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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담] “중소기업에 계도기간 준다지만… 주52시간제 불확실성 여전하다”

입력
2019.11.21 20:00
2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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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기문 중소기업중앙회 회장 

 중기 육성책ㆍ공정경제 등 정책 방향 긍정적 

 기술 탈취ㆍ단가 삭감 등 대기업 ‘갑질’ 줄어 

 최저임금ㆍ주 52시간 등 기업 압박도 가중 

 중기 중심 산업구조 만들려면 기업하기 좋아져야 

김기문 중소기업중앙회장(오른쪽)이 서울 여의도 중소기업중앙회관에서 장인철 논설위원과 주52시간제 확대 등에 따른 업계 상황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오대근기자
김기문 중소기업중앙회장(오른쪽)이 서울 여의도 중소기업중앙회관에서 장인철 논설위원과 주52시간제 확대 등에 따른 업계 상황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오대근기자

김기문 중소기업중앙회장은 이번 재임이 세 번째다. 2007년 3월부터 2015년 2월까지 8년에 걸쳐 23대, 24대 회장을 연임한 뒤, 기업경영 현장에 복귀했다가 지난 2월부터 세 번째 임기를 시작했다. 중소기업 경영자로서 그는 토종 시계 브랜드 ‘로만손’을 성공시킨 후, 종합 액세서리까지 사업을 확장해 ‘김연아 목걸이’를 히트시킨 ‘제이에스티나’를 일군 백전노장이다. 거기에 중기중앙회장을 9년째 하고 있으니, 누구보다 오랫동안 중소기업 정책 현장을 누벼온 인물인 셈이다. 그런 그조차도 “요즘처럼 격변의 파고와 위기감을 느껴본 적이 없다”고 말한다. 과속으로 치닫던 최저임금 인상 문제에서 한숨 돌리나 했더니, 이번엔 300인 미만 중소기업에 대한 주 52시간제 확대 적용이 눈 앞에 닥쳤다. 여차하면 산업용 전기료도 올라갈 조짐이다. 회원사들의 아우성이 빗발치는 가운데 정부와 국회를 오가다가 마침내 노동계의 협조를 구하기 위해 최근엔 사상 처음으로 한국노총까지 찾았다. 그 어느 때보다 중소기업 육성을 강조하는 정부에서, 그 어느 때보다 중소기업들의 비명이 커지는 역설적 상황에 대해 기업 경영자이자 업계 대표로서 그의 주장을 들어봤다.

-상시 근로자 수 50인 이상 300인 미만 중소기업에 대한 주52시간제가 불과 한 달여 후인 새해부터 적용된다. 정부가 보완책을 내놨지만 업계 불만은 여전한 것 같다. 주 52시간제로 인한 중소기업의 타격을 설명해줄 수 있는 계량적 데이터가 있나.

“50~299인 사업장이면 중소기업이다. 국내 약 4만5,000개 기업이 해당된다. 중앙회가 지난 10월 자체조사를 했다. 주 52시간 준비 안된 곳이 65.8%, 시행 유예가 필요하다는 응답이 52.7%였다. 업계의 엄살로만 치부할 상황이 아니다. 52시간제 맞추려면 사람 더 뽑아야 하는데, 중소기업에서 사람 구하기가 어디 그리 쉬운가. 교대제를 개편할 인력조차 구하기 어렵다. 당연히 납기일 차질 등 현장 부작용 속출이 우려될 수밖에 없다. 근로자들도 달가워하지 않는다. 중앙회 추산으로는 근로시간 단축으로 중소기업 근로자 월평균 임금이 1인당 33만4,000원 감소한다. 전체 중소기업이 부담해야 할 추가비용도 3조3,000억 원에 이른다. 확실한 팩트는 대다수 중소기업뿐만 아니라 근로자들도 곧이곧대로 주 52시간제를 감당하는 건 심각한 무리라는 것이다.”

-탄력근무제, 재량근무제 등 관련 입법의 국회 처리가 어려운 상황에서 나온 정부 대책의 방향은 기업 규모별 ‘충분한 계도기간’과 특별연장근로 인가 사유 확대 정도다. 정부와 정치권에 하고 싶은 말은.

“업계도 장시간 근로관행을 개선해야 한다는 데는 이견이 없다. 다만 최저임금과 마찬가지로 기업 현실을 감안해 연착륙 할 수 있게 해달라는 거다. 50인 이상 299인 구간 사업장이 뿌리산업이나 전통제조업이 가장 많은 구간이다. 24시간 가동하는 경우가 많다. 예를 들어 주물에 불을 붙이면 계속 가동해야 작업을 이어가는 식이다. 껐다 켰다 할 수 없다. 예열을 해야 하기 때문에 전기료도 엄청 많이 들어간다. 계도기간 줘서 단속 안 하겠다는 건 그래도 중소기업 사정을 봐주려고 한 거지만, 기업들로서는 여전히 불확실성이 크다. 특별연장근로 인가 사유 확대 문제만 해도 노사합의를 전제로 하면 실효성을 기대하기 어렵지 않느냐는 지적이 있다.”

-중기업계에서는 시행 1년 유예를 요청하고 있는데, 그렇게 하면 문제 없다는 얘긴가.

