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디스토리] “의료소송, 병원ㆍ의사가 손 쓰면 끝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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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디스토리] “의료소송, 병원ㆍ의사가 손 쓰면 끝납니다”

입력
2019.11.25 0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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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 ‘기울어진 운동장’ 의료소송

2014년 1월 서울의 한 대학병원 응급실을 찾았다가 7시간 만에 숨진 전예강(당시 9세)양의 어머니 최윤주(가운데)씨가 집회에 참석해 눈물을 흘리고 있다. 연합뉴스

“2012년 의료소송을 제기해 대법원까지 왔는데 결국 패소했습니다. 아버지가 너무 황망하게 돌아가셔서 억울하고 분한 마음에 의료소송을 했지만 정신적ㆍ경제적으로 피해만 입었네요. 사건을 수임했던 변호사도 ‘할 말이 없다’며 ‘다신 의료소송을 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하더군요.”

2011년 11월 A(68)씨는 서울 종로의 한 종합병원 정형외과에서 양쪽 무릎에 인공관절을 삽입하는 시술을 하다 과다출혈로 사망했다. 아들 B(42)씨는 2012년 2월 병원 측을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를 했지만 2014년 8월 고등법원, 2018년 10월 대법원에서 각각 패소했다.

B씨에 따르면 당시 부친은 인공관절 시술을 마치고 회복실을 거쳐 일반병실로 내려온 후 출혈로 인해 의식을 잃었고, 뇌경색까지 발생해 인근 대학병원 응급실로 이송됐지만 끝내 사망했다. 이송된 A씨를 치료한 대학병원에서는 시술 후 과다출혈이 사망원인이라고 밝혔지만, 법원에서는 A씨를 시술한 병원 의무기록을 감정한 결과 출혈과 관련된 기록이 없고 환자를 신속하게 대학병원에 전원 시켰다며 병원 측의 손을 들어줬다.

[저작권 한국일보]의료사고 손해배상 소송 1심 현황. 그래픽=신동준 기자/2019-11-24

◇믿을 수 없는 의무기록, 감정해 봤자 무용지물

의료전문변호사들은 의료소송은 환자나 유가족들에게 불리하게 ‘기울어진 운동장’이라고 말한다. 가장 큰 이유는 의무기록이다. 의료소송의 승패를 좌우하는 유일한 증거이지만 확보하기도 쉽지 않고, 확보하더라도 의료사고의 원인을 객관적으로 증명하지 못하도록 돼 있는 경우가 비일비재하기 때문이다. 유현정 변호사(나음법률사무소 대표변호사)는 “의료분쟁이 발생해 환자가 의무기록 발급을 요청해도 병원에서 이를 거부하는 경우도 있고, 발급하더라도 일부분만 발급해 주거나 내용 일부를 수정해 발급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면서 “의무기록 미기재, 허위기재, 부실기재, 사후 변작 등으로 인해 환자나 유가족들이 의사의 과실을 증명하기 어려운 경우가 많다”고 주장했다.

유 변호사는 “의료법 제27조에 따르면 의료인이 진료기록부 등 의무기록을 거짓으로 작성하거나 고의로 사실과 다르게 추가기재, 수정하면 3년 이하의 징역이나 3,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거나 면허가 정지될 수 있지만 아직도 문제가 개선되지 않고 있다”고 덧붙였다. 보건복지부 자료에 따르면 의료인이 진료기록부 위반으로 자격정지, 면허취소 등 행정처분을 받은 건수는 5년 간 542건으로, 2014년 123건(면허취소 4건), 2015년 136건(면허취소 3건), 2016년 76건(면허취소 5건), 2017년 108건(면허취소 4건), 2018년 99건(면허취소 9건)에 달했다.

의료전문변호사 C씨는 2017년 서울의 한 대학병원에서 CT 촬영 중 구토 후 저산소성 뇌손상이 발생한 환자 사건을 맡았다. 그는 “환자가 입수한 의사기록지, 간호기록지 등 진료기록부에 구토 당시 의료진이 환자의 기도를 확보하고 토사물을 제거했는지 여부에 관한 기재가 전무했다”고 말했다.

