 때문에 한국이 물러났다는 이야기다”라는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의 발언이 촉매제가 돼 우리 정부도 격앙된 반응을 내놓으면서 양측이 반박과 재반박을 이어가고 있다. 일본의 ‘아무 양보도 하지 않았다’는 언론플레이는 자국 내 여론 관리 때문인 것으로 풀이된다.
일본 내에서는 ‘한국이 일본에 세계무역기구(WTO) 제소 절차를 중단한다는 의사를 먼저 알려와 합의가 가능했다’는 여론전이 행해지고 있다. 이에 대해 정의용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은 24일 “절대 사실이 아니다”고 강조했다. 일본이 합의 내용을 사실과 다르게 발표한 것에 대해 항의하고 사과를 받았다고도 했다.
그러나 일본 측 반응은 달랐다. 아베 총리의 발언이 보도된 이후 일본 경제산업성은 24일 밤 공식 트위터를 통해 자신들이 발표한 방침의 골자는 “한국 정부와 사전에 조율한 것”이라고 반박했다. 25일 스가 요시히데(菅義偉) 관방장관도 기자회견에서 “한국 측 발신 하나하나에 코멘트를 하는 것은 생산적이지 않다”면서 “어떻든 정부로서는 (한국에) 사죄한 사실이 없다”고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에 대해 윤도한 청와대 국민소통수석은 25일 서면브리핑을 통해 “다시 한번 분명히 밝히지만 우리 측은 일본에 항의했고, 일본 측은 사과했다”고 재강조했다.
일본의 이런 반응은 예견됐다. 22일 청와대의 지소미아 조건부 종료 연기 발표 직후 정부 고위관계자는 “일본은 표면적으로는 다른 얘기를 할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지소미아 없어도 일본 방위엔 문제가 없다고 했다가 말이 바뀌기도 하고, 수출규제와 지소미아는 전혀 관계가 없다고도 하는 등 표면적으로 일본이 반복하는 메시지와 실제 협의 상황과는 다를 수 있다”는 설명이었다. 외교적 교섭 상황에서는 자국에 유리하게 해석해야 협의에 유리할 수 있기 때문에 ‘겉과 속’이 반드시 일치하지 않는다는 건 외교가의 정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베 총리의 발언은 외교적 결례라는 지적이 나온다. 조진구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교수는 “누가 유리하고 불리하냐, 누가 양보했냐는 질문을 받다 보니 일본에서도 부적절한 반응으로 한국을 자극한 측면이 있다”면서 “아베 총리 발언은 한국에 대한 이해와 배려가 전혀 없는 부적절한 반응이었다”고 꼬집었다. 아베 총리의 감정적 발언은 일본 국내 여론을 의식한 것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김숙현 국가안보전략연구원 대외전략연구실장은 “‘벚꽃을 보는 모임’ 사유화 비판 등 일본 내 지지율이 하락하고 있는 상황에서, 일본이 한국에 양보하지 않는 모습을 통해 리더십을 평가 받고 지지율 반등을 고려한 것 같다”고 말했다.
양국 고위급의 반응이 감정적으로 흐르면서 지소미아 종료 유예를 통해 일본의 수출규제를 철회시키고, 나아가 강제동원 피해자 배상 문제까지 해결하려고 했던 정부의 그림이 어그러질 수 있다는 비관론도 제기된다. 한 외교소식통은 “지난해부터 이어진 일본 초계기 갈등 상황과 비슷한 양상이 이어질 가능성이 있다”며 “정부로서는 일본의 말 바꾸기에 격앙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했다.
하지만 모든 발언에 반응하며 일희일비 할 필요는 없다는 것이 외교가의 중론이다. 22일 고노 다로(河野太郞) 방위장관의 “지소미아 종료 통고가 정지는 일시적인 것으로 이해한다. 방위성은 지소미아가 제대로 된 형태로 연장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는 발언이나 산업자원부와 경산성의 국장급 대화 합의 등 양국 소관부처에서는 문제 해결을 위한 노력이 지속되고 있기 때문이다.
관건은 연말 한중일 정상회의를 계기로 성사될 한일 정상회담까지 강제동원 피해자 배상 해법을 찾는 일이다. 김숙현 실장은 “사실상 수출규제는 행정상 절차가 복잡해진 것이지 한국 경제에 큰 타격을 주고 있지는 않지만, 일본은 강제동원 배상을 해결하기 전까지는 수출규제 철회를 하지 않을 것”이라며 “강제동원 해법에 모든 게 달려 있다고 봐야 한다”고 말했다.
양진하 기자 realha@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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