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의 한 수’로 빼든 지소미아, ‘외교적 상처’로 씁쓸한 결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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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의 한 수’로 빼든 지소미아, ‘외교적 상처’로 씁쓸한 결말

입력
2019.11.25 0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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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본 경제보복에 맞불카드로 활용… 애매한 ‘유예’ 결론에 갑론을박 

 日 정부 “자국 완승” 줄곧 강조… 일각 “불리한 게임, 예고된 결말” 

김유근 청와대 국가안보실 제1차장이 22일 오후 6시 청와대 춘추관 브리핑룸에서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지소미아) 관련 브리핑을 하기에 앞서 국민에게 인사하고 있다. 류효진 기자

우리 정부의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ㆍ지소미아) 종료 예고’ 카드가 지렛대로 작용한 것은 결과적으로 사실이다. 기대대로 한미일 삼각 안보 공조 체제 약화를 막기 위해 미국이 적극성을 보였고, 이 때문인지 꿈쩍하지 않던 일본이 무역 보복 철회 협상 테이블에 앉기로 했다. 하지만 ‘신의 한 수’였다고 호평하기에는 뒷맛이 개운치 않다는 지적이 상당하다. 자화자찬이야 일정 부분 불가피하더라도 자국의 완승이라는 자랑까지 일본 정부에서 나왔다는 사실은 우리 외교 당국의 설명이 필요한 대목이다. 국내 전문가들의 평가가 후한 것도 아니다. 어차피 연장 말고는 사실상 다른 선택지가 없었던 데다, 종료 시사를 통한 한일 지소미아 존재감 부각이 ‘신냉전 구도 강화’든 ‘한미 동맹 취약성 노출’이든 우리한테 불리하게 귀결될 가능성이 다분했음에도 대안에 대한 충분한 고민이 없었다는 지적이다.

‘일본을 흔들었다.’ 정부는 지소미아 종료를 6시간가량 앞두고 22일 전격적으로 도출된 한일 합의의 최대 성과를 이렇게 평가한다. 한국 측은 8월 23일 이뤄진 지소미아 종료 통보 효력을 정지시키고 일본 측은 수출 규제 조치 해결을 위한 한국과의 대화에 응한다는 게 양측 합의의 요지다. 지난해 10월 한국 대법원의 강제동원 배상 판결이 내려진 뒤 자국의 문제 해결 협의 요구에 한국 정부가 소극 대응으로 일관하자 올 7, 8월 일본이 꺼내든 카드가 반도체 소재 3개 품목의 대한(對韓) 수출 규제 강화 및 화이트리스트(수출심사 우대국) 한국 배제였다. 여기에는 보복 성격이 명백한데, 지소미아 종료 카드가 없었다면 수출 규제 철회 문제를 협의하자는 한국 요청에 징용 판결 분쟁 해법부터 가져오라며 ‘무시 전략’으로 대응해 온 일본을 대화 테이블에 끌어낼 수 있었겠느냐고 정부는 반문한다. 정부 고위 당국자는 “징용 문제를 풀지 않으면 수출 규제도 안 풀겠다는 일본의 연계 전략을 우리가 수출 규제와 지소미아를 연계하는 전략으로 맞받아 깼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일본 측 반응부터 찜찜하다. 국내 정치적 이득을 노린 선전전 성격이 강한 데다 보도 직후 청와대 고위 관계자가 “의도적 왜곡에 견강부회”라고 반박한 사실을 감안해도 24일 일본 언론이 전한 자국 정부의 자평은 한국 정부와 정반대에 가깝다.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가 한국과의 조건부 협정 연장 합의 직후 “일본은 아무것도 양보하지 않았다”고 측근들에게 말했다는 보도가 진보 색채가 강한 아사히(朝日)신문에서 나왔고, 극우 성향인 산케이(産經)신문은 “이쪽(일본)의 퍼펙트 게임”이라는 일본 정부 고위 관계자의 발언을 옮겼다. 매체의 성향과 상관없이 아베 정부의 성과로 포장한 것이다. 국내 일각에서도 “지소미아 유지라는 현금을 주고 현금화가 확실치 않은 어음(수출 규제 철회 약속)을 받아 온 격”이라는 박한 평가가 나온다.

결과론이지만 무조건이든 조건부이든 지소미아 유지는 예견된 결말이라는 게 외교가 중론이다. 이후 ‘과거사 갈등 현안을 통상 분야 불이익으로 보복한 것도 모자라 안보상 불신을 핑계로 대는 나라와 민감한 군사 정보를 공유하기는 어렵지 않겠느냐’는 논리로 미국을 줄기차게 설득했지만 이후 전개는 기대와 달랐다. “한국 정부의 지소미아 유지 결정은 잘한 일”이라고 칭찬하는 한미일 전문가들이 이구동성으로 “미국과의 관계를 도외시할 수 없었을 것”이라고 한국을 동정한다는 건 지소미아 종료 카드의 한계를 보여주는 방증이다. 합의 액면만 보면 일본이 성의 있게 협의에 응하지 않을 경우 언제든 한국이 지소미아 종료 선언을 할 수 있지만 미국의 압박을 경험한 이상 이를 실행하기는 힘들 거라는 비관론이 주류다. 동맹 관계의 강도(强度)를 고려하면, 미국이 일본 대신 한국 편을 들어줄지 모른다는 발상부터 지나친 ‘희망적 사고’였다는 비판도 제기된다.

지소미아 종료 결정 카드가 불러올 파장에 대한 치밀한 분석이 정부 결정에 선행했는지 여부도 의문이다. 미국 반응에 대한 오판도 잘못이지만, 섣불리 미국 개입을 유도하기에 앞서 대일(對日) 외교에 먼저 최선을 다했어야 한다는 것이다. 남기정 서울대 일본연구소 교수는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는 한반도의 정전과 동아시아 냉전이라는 오랜 역내 세력 균형 구도를 깨고 한반도를 평화 공간으로 이동시키려는 노력인데, 한일 지소미아는 한미일 안보 삼각형의 자장(磁場)을 강화하는 메커니즘 중 하나”라며 “지소미아 카드로 미국이 움직이기는 했지만 종료를 선언하고 복구하는 과정에서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와 반대되는 힘을 키우고 말았다”고 말했다. 김숙현 국가안보전략연구원 대외전략연구실장도 “한일 지소미아가 사실상 미국의 요구에 의해 체결된 만큼 종료할 때도 미국과 충분한 협의가 이뤄졌어야 했는데 종료 선언 뒤 3개월간 파상적으로 가해진 미국의 공세는 결과적으로 어떤 합의도 없었다는 사실밖에 보여준 게 없다”며 “한미 동맹이 견고하지 않다는 것만 노출해 버린 셈”이라고 했다.

권경성 기자 ficciones@hankookilbo.com

박준석 기자 pj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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