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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가 살아 숨쉬는 도시는 세상도 바꿀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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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가 살아 숨쉬는 도시는 세상도 바꿀 수 있다

입력
2019.11.21 17:51
2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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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산초당 제공
다산초당 제공

지난 6월 국토교통부가 발표한 ‘2018년 도시계획현황 통계’에 따르면 대한민국 인구의 92%가 도시지역에 거주하고 있다. 서울 경기 인천 등 수도권 인구 비율은 50%대에 육박한다. 남들보다 더 많이 돈을 벌고, 더 나은 교육 기회를 얻기 위해 사람들은 도시로 몰려든다.

도시는 맹목적 성공을 향한 욕망의 집합소다. 그래서 늘 숨막히고 정신 없다. 또 너무 크고 복잡해 한눈에 포착되지 않는다. 걷고, 먹고, 일하고, 노닐고, 길을 잃고 또 찾으며 매일 매일 도시를 겪고 있지만, 현대인들이 도시를 낯설게 느끼는 건 그 각박함과 어지러움을 견딜 수 없어서다. 평생을 도시에 살아도 이방인처럼 느껴지는 이유다.

도시와 친해질 방법은 없을까. 도시의 삶이 행복할 순 없을까. 최근 나온 ‘김진애의 도시 이야기’와 ‘도시는 어떻게 삶을 바꾸는가’는 도시와 인간의 선순환 관계를 모색한 책이다. 접근 방식은 다르지만, 두 책이 말하고자 하는 바는 하나다. “도시에서 사람과 이야기를 발견하라. 도시는 살아나고, 세상은 조금 달라질 수 있다.”

◇내가 사는 도시에 말을 걸어 보자

도시건축가로 대중에 잘 알려진 김진애씨는 도시를 이야기로 접근해보자고 권한다. 인간과 욕망이 있으면 이야기는 절로 탄생하는 법. 다양한 인간과 욕망으로 가득한 도시는 마르지 않는 이야기의 샘물이다.

저자는 먼저 도시에 대한 부정적 시선부터 깨부순다. 사람들이 도시를 불안해하고 마음 주지 못하는 건 익명성 때문이다. 하지만 책은 익명성 속에서 오히려 도시의 무한한 자유가 커진다고 말한다. 부족 사회나 신분제 사회와 달리 도시에선 출신 성분을 따지지 않기에 자유롭고 정의롭게 관계 맺기를 할 수 있다. 익명성 개념에서 보자면, 스스럼 없이 다닐 수 있는 길과 표현의 자유가 보장된 광장은 도시의 축복이다.

책은 익명성을 비롯해 권력과 권위, 기억, 예찬, 대비, 스토리텔링, 디코딩, 욕망, 부패에의 유혹, 현상과 구조, 돈과 표, 돌연변이와 진화 등 12가지 ‘도시적 콘셉트’를 제시하며 도시란 거대한 텍스트를 어떻게 읽어나간다. 무심코 지나쳤던 길, 광장, 건물, 공간에 대한 번뜩이는 지적 통찰이 가득하다.

그 중 권력 공간에 대한 분석은 흥미를 자아낸다. 권력은 보통 건축물을 통해 권위의 아우라를 과시하려 든다. 그러나 그 기저에 흐르는 근본적 감정은 두려움이다. 구중궁궐인 청와대는 대표적인 예다. 대통령 집무실은 비서실 공간과도 상당히 떨어져 있고, 청와대 내 건물은 모두 흩어져 있다. 위치만 놓고 봐선 시민들의 발길은 물론 눈길도 피하려 든 공간이다. 권위를 과시하기 위해 열주와 돔으로 몸집을 한껏 키워놓은 국회의사당은 흉물 그 자체다. 반면 서초동 검찰청은 무표정한 포커페이스다. 특징 없는 건물. 그러나 이는 ‘우리는 딱히 성격을 드러낼 필요가 없다. 우리는 그 자체로 공권력이다’는 메시지라고 저자는 분석한다. 인도와 멀리 떨어져 있는 건 시민과의 접촉을 차단하고 폐쇄성을 드러내려는 의도다.

일상공간에선 대단지 아파트가 골칫거리다. 배타적 성채와 같은 대단지 아파트가 도시의 길들을 없애버리면서 실핏줄처럼 얽힌 골목길은 모두 사라진다. 김씨는 대단지 아파트가 소통의 맥을 끊고 있다고 비판한다. 대안으로 제안한 건 ‘도시형 아파트’다. 길을 최대한 많이 만들고 길에서 바로 건물로 들어갈 수 있는, 유럽에서 많이 볼 수 있는 ‘가로형 아파트’다. “도시가 이야기가 되면 될수록 좋은 도시가 만들어질 가능성이 높아진다.” 이제 각자의 이야기를 포개볼 차례다. 당신이 사는 동네, 도시에게 말을 걸어보자.

◇카페가 많을수록 동네는 안전해진다

폭염을 사회적 재난으로 풀어낸 ‘폭염사회’로 세계적 주목을 받았던 사회학자 에릭 클라이넨버그 뉴욕대 교수. 그 역시 도시에서 답을 찾는 사람 중 하나다. 그가 주목한 건 사람들이 교류할 수 있는 물리적 공간인 ‘사회적 인프라스트럭처(Social infrastructure)’다. 지역사회의 사회적 인프라가 튼튼할수록 시민들의 삶의 품격은 현격하게 차이를 보였다.

버려진 건물을 관리하고, 카페나 녹지의 수를 늘리니 범죄율은 실제 감소했다. 소규모 학습 공동체 형성으로 학업 성취도가 높아지거나, 공동체 텃밭과 농장이 지역민의 건강 문제를 해결한 사례도 나온다. 물리적, 심리적 공존은 민주주의를 활성화하는 데도 기여한다고 저자는 강조한다.

“사회적 인프라가 퇴화한다면 어떤 결과가 벌어질지는 뻔하다. 사람들은 공공장소에서 보내는 시간을 줄이고, 각자 은신처에 몸을 웅크릴 테다. 사회 연결망은 느슨해지고 불신이 자라나고, 시민사회가 기운다.” 동네 카페, 놀이터, 도서관 등 느슨한 연대의 공간이 많아질 수록 사회를 바꿔나갈 희망의 힘은 더 커진다고 책은 말한다.

강윤주 기자 kkang@hankookilbo.com

김진애의 도시이야기

김진애 지음

다산초당 발행ㆍ320쪽ㆍ1만7,000원

도시는 어떻게 삶을 바꾸는가

에릭 클라이넨버그 지음ㆍ서종민 옮김

웅진지식하우스 발행ㆍ372쪽ㆍ1만7,5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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