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계의 ‘입담꾼’ 조제 무리뉴가 돌아왔다. 이번엔 리그 14위로 부진한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EPL) 토트넘의 지휘봉을 잡았다. 25번이나 트로피를 들어올린 ‘우승 청부사’ 무리뉴 감독의 토트넘이 어떤 지각변동을 일으킬지 축구계의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하지만 팬들이 기대하는 건 역시 무리뉴의 ‘혀’다. 뛰어난 언변으로 상대 감독을 내려찍고, 한 마디 말로 선수들을 휘어잡는 카리스마까지. 경기장 안과 밖 모두에서 재미를 충족시켜주는 감독은 무리뉴뿐이다. 알렉스 퍼거슨 전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감독이 “무리뉴는 바닥이 보이지 않는 유머 감각을 가지고 있다”고 평했을 정도다. 휴식기 동안 해설위원으로 일하며 입담도 늘었다.
첫 공식 기자회견부터 팬들을 환호케 한 ‘명언’들이 쏟아졌다. 기자회견이 열린 22일(한국시간) 영국 런던 토트넘 홋스퍼 트레이닝센터는 현지 기자들로 인산인해였는데, 유럽축구연맹(UEFA) 챔피언스리그 결승전 기자회견보다 취재 열기가 더 뜨거웠던 것으로 전해졌다. 쏟아지는 기삿거리에 영국 언론도 쾌재를 부르고 있다.
△여전한 유쾌함 “토트넘 감독 안 맡는다고? 그건 잘리기 전이었잖아”
기자회견 내내 행복한 미소를 숨기지 못한 무리뉴는 먼저 마우리시노 포체티노 전임 감독에 대한 존중으로 첫 마디를 시작했다. 그의 품격이 드러나는 장면이었다. 그는 “포체티노 감독이 이뤄낸 업적을 항상 기억해야 한다”며 “토트넘은 언제나 그의 집이다. 문은 항상 열려 있다. 그는 언제나 환영 받을 것이다”라고 강조했다.
무리뉴는 손흥민과 해리 케인 등으로 구성된 탄탄한 토트넘 선수단에 대해 만족감을 표시했다. 그는 “최고의 선물은 여기 있는 선수들”이라며 “다른 선수들은 필요가 없다. 단지 현재 선수들을 이해할 시간이 필요할 뿐”이라고 극찬을 아끼지 않았다. 현지 보도에 따르면 토트넘과 재계약 의사가 없는 것으로 알려졌던 크리스티안 에릭센, 얀 베르통언, 토비 알더베이럴트 등 주요 선수들은 무리뉴의 부임만으로 의사를 바꾼 것으로 알려졌다.
휴식기 동안 ‘겸손’을 배웠다는 무리뉴는 여유가 가득했다. 현지 언론은 그를 이제 ‘스페셜 원(special one)’이 아닌 ‘험블 원(humble one)’, ‘해피 원(happy one)’으로 부른다. “첼시 감독 시절이던 2015년 절대 토트넘 감독을 안 맡겠다고 했지 않았느냐”는 질문에는 “그땐 잘리기 전이었잖아! 이제 난 단 하나의 셔츠, 단 하나의 열정, 단 하나의 클럽만을 바라보고 있다. 바로 토트넘”이라고 답했다. 무리뉴다운 유쾌한 기자회견이었다.
△그의 독설이 기대된다 ”펩이 대머리인 이유는 축구를 즐기지 못해서”
하지만 무리뉴의 끝 모르는 자신감과 살짝 돋은 가시는 여전했다. 그는 지난 시즌 챔피언스리그(UCL) 결승전 패배가 최근 토트넘 부진의 이유인지 묻는 기자의 질문에 “글쎄 나는 결승전에서 져본 적이 없어 모르겠는데”라고 농을 던진 뒤, “한 발짝만 내디디면 되는 순간 미끄러졌다면, 별거 아닌 일이 아니었을 것이다. 하지만 정해진 건 아무것도 없다”며 금세 반등에 성공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무리뉴는 포르투와 인터밀란 재직 시절 2번의 UCL 결승전에서 모두 우승을 차지했다.
팬들이 기대하는 건 그의 ‘독설’이다. 무리뉴는 과거 아르센 벵거 전 아스널 감독을 향해 “당신은 관음증 환자”라고 인신 공격성 발언을 한 적 있다. 펩 과르디올라 맨체스터 시티 감독에게는 “무슨 일이든 즐기는 사람은 대머리가 되지 않는다. 펩이 대머리인 이유는 축구를 즐기지 못하고 스트레스를 받기 때문”이라고 했다.
무리뉴와 과르디올라는 부인할 수 없는 라이벌이다. 스페인에서는 레알 마드리드와 바르셀로나, EPL에선 맨유와 맨시티 수장으로 만났었다. 위르겐 클롭 리버풀 감독과도 악연이 깊다. 클롭 감독이 리버풀 취임 당시 무리뉴의 별명인 ‘스페셜 원’을 겨냥해 “나는 노멀 원”이라고 말한 건 유명한 일화다.
무리뉴가 맨유에서 경질된 이유도 클롭의 영향이 크다. 무리뉴의 맨유에서 마지막 경기가 리버풀전이었는데, 무리뉴는 이 경기에서 1-3으로 패한 직후 경질됐다. 2013년엔 UCL 4강에서 클롭이 이끌던 도르트문트가 무리뉴의 레알 마드리드를 꺾었다. 갚아야 할 빚이 많다.
게다가 무리뉴의 ‘고향’ 첼시의 현 감독 프랭크 램파드는 그의 수제자다. 돈독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지만 ‘런던 라이벌’ 토트넘과 첼시의 사령탑으로 만난 이상, 램파드도 무리뉴의 공격에서 피해갈 수 없다.
선수들에게 승리를 요구하는 리더십도 여전했다. 무리뉴는 “난 이기지 못하면 행복할 수 없는 사람”이라며 “내 DNA는 바꿀 수 없다. 토트넘 선수들은 무조건 지는 것을 증오해야 한다”고 단언했다.
무리뉴 감독은 23일 웨스트햄과의 EPL 13라운드 원정경기를 통해 토트넘 데뷔전을 치른다.
이승엽 기자 syle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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