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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형색색] 사형수와의 인터뷰

입력
2019.11.22 04:40
2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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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티이미지뱅크
©게티이미지뱅크

올해 하반기는 ‘사형 확정자의 생활 실태와 특성’ 연구를 위해 구치소와 교도소를 제집 드나들 듯 다녔다. 1997년 12월 30일 집행을 마지막으로 현재 총 60명의 사형 확정자가 서울 구치소, 부산 교도소, 대전 교도소, 광주 교도소, 대구 교도소에 오랜 시간 수용되어 있다. 그 중 군 교도소 수용자 4명을 제외한 56명의 수용자 중에서 32명을 만나서 그들의 삶과 생각을 듣고 있다. 짧게는 5년간 수용된 사람부터 최장 26년째 수용된 사람이 있고, 20대 후반부터 70대까지 연령대가 다양하지만 대개 50, 60대가 많다. 물론 외부와의 접촉을 기피하는 사람과 내면에 깊이 침잠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놓칠 수 있는 한계가 있지만, 경험이 많은 교도관과 교정위원(민간인)들과의 면담을 동시에 진행하면서 보완하기도 한다.

이번 연구에서는 사형 확정자들의 하루, 주중, 월간의 일상을 묻거나 수용 환경에 대한 질문들, 다른 수용자와의 관계, 신앙과 믿음, 취미, 가족관계, 희노애락, 장래의 계획 등을 묻는다. 나아가 사형제도 및 폐지시 대체 형벌에 대한 생각을 묻기도 하고, 언급하고 싶지 않지만 범행 당시 형벌에 대한 고려나 피해자에 대한 기억, 그리고 범죄로 인한 트라우마의 증후를 묻기도 한다. 이 과정에서 법과 문헌에서는 알지 못했던 많은 것을 보고 배우거나 새삼 확인하게 된다. 사형 확정자라는 지위는 동일하지만, 한 명 한 명이 제각각 다른 삶의 태도와 방향, 기억과 의지를 갖고 있다. 매번 다른 장르의 두꺼운 책을 들여다 보는 것 같았다.

짐작하겠지만, 그들의 일상은 매일이 반복될 뿐 주, 월, 년의 단위가 큰 의미가 없다. ‘형집행법’에 따르면 독거와 분리 수용이 원칙이지만, 교정 시설의 여건에 따라 혼거를 하기도 하고 독거를 하기도 한다. 2008년부터는 노역(출역)이 허용되면서, 노역을 원하는 사람들은 일부 교정 시설에 이감되어 다른 수용자들과 작업을 하고 있다. 사형수라는 신분 때문에 배제와 혐오의 대상이 되기도 하고 그로 인해 위축되거나 예민해지기도 하지만, 점차 시간이 흐르면서 그러한 사람들을 이해하거나 이해받기도 한다. 대개 천주교와 기독교, 불교 어느 하나의 종교에 의지하면서 자신의 과거를 반성하거나 후회하면서, 교정위원들을 통해 바깥 세상과 겨우 접촉하고 틈틈이 성경 등 경전을 필사한다. 이를 통해 종교적 깊이를 더하기도 하고, 자신의 다짐과 의지를 새로이 하기도 한다. 가족 관계가 단절되는 경우가 많지만, 여전히 변치 않는 가족에 대해서는 그리움과 미안함을 동시에 갖는다. 나이든 부모에 대한 걱정, 어려서 두고 온 자식에 대한 그리움, 온전히 자식에게 다가갈 수 없는 안타까움, 그리고 성장한 자식들이 만들어갈 새로운 세계(가족)에 자신을 노출할 수 있을지에 대한 회의 등이 크다. 자신 때문에 가족에게 누가 되거나, 심지어 가족에게 발생하는 안 좋은 일을 자신의 업보로 여기고 괴로워한다. 과거 동료 재소자의 접견이나 가족 면회에 들뜨기도 하지만 먼저 모든 인연을 끊고 고립을 자처하는 사람들도 있다.

수년에 한번씩 형이 집행되던 2000년 이전과 그 이후 몇 년간은 집행에 대한 두려움으로 매일 아침 두려워했고, 연말에 그 두려움은 절정이 된다. 오랜 기간 사형이 집행되지 않으면서 비로소 이곳에서의 남은 삶을 진지하게 생각하는 사람들도 많다. 대부분의 사형 확정자들은 자신의 과거 사건에 대해 민망해하고 괴로워한다. 부끄러워하고 자책하기도 한다. 피해자의 얼굴을 떠올리며 몸서리치는 사람들도 있고, 매년 사건이 있던 날 즈음해서 우울증과 몸살을 앓기도 한다. 종교 활동을 통해 피해자들과 유가족에 대한 사과와 구원을 기도하기도 한다. 자신의 행위에 대한 대가로 사형을 마땅하다고 생각하면서도, 그 필요성에 대해서는 의문을 갖기도 한다. 그러나 폐지 시 가석방이나 감형이 없는 종신형에 대해서는 그 막막함을 더욱 두려워한다. 일말의 희망이 없는 수용 생활은 형의 집행보다 더 큰 고통이자 두려움이기 때문이다. 사실 이러한 문제는 사형 확정자들이 법적으로는 미결의 신분이지만, 기결수의 실상을 갖고 있는 데서 비롯한다. 더 나아가 이들이 재사회화같은 교정의 목적과 필요성에서 상당 부분 배제되어 있다는 점도 문제를 심화시킨다.

이번 인터뷰를 통해서 그동안 법과 제도를 들여다보고 해석하는 일을 하면서 정작 그 대상이 되는, 아니 목적이 되는 인간의 모습을 외면하고는 했던 스스로를 반성하게 되었다. 사형이라는 주제에 대해서도 지극히 관념적인 판단을 하는데 그쳤던 것 같다. 일찍이 괴테가 시집 ‘온순한 크세니엔(Zahme Xenien)’에서 말하지 않았던가. “우리의 눈이 태양에 맞추어지지 않는다면, 태양은 결코 보이지 않을 것이다“라고. 법의 목적이자 대상인 인간도 마찬가지 아닐까. 우리가 눈을 인간에게 맞추지 않는다면, 인간은 결코 보이지 않을 것이다. 그 인간이 누구라도 말이다.

김대근 한국형사정책연구원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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