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한반도 전문가들은 24일 인터뷰에서 한국 정부의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ㆍ지소미아) 종료 유예 결정에 대해 “한일 간 최악의 결과를 피했다는 점에서 긍정 평가한다”면서도 “양국 현안에 대한 확실한 결론 없이 잠시 시간을 번 것이기 때문에 낙관할 수는 없다”고 밝혔다. 갈등의 발화점인 강제동원 배상문제 해결을 위해선 다음달 문재인 대통령과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간 정상회담 이전까지 강제동원 배상과 일본의 수출 규제를 둘러싼 양국 간 대화의 진전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았다. 아울러 한국의 결정에는 미국의 압력이 작용한 것은 사실이지만, 미국의 압력이 일본을 제외한 채 한국에만 이뤄진 것은 아니라고 했다. 양국 정부와 언론이 ‘자국의 일방적 승리’라고 과도하게 주장하는 것은 대화의 호기(好機)를 살려나가는 데 걸림돌이 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기미야 다다시(木宮正史) 도쿄대 교수
한국에서 강제동원 문제 해결을 위한 방안이 제기되는 등 국면을 타개하려는 움직임이 나타나면서 일본 정부도 수출 당국 간 대화 재개로 응한 것이다. 물론 현안에 대한 구체적인 합의는 없지만 악화일로인 양국관계의 분위기를 전환하려고 내린 결정이라고 평가한다.
수출 규제와 지소미아를 맞교환하려는 한국의 전략은 애초부터 무리였다. 일본이 수출 규제 당시 거론한 안보는 군사전용 가능성 등 ‘소문자(小文字) 안보’였다면, 한국이 거론한 안보는 한미일 협력구도를 포함한 ‘대문자(大文字) 안보’였기 때문이다. 다만 일본의 경제산업성에서도 “수출 규제가 적당한 조치였느냐”는 의구심이 제기된 적이 있음으로, 양국 간 협의를 통해 상대에 대한 의문점이 해소된다면 수출 규제 철회를 위한 계기를 마련할 수 있을 것이다.
한일관계 개선은 강제동원 문제 해결로 귀결된다. 문희상 국회의장의 제안은 좋은 출발점이 될 수 있다. 일본 정부로선 ‘문희상 안’에 대한 한국 정부의 분명한 입장과 향후 비슷한 소송이 반복되지 않도록 해결의 틀을 만드는 데 주도하는 모습을 기대하고 있다. 한국의 ‘사법 판결 존중’과 일본의 ‘1965년 청구권 협정 존중’ 사이의 타협이 불가피한 만큼 다음달 정상회담에서는 이에 대한 큰 틀의 합의가 이뤄져야 한다.
◇오쿠조노 히데키(奥薗秀樹) 시즈오카현립대 교수
다음달 한일 정상회담의 성과를 기대하려면 강제동원 배상과 일본의 수출 규제 등 양국 간 의견의 진전이 필요하다. 강제동원 배상문제에선 긍정적인 흐름이 감지된다. 일본에선 ‘촛불정부’를 자임하는 문재인 정부가 모든 정책을 민심에 따라 결정한다는 인식이 강하다. 그러나 ‘문희상 안’을 제안한 것은 민심이 원하는 방안만으로는 일본과 협상이 어렵다는 한국 측의 인식을 간접적으로 보여줬다. 문희상 안 내용 중 한일 기업의 ‘자발적 기부’라는 접점을 바탕으로 한일 양국의 명분을 살릴 수 있는 방안을 찾아야 한다.
지소미아 갈등은 일본이 7월 강제동원 문제 해결을 위해 수출 규제라는 경제 카드를 꺼냈고, 한국이 이에 지소미아라는 안보 카드를 꺼낸 양국 정부의 판단 실수에 의한 것이다. 이번 결과를 단순히 ‘일본의 완승’으로 볼 수 없는 이유다. 일본 정부는 “수출 규제와 지소미아는 별개”라고 밝혀왔지만, 당국 간 협의 재개에 나선 것은 기존 원칙에서 한발 물러선 것으로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지난 3개월을 돌아보면 지소미아는 한일 간 협정이지만 한미문제이자 대북문제까지 연결돼 있음을 보여줬다. 한국 입장에선 지소미아 종료에 따른 한미관계 악화가 문재인 정부의 간판정책인 대북정책에 영향을 미칠 수 있고 미국의 대중(對中)전략에 직접적인 타격을 주기 때문에 미국의 우려를 의식한 결정을 내린 것이다.
도쿄=김회경 특파원 herme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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