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일 오후 서울 종로구 우정국로에서 열린 ‘현장인력 충원! 임금피크제 폐지! 대정부 교섭투쟁 및 철도파업 승리! 공공운수노조 결의대회’에서 참가자들이 피켓을 들고 구호를 외치고 있다. 연합뉴스

최근 며칠 동안 서울에 다녀올 일이 많았다. 위원회 참석과 중요한 심사 참여로 평소 별로 가지 않던 서울(그래 봐야 일산에서 서울은 옆집 사이라 그리 멀지도 않지만) 나들이가 잦았다. 하필 버스와 지하철 일부가 함께 파업하는 바람에 오가는 길이 매우 불편했다. 평소에는 광역직행버스나 지하철로 편하고 쉽게 오갔는데 파업하지 않는 버스로 골라서 갈아타는 것이 여간 성가시지 않았다. 승객들 몇몇은 파업에 대해 못마땅한지 연신 불평을 쏟았다. 파업에 불편하지 않을 시민들이 어디 있을까. 일상의 루틴이 깨뜨려지는 불편함과 당혹스러움은 하루를 피곤하게 하기에 충분한 일이다.

그래도 다행스러운 건 예전에 비해 파업하는 이들에게 쏟아내는 불평이 줄었고 그 강도도 덜 거칠었다는 점이다. 걸핏하면 욕해대는 ‘귀족노조의 배부른 파업’이 아니었기 때문일까? 필요한 요구 사항이 있었을 것이고 합의를 이루지 못했기에 최후의 수단으로 파업을 결의했을 것이다. 파업은 노동자가 결의하는 것이지 고용주가 파업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직장 폐쇄의 경우가 없는 건 아니지만) 파업은 약자가 최후의 수단으로 선택하는 것이다. 누구 말처럼 습관처럼, 혹은 배불러서 몽니 부리는 게 아니다. 합리적으로 서로 인정할 수 있는 결론을 공유하는 건 좋은 일이지만 사람 일이라는 게 서로 서 있는 입장에 따라 생각과 판단의 기준이 다를 수밖에 없다. 그 차이를 인정하고 양보할 것은 기꺼이 양보하며 더 나은 발전을 위해 서로 협력하고 관계를 더 강화하는 것이 노사가 함께 자리하며 논의하는 목적이다. 어찌 단 칼에 합의에 도달할 수 있겠는가. 수차례 만나고 논의하고 실망하며 때론 윽박지르기도 한다. 그러다 도저히 합의에 이르지 못할 때 약자인 노동자가 최후의 선택으로 뽑는 칼이 파업이다. 칼자루 쥔 것도 아니고 칼날을 쥐는 경우가 더 많다. 그런데 왜 파업할 수밖에 없었는지에 대해서는 무관심하고 일하지 않았으니 임금도 줄 수 없다는 일방적인 통보인 ‘무노동 무임금’이 마치 완벽한 원칙인 듯 여기는 것도 사실은 비합리적이다.

이제는 파업의 불편함에 대해 먼저 불평하기 전에 왜 파업할 수밖에 없는지, 파업 주체가 요구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먼저 물어야 한다. 정당한 파업이라면 불편을 감수하더라도 기꺼이 지지하고 응원하는 게 ‘동료 시민’으로서의 의무고 품격이다. 물론 부당하고 과욕만 내세운 파업이라면 따갑게 질책하고 비판해야 한다. 습관처럼 걸핏하면 파업으로 수많은 사람들에게 불편함을 강요하는 것도 폭력이다.

노동조합이라면 무조건 적대시하는 시민들도 많다. 좋은 직장 정규직 일자리에 있는 사람들이 자신들만의 임금 인상을 요구하면서 압박의 수단으로 삼는 파업에 다른 시민들이 공감하지 못하는 것도 이제는 알아야 한다. 하지만 대개의 경우 도저히 파업 말고는 다른 대안이 없어서 시민들의 불편함을 알면서도(때론 그걸 인질로 삼기 위해 의도적으로) 파업을 결의한다. 일해야 할 사람들이 차가운 길바닥에 앉아 목이 터져라 외친다. 일하지 못하고(‘않는’ 게 아니다!) 그래서 그만큼의 급여도 받지 못하는데도 그러는 이유가 무엇인지 관심 가져야 한다.

입장 바꿔 내가 그 노동자의 경우라고 해보자. 일방적으로 약자인 노동자의 손실과 인내를 강요하는(정작 기업주는 잘 나갈 때는 더 많이, 그렇지 않을 때는 ‘여전히’ 그래도 가져가는 경우가 훨씬 더 많지 않은가) 상황에서 아무리 노사 협의를 거듭해도 진전이 보이지 않으면 어쩔 수 없이 파업을 선택할 수밖에 없다. 그런데 다른 사람들이 나와 동료 노동자들에게 일방적으로 비난과 불평만 쏟아낸다면 그야말로 고립무원이다. 나도 고용된 노동자인데 다른 동료 시민 노동자들의 부당한 대우와 저항에 대해 외면하고 비판한다면, 만약 내가 그 상황일 때 무엇을 기대할 수 있겠는가? 옥석은 가려야 하는 법이지만 무조건 일방적으로 도매금으로 매도하는 야만적이고 이기적 언행은 삼가야 한다. 그래야 나도 동료 시민들의 공감과 이해와 지지를 얻을 수 있지 않은가.

철도 사고가 날 때마다 정비 인원의 부족이 원인 가운데 하나라는 지적이 나온다. 그런데 경영 실적만 내세운 사람들은 정작 정비 인원 보충에 대해서는 손사래 친다. 정비 인원 늘려달라는 게 해당 노동자들의 특정한 세력화인가? 아무리 흑자가 난다 해도 정비 인원 노동의 착취에 의한 것이라면 그건 비난받아 마땅하다. 사기업도 아닌 공기업이!

며칠 동안 버스와 철도가 함께 파업해서 여간 불편한 게 아니다. 그러나 그들의 절박한 상황을 이해한다면 나는 기꺼이 그 불편을 감내할 생각이다. 제발, 파업 때문에 경제가 망가진다는 따위의 말부터 꺼내는 못된 습관부터 버려야 한다. 우리 모두 약자다. 약자의 말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욕부터 하는 부끄러운 언행을 버리고 분배의 정의와 노동의 정당한 가치를 사회적 비용으로 먼저 생각하는 사회가 정의로운 사회다. 정당한 주장을 가진 노동자의 요구와 파업이라면 이런 불편쯤 나는 참을 수 있다!

김경집 인문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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