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전쟁범죄로 기소돼 강등된 군인의 계급을 복원시켜준 데 이어 후속 징계절차까지 막고 나서면서 군 고위 관계자들과 갈등을 빚고 있다. 해군장관을 비롯한 지도급의 사퇴 가능성까지 거론되지만 탄핵 조사로 위기에 몰린 트럼프 대통령은 군 통수권자로서의 존재감을 부각하기 위해 끝까지 버틸 태세다.
미국 뉴욕타임스(NYT)는 23일(현지시간) 행정부 관계자들을 인용, 리처드 스펜서 해군장관과 콜린 그린 해군특수전사령관이 트럼프 대통령의 개입으로 에드워드 갤러거의 징계 절차가 중단될 경우 자리에서 물러나겠다는 강경한 입장을 밝혔다고 전했다. NYT는 “대통령이 갤러거의 해군특전단(네이비실) 퇴출을 막아선 일도 이례적이지만 군 지도부가 이에 반기를 든 것 역시 유례 없는 전개”라고 평가했다.
미 해군의 엘리트 특수부대인 네이비실 특수작전부장으로 2017년 이라크에 파견됐던 갤러거는 극단주의 무장단체 이슬람국가(IS) 대원의 시신 옆에서 사진을 찍은 혐의로 군사재판에 회부돼 유죄 판결을 받았다. 포로와 민간인 살해 혐의는 무죄가 인정됐지만 이번 판결로 그는 진급 취소와 일계급 강등에 처해졌다. 이에 지난 15일 트럼프 대통령은 “국가를 위해 봉사한 이들에게 두 번째 기회를 줘야 한다”며 갤러거의 진급과 전쟁범죄로 기소된 다른 군인 2명에 대한 사면을 명령했다.
국제 사회의 비판에도 트럼프 대통령의 ‘갤러거 감싸기’는 계속됐다. 해군에서 네이비실 제명 등 별도 징계를 검토하고 있다는 사실이 알려지자 트럼프 대통령은 21일 트위터에 “갤러거로부터 트라이던트 핀(네이비실의 상징인 삼지창 핀)을 빼앗을 순 없을 것”이라며 “이번 사안은 처음부터 아주 잘못 처리됐다”고 불쾌함을 표시했다. 해군은 즉각 징계에서 손을 떼라는 경고였다.
스펜서 장관은 자신과 그린 사령관의 사퇴설을 일단 부인했지만 갤러거의 자격 박탈 여부는 해군이 별도로 심의해 결정하겠다는 입장을 재확인했다. 캐나다 노바스코샤주 핼리팩스에서 열린 국제안보포럼에 참석한 스펜서 장관은 이날 기자들에게 “나는 사임협박을 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또 그는 “대통령은 군통수권자로 마땅히 모든 지시를 내릴 수 있고 나는 그에 따를 것”이라면서도 “아직 갤러거 징계에 대해 어떠한 명령도 받지 못했다. 트윗을 공식 명령으로 해석하지 않는다”고 잘라 말했다.
마크 에스퍼 국방장관과 마크 밀리 합참의장 등도 트럼프 대통령의 사면ㆍ진급 명령을 끝까지 만류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대통령의 개입은 군 사법제도를 흔들고, 지휘관들이 질서와 규율을 바로 세우는 데 걸림돌이 될 수 있다는 우려에서다. 행정부 관계자는 NYT에 “이들은 이제 트럼프 대통령이 마음을 돌려 징계 절차를 눈 감아주기만을 바라고 있다”고 전했다.
하지만 탄핵 조사로 이미 재선 가도에 타격을 입은 트럼프 대통령이 물러설지는 미지수라고 신문은 내다봤다. 군 통수권자로서의 역할마저 위태로워질 경우 레임덕이 가속화될 수 있어서다. 갤러거 측 변호인 티모시 파를라토레는 언론에 “해군의 징계 논의는 군 통수권자인 트럼프 대통령에 대한 직접적이고 공개적인 저항으로, 위험한 선을 넘은 것”이라고 강조했다.
강유빈 기자 yubi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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