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대 최대 규모의 새해 예산안(513조5,000억원)이 또 밀실에서 ‘깜깜이’로 졸속 심의되고 여야의 나눠먹기 폐습이 재현될 것으로 보여 크게 걱정된다. 여당의 원안 통과 방침과 야당의 500조원 이내 삭감 주장이 팽팽히 대립한 내년 예산안은 법정 예산안 처리 시한(12월 2일)을 1주일 앞둔 25일 교섭단체 예결위 간사와 기획재정부 인사 등 극소수만 참여하는 예결위 예산심사 소소위로 넘어갔다. 문제는 510조원 규모를 다루는 소소위는 국회법상 근거가 없는 임의 조직이어서 비공개로 회의가 진행되고 회의록도 남기지 않는다는 점이다.
새해 예산안은 이달 초 예결위 종합 정책 질의를 거쳐 15일부터 22일까지 예결위 예산소위 심사를 거친 상태다. 그러나 소위는 상임위 예비심사에서 삭감 의견이 나온 650여건 중 5,000억원 규모의 170여건 삭감에만 합의하고 나머지는 보류한 채 소소위로 넘겼다. 야당은 소소위에서 여당의 원안 고수 방침을 무너뜨리고 10조원 안팎을 삭감하겠다고 벼르지만 내년 총선을 의식한 여야가 상임위 심사에서 되레 10조원 이상 증액한 것을 보면 공염불이 될 공산이 크다.
부실 심사 이상으로 우려되는 것은 소소위의 밀실 심의로 넘어간 예산이 ‘정치적 흥정’의 희생양으로 전락하는 것이다. 실제 국회 주변에서는 “소소위 자체가 정치적 타협의 산물이어서 여야 실세들이 민원을 거래하듯 주고받기식으로 협상하는 구조”라는 말이 공공연히 나돈다. 새해 예산안 처리 시점이 여야가 대치 중인 패스트트랙 법안 처리 일정과 맞물린 점은 지난해처럼 시한 내 처리마저 어렵게 하는 요인이다. 자유한국당 소속 예결위원장의 소소위 참여를 놓고 어제 예결위가 멈춘 것 역시 ‘누더기 졸속 예산’ 걱정을 짙게 한다.
정부가 만든 예산안을 무조건 칼질하는 것만이 능사는 아니다. 하지만 작년보다 9.3% 증가한 내년 예산안은 국무회의에서 의결될 때부터 팽창 규모 때문에 ‘총선 예산’이란 비판을 받았고, 국회 예산정책처 검토 과정에서도 재정 중독 및 재정건정성 문제가 제기됐다. 선거제 등 자신들의 밥그릇이 걸린 문제에는 단식과 강행 처리도 불사하는 정치권이라면 국민들 밥그릇도 소중한 줄 알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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