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의 이유’ 낸 홍성수 숙명여대 교수
국민들이 억울한 일을 당했을 때, 사회 정의가 무너졌을 때 마지막으로 기대는 언덕이 사법부다. 민주주의를 지키는 최후의 보루. 그러나 대한민국 사법부는 그 기대와 믿음을 저버린 지 오래다. 수년 전 발표된 경제개발협력기구(OECD) 보고서에서 한국은 사법제도에 대한 신뢰도가 27%에 불과했다. 조사대상 42개국 중 39위로, 한국보다 낮은 나라는 콜롬비아, 칠레, 우크라이나 3개국뿐이었다. 그 이후 벌어진 블랙리스트와 재판거래 등 사법농단은 불신의 쐐기를 박았다.
홍성수 숙명여대 법학과 교수는 그래도 ‘희망’을 말한다. 사법부가 아니라 깨어 있는 시민들의 힘을 믿어서다. 최근 홍 교수가 펴낸 ‘법의 이유’는 법의 역할에 대한 근본적 질문을 담은 책이다. 용산참사를 모티브로 한 ‘소수인권’과 석궁 테러 사건을 다룬 ‘부러진 화살’ 등 영화를 창으로 한국 사법제도의 모순과 한계를 무겁지 않게 들여다본다.
지난 18일 연구실에서 만난 홍 교수는 사법부가 국민들의 높은 불신을 받는 가장 큰 이유로 ‘독립성에 대한 착각’을 꼽았다. “사법부 독립성 보장에 대해선 모두가 동의하죠. 그러나 정치권력에서 독립돼야 한다는 얘기지, 시민들로부터 동 떨어져 있으라는 말은 아니거든요. 성인지 감수성 등 달라진 사회의 인식에 둔감해지는 건 큰 문제죠.” 시민들과 소통하려는 움직임 없이 그들만의 리그에 갇혀 있어선 안 된다는 지적이다.
노력이 전무했던 건 아니다. 더뎌서 문제다. 참여정부 시절 사법부의 폐쇄성을 타파하기 위해 법조일원화, 공판중심주의로 전환 등의 사법개혁안을 모색했지만 여전히 갈 길은 멀다. 정치권은 검찰개혁안을 두고선 사생결단으로 싸우지만, 사법개혁에 대해선 상대적으로 조용하다.
홍 교수는 “사법개혁은 당장 표가 나는 일이 아니어서 그렇다”고 진단했다. 검찰개혁의 경우 검경수사권 조정이나 고위공직자비리수사처(공수처) 설치 등 성과를 만들어낼 수 있지만, 내부의 시스템을 정교하게 바꿔나가야 할 사법개혁은 눈에 띨 만한 가시적 조치가 없다 보니 정치권, 언론, 시민들의 관심도가 갈수록 떨어지고 점차 이슈에서 밀려난다는 것이다.
그러나 사법부 개혁이 수반되지 않은 검찰 개혁은 ‘반쪽 짜리 개혁’이라고 홍 교수는 지적했다. “검찰개혁은 비대한 검찰의 권력을 쪼개고 나누고 분산시키는 게 핵심인데, 최종적인 판결을 맡고 있는 사법부가 달라지지 않는다면 검찰개혁도 소용 없는 거 아닐까요.” 사법부의 신뢰를 회복하고 정의를 바로 세우기 위해서, 사법개혁에 대한 시민들의 ‘진득한’ 관심이 더욱 필요하다는 주문이었다.
강윤주 기자 kkang@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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