의료전문변호사들이 의무기록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것은 의료소송 시 이뤄지는 수탁감정은 물론 법원 판결에 막대한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이인재 의료사고를 생각하는 변호사모임 대표변호사(법무법인 우성)는 “의료소송 시 법원이나 수사기관(경찰ㆍ검찰)에서 의료행위 과실 및 인과관계 유무를 입증하기 위해 수탁감정기관에 감정을 의뢰하는데, 감정결과는 확보된 의무기록에 근거해 이뤄진다”며 “감정결과 의료사고임을 입증할 내용이 없으면 패소를 막을 수 없다”고 말했다. 수탁감정은 한국의료분쟁조정중재원, 대한의사협회와 함께 국ㆍ공립병원, 대학병원 등 감정촉탁기관에서 이뤄지고 있다.

수탁감정 지연도 문제다. 중재원의 경우 최대 4개월, 의협은 최대 6개월 정도를 기다려야 감정결과를 받아 볼 수 있다. 국공립병원이나 대학병원의 감정결과는 감정의(醫)에 따라 감정결과가 1년 이상 소요되는 경우도 적지 않다. 심지어 1년 넘게 감정을 하지 않고 반송이 되는 경우도 적지 않다고 의료전문변호사들은 말한다. 의료전문변호사 C씨는 “대학병원 교수에게 감정을 의뢰했는데 1년이 지나 ‘의료과실로는 보이지 않지만 아쉬운 점이 있다’라는 한 줄짜리 감정결과를 받은 적이 있다”며 “감정결과가 부실해 재감정, 추가감정을 의뢰하면 환자나 유가족들의 부담만 가중된다”고 말했다. 그는 “말이 4개월, 6개월, 1년이지 그 시간 동안 허송세월을 보내야 하는 환자와 유가족들의 고통이 너무 크다”고 덧붙였다.

[저작권 한국일보]의료인 행정처분 현황. 그래픽=신동준 기자/2019-11-24

◇의사 잘못 의사가 밝히는 구조… “가재는 게 편?”

감정의 신뢰성 제고가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감정은 의사들이 전문적 지식을 토대로 의학적 소견을 제시하는 것이긴 하지만 의료소송을 경험한 환자나 유가족들은 “의사의 잘못을 의사가 밝혀내야 하는 모순이 존재하는 것이 현실”이라고 말한다. 의료전문변호사 D씨는 “중재원의 경우 다른 기관에 비해 감정기간이 짧고 비용이 저렴(건당 30만원, 추가비용 별도)하지만 감정서가 감정의 명의가 아닌 중재원장 명의로 발급돼 감정 책임소재를 따질 수 없다”고 지적했다. 중재원 측은 “해당 전문분야 전문 의료인들로 구성된 500여 명의 자문위원들이 감정을 실시한 후 상임 감정위원들이 회의를 통해 감정을 완료하고 있어 문제될 것이 없다”고 설명했다. 의사단체인 의협의 감정 역시 의사회원들에게 유리하게 감정할 수 있다는 의구심을 받고 있다. 의협 측은 이에 대해 “의료감정의 객관성, 독립성을 확보하기 위해 지난 9월 의협 산하에 의료감정원까지 설립했다”며 “의사회원들에게 유리하게 감정을 할 경우 후폭풍을 감당할 수 있겠나”고 반문했다.

의료소송의 마지막 관문은 재판부 구성이다. 의료전문변호사 E씨는 “1만장이 넘는 의무기록을 샅샅이 뒤져 증거를 제시해도 과거 판결이 ‘병원 편’ 일변도인 의사를 만나면 소용 없다”며 씁쓸해했다. 배준익 변호사(법무법인 엘케이파트너스)는 “사법부에서도 의료소송의 중대성을 인식해 자체 교육을 강화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지만 사법연수원에서 검사, 판사 등이 의료에 대한 이해와 전문성을 확보할 수 있게 심도 있는 교육이 이뤄져야 한다”고 말했다.

김치중 기자 cjkim@hankookilbo.com

※‘메디 스토리’는 의사, 간호사 등 의료계 종사자들이 겪는 애환과 사연, 의료계 이면의 이야기를 전달합니다. <한국일보>의 김치중 의학전문기자가 격주 월요일 의료계 종사자들의 이야기를 연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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