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전반 경쟁 혁신 활력 사라지고 있다”
文 정부 이후, 산업현장 분위기 크게 위축
냉정한 판단과 비판 수용한 정책전환 필요
2차대전 당시 독일군의 전투력 향상을 위해 보급된 약물 퍼비틴(왼쪽)과 프랑스 파리에 입성하는 독일군. 위키피디아

최근 ‘정로환’(正露丸)이라는 정장제와 러일 전쟁의 관계를 알게 됐다. 1900년대 초 개발됐을 때는 지금과 뜻이 달랐다. 바를 ‘정’(正) 대신 정복할 ‘정’(征)을 썼다. ‘러시아를 정복할 약’이라는 의미의 정로환(征露丸)이었다. 인터넷 검색으로 개발 과정을 확인했다. 1904년 러시아와의 결전을 앞두고 일본 군 수뇌부는 만주 주둔 일본군에 창궐하는 설사병으로 고심하고 있었다. 설사에 한번 걸리면 병사들의 전투력이 크게 떨어졌기 때문이다. 결국 일왕이 직접 나서 의학자들에게 러시아를 정복할 약을 만들라고 지시했다. 실제 그 효과가 매우 우수해서 약만 먹으면 설사가 즉각 멈춰 전쟁을 승리로 이끄는데 큰 역할을 했다. 이후 일본 군국주의 시절에는 줄곧 ‘征露丸’으로 불렸다. 일본이 2차 대전에서 패한 뒤 반성의 뜻으로 이름을 '正露丸’으로 바꿨다.

약물이 전쟁의 승패를 가른 건 이뿐만이 아니다. 2차 대전 당시 유럽에서도 비슷한 일이 있었다. 우리 짐작과 달리 개전 직전 영국ㆍ프랑스 연합군 대비 독일의 전력은 절대 열세였다. 그러나 전격전(Blitzkrieg)으로 프랑스를 단번에 석권하고 유럽 대륙을 휩쓸었다. 전격전은 기술적으로는 압도적 제공권과 매우 빠른 전차, 최첨단 통신수단 덕분이었지만, 피로와 두려움을 모르는 ‘독일 병정’이 없었다면 불가능했다.

프랑스군 지휘부는 벨기에 아르덴 숲을 돌파한 독일군이 뫼즈(Meuse)강을 건너 국경 도시 스당(Sedan)까지 치고 나오려면 2주일은 걸릴 것으로 예상했다. 그러나 불과 3일 만에 얼굴을 내밀었다. 순식간에 도하 작전을 벌여 도시를 점령했다. 아르덴 숲을 나온 독일군이 사흘 밤낮을 쉬지 않고 행군했기 때문인데, 수십만 명의 군인을 슈퍼맨으로 바꾼 건 퍼비틴(Pervitin)이라는 약물이었다.

베를린의 제약회사 템믈러가 만든 퍼비틴은 강력한 메스암페타민계 약물이다. 근로계층도 애용할 정도로 독일에서는 퍼비틴이 피로회복제로 사용됐는데, 특히 전투 피로 해소에 매우 적합했다. 24시간 내내 적과 대치해야 하는 전차병들과 야간 전투 병사들에게는 사탕처럼 배포됐다. 겁쟁이 병사라도 일단 약을 먹으면 초인이 된 것처럼 돌변했다. 1940년 5월 10일 스당을 공격하는 전투 직전에는 우울감을 호소하던 병사들이 약을 복용한 뒤 죽음을 두려워 않는 전사가 됐다. 인류의 전쟁 역사상 최초로 밤에도 잠을 자지 않고 3일 내내 행군할 수 있는 군대가 탄생했는데, 대부분 병사들이 술에 취한 사람처럼 용맹을 발휘해 총탄이 빗발치는 적진으로 뛰어들었다.

나치 독일의 죄상 중 하나인 퍼비틴 사례를 언급한 건 ‘주 52시간 근무제’ 확대와 관련, 한 수도권 대학의 경영학부 교수로부터 최근 전해들은 산업현장 분위기 때문이다. 학창시절 문재인 정권의 386 실세들보다 더 강하게 독재 정권에 맞서 싸워 3년 옥고까지 치른 그 교수는 “열심히 일하는 이들의 근로 의욕을 꺾는 정책이 계속되면서 최근 2년간 기업 현장의 활력이 완전히 죽었다”고 개탄했다. 또 “근로시간이나 임금 등 노사가 자율적으로 정하면 될 일에 정부가 간섭하다 보니 기업가들은 자신감을 잃고 투자를 포기한 채 외국으로 나갈 궁리만 하고 있다”고 우려했다. 그 교수의 주장을 전해들은 다른 이들도 “문 대통령은 혁신을 말하지만, 정권이 들어선 뒤 사회 전반에서 경쟁과 혁신, 활력이 사라지고 있다”고 동조했다.

히틀러 같은 전체주의 독재자는 선전ㆍ선동과 약물까지 사용해 국민에게 ‘가짜 자신감’을 불어넣지만, 정상국가 지도자는 퍼비틴이 없어도 국민들이 공감하는 ‘진짜 자신감’을 만들어 낸다. 임기 후반기에 접어든 문 대통령은 소득주도 성장 정책과 부동산 정책이 효과를 내고 있고, 외교ㆍ안보정책도 문제가 없다고 거듭 밝혔지만 전문가와 많은 국민들은 생각이 다르다. 전반기 상황에 대한 냉정한 분석과 비판적 지지를 수용한 정책 전환만이 어수선한 사회 분위기를 반전시킬 건전한 ‘퍼비틴’일 것 같다.

조철환ㆍ뉴스3부문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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