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대 단톡방 성희롱 사건’에 이어 간호장교를 육성하는 국군간호사관학교(이하 ‘국간사’)에서도 남성 생도들이 카카오톡 단체대화방을 통해 여생도들과 상관을 성희롱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피해 여생도들이 담당 훈육관에게 정식으로 문제를 제기했지만 학교는 오히려 가해자들을 두둔하고 나선데다 솜방망이 처분을 내리는 데 그쳐 논란이 예상된다.
시민단체 군인권센터는 25일 오전 서울 마포구 군인권센터 교육장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국간사 내 단톡방 성희롱ㆍ모욕 행위 실태를 공개했다. 센터는 “국간사는 동료와 선배 여군을 상대로 저열한 성범죄를 저지른 생도들을 묵인, 방조했다”고 주장했다.
센터가 공개한 내용에 따르면 국간사 남성 생도들은 지난해 말부터 올해 초까지 남생도들만 속해 있는 여러 개의 단톡방에서 여생도들을 언급하며 성적으로 비하하는 발언을 수 차례 일삼았다. 이들은 자신보다 선배 기수인 여생도들을 성기를 빗댄 표현으로 지칭하거나, 이들의 간호실습을 각종 성행위에 비유하고, 여생도들이 한 페미니즘 관련 발언을 캡처해 조롱하고 비하했다. 뿐만 아니라 훈육관을 '허수아비 소령' 'X멍청이'라고 일컫는 등 상관 모욕도 서슴지 않았다.
지난 10월 이런 사실을 알게 된 피해 생도들은 3학년 담당 훈육관을 찾아가 신고했으나 훈육관은 “동기를 고발해 단합성을 해치려는 너희가 괘씸하다”고 되레 질책했고, 단톡방 캡처 이미지를 보여주자 “보고 싶지 않다”며 돌려보냈다. 이에 피해 생도들은 학내 자치위원회인 명예위원회에 정식으로 신고했고 사건은 그제서야 훈육위원회에 회부됐다.
센터에 따르면 학교 측은 주요 가해자로 지목된 11명 중 1명에게만 퇴교 처분을 내렸고, 나머지에게는 근신 4~7주의 징계를 내리는 수준에 그쳤다. 근신 처분은 주말 외출, 외박 등이 금지되는 수준의 가벼운 처분이다. 기록에 남지 않을 뿐만 아니라 향후 생도들의 임관에도 전혀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 군인권센터 여군인권담당 상담지원팀 방혜린 간사는 “근신은 사실상 1주에 한번 나가는 외박을 제한하는 정도의 처분”이라며 “이렇게 간호장교가 된 이들이 장차 여군 환자들에게 성폭력ㆍ성희롱을 하지 않으리라는 보장이 없다"고 밝혔다.
센터는 “특히 단톡방 내 성희롱을 주도했던 강모 생도의 경우 사건 몇 주 전 영내에서 남자 동기를 폭행한 사건으로 이미 근신 2주 징계를 받은 상태에서 중징계를 또 받았지만, 학교 측은 퇴교 결정을 내리지 않았다”며 “이는 그가 국립간호사관학교 유력 외래 교수의 아들이란 점이 강력히 작용했을 것으로 의심된다”고 주장했다.
국간사 학칙 및 규정에 학내 성폭력 사건을 징계할 수 있는 공식적 항목 자체가 없다는 것도 이번 사건을 통해 드러났다. 센터에 따르면 단톡방 성희롱 사건을 보고받은 국간사 훈육위원회와 교육위원회는 가해자들의 발언을 성희롱이 아닌 ‘생도답지 않은 언행 및 태도’로 취급해 징계를 내렸다.
현재 국간사 학칙상 성폭력, 성희롱 관련 내용은 생활규정 내 ‘결혼 및 이성 교제 규정’에 부수적으로 포함돼 있을 뿐 별도의 징계 항목으로 마련돼 있지 않다. 센터 측은 “다른 사관학교의 경우 성폭력을 별도 항목으로 규정해 원칙적으로 퇴교 처리한다는 것을 감안하면 국간사의 행태는 사실상 성폭력을 방조하는 행위나 다름없다”고 설명했다.
센터는 이들의 행위가 학칙상 징계를 받는 수준을 넘어 군형법상 상관모욕 등으로 즉각 수사가 필요한 사안이라고 주장했다. 방 간사는 “사관생도 또한 군인사법과 군형법 저촉을 받는 군인 신분”이라며 “국간사는 형사처벌 대상인 가해 생도들을 사실상 봐준 것과 다름없다”고 말했다. 제보에 따르면 일부 훈육관은 주말에 근신 중인 가해 생도들을 찾아가 간식 등을 사주면서 “괜한 일에 휘말려 이렇게 되었다”고 격려한 것으로도 알려졌다.
센터는 “확보된 증거와 피해자 진술에 따라 가해 생도들을 형법상 모욕죄, 정보통신망법상 명예훼손, 군형법상 상관모욕죄 등으로 고소ㆍ고발할 계획”이라며 “범죄자들을 두둔하고 피해자들을 ‘2차 피해’ 속에 방치한 학교장 권명옥 준장 이하 관련 훈육진을 즉각 보직해임하고 조사하라”고 촉구했다.
또 국방부를 향해서도 “사관학교 내 성희롱ㆍ성폭력 등 성범죄 재발 방지를 위해 국방부 양성평등위에서 관련 실태를 파악하고, 문제점을 분석해 각 군 사관학교의 성범죄 징계, 형사처벌 절차 개선안을 수립하는 등 대책을 세우라”고 요구했다.
박지윤 기자 luce_jyu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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