“1년 유예하고, 그 동안에 입법적 보완이 이루어지도록 하자는 얘기다. 입법이 중요하다. 예컨대 민주당 의원 입법안에도 52시간 대상 사업장을 세분화해 200~299인은 21년, 100~199인은 22년, 50~99인은 23년, 하는 식의 제안이 있다. 또 일본처럼 노사 자율에 기반한 추가연장근로제를 도입할 수도 있다. 우리나라는 연장근무가 주 12시간으로 정해졌지만, 일본은 월 45시간으로 해서 필요에 따라 주당 연장근무를 조정할 수 있도록 했다. 또 노사합의 시 월 100시간까지 추가근로를 허용한다. 이런 게 아예 안 된다는 건 비합리적이다. 탄력적 근로시간제, 선택적 근로시간제, 인가연장근로제 등도 유기적으로 조율할 수 있다고 본다”

-현 정부는 대중소기업 상생과 중소기업을 살리는 정책으로 공정경제를 강조해왔다. 공정경제가 중소기업에게 왜 중요한가.

“우리 경제는 하도급거래를 통해 대기업이 중소기업 이익의 대부분을 독식하는 구조가 고착화 돼 있다. 중소기업들로서는 임금이나 재료비 등 당연한 공정원가조차 납품단가에 반영하기 어렵다. 대기업들로서는 납품단가 후려치기 같은 ‘갑질’을 통해 눈앞의 이익을 극대화할 수 있을지 모른다. 하지만 장기적으로는 협력 중소기업의 수익성 저하, 개발투자 감소 등으로 인해 결국 대기업의 경쟁력 약화로 이어져 대ㆍ중소기업 모두 죽는 길이 된다. 일본은 이런 식의 대기업 갑질이 거의 없다. 미국 대기업에선 수급 중소기업의 납품단가에 대해 원자재값 연동제까지 적용하는 경우도 있다고 들었다. 우리의 경우, 공정경제의 틀이 아직은 실질적으로나 개념적으로 생활화 돼 있지 않다고 본다.”

-현 정부 들어 실제 현장에서 도움이 될 만한 공정경제 정책으로 어떤 게 추진됐고, 실제 효과는 어떤가.

“여러 정책의 효과가 유기적으로 나타나고 있다고 본다. 우선 기술탈취나 납품단가 후려치기 악습은 많이 개선된 것 같다. 올해 현대차와 협력업체 BJC 간의 기술탈취 관련 특허분쟁 소송에서 BJC가 승소한 사례 등은 대기업에도 경종을 울렸다고 본다. 납품단가 후려치기는 소위 말하는 협력 중소기업에 연례적인 ‘코스트 리덕션(원가인하)’을 안 하는 대기업들이 하나 둘씩 늘어나기 시작했다. 매년 납품단가를 3~5% 깎던 식이 없어지니, 그게 확산되면 굉장히 좋을 것이다. 중소기업 간 재하청 거래 등에서도 현금결제가 늘어나고 있다. 이런 부분은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싶다”

-국내 중소기업의 해외 이전 문제가 자주 거론된다. 결국 기업하기 어려운 환경 탓일 텐데, 어떤 요인들이 그런 환경을 만든다고 생각하는가.

“지난해 국내 중소기업의 해외 직접투자는 100억1,500만 달러로 사상 최대치를 기록했다. 반면 국내 설비투자는 급감하고 있다. 개방형 경제구조인 우리나라 특성 상 기업의 해외진출을 부정적으로만 볼 필요는 없다. 하지만 해외투자 증가가 국내 기업환경 악화 때문이라면 바람직하지 않다. 업계에서는 최저임금 과속인상을 비롯해 주 52시간제, 기간제ㆍ파견 규제, 경직적 해고규정 등이 전반적 중소기업 경영을 압박하는 요소라고 본다. 여기에 화평ㆍ화관법 같은 환경규제 강화도 힘겹고, 기업 오너 입장에서는 여전히 현실과 괴리된 가업상속공제 제도 같은 것도 큰 부담이다. 국내 투자 활성화를 위한 발상의 전환이 필요한 부분이다”

-대ㆍ중소기업 간 근로자 임금격차도 큰 문제다. 왜 격차가 발생하고, 어떻게 하면 해소할 수 있다고 보는가.

“과거엔 대ㆍ중소기업 근로자 임금격차가 대략 100대 80이었는데 지금은 거의 반토막이라고 한다. 대기업이 돈을 많이 벌고 중소기업이 돈을 못 버니 그렇다. 영업이익률도 각각 7.2%, 3.5%로 대기업이 두 배다. 그나마 독자 브랜드를 가질 정도의 중소기업은 사정이 나은데, 뿌리산업이나 전통제조업에서 범용기술로 대기업 하청업을 하는 기업들 사정은 더 나쁘다. 단기적으로는 중소기업 근로자에 대한 세제 감면, 근로자 급여 보전 지원 등을 더 강화하는 조치가 필요하다고 본다. 장기적으로는 대ㆍ중소기업 간 상생 차원의 수익 공정배분 관행이 정착돼야 한다. 내가 재선되면서 ‘표준원가 책정 시스템’을 구축하려고 했는데 아직 만족스럽진 못하다. 임금 못지않게 복지 격차를 해소하는 것도 중요하다”

-아직은 아니지만 에너지 전환 정책과 한전 수익성 악화 등에 따라 향후 산업용 전기료 인상 문제가 본격화할 조짐이다. 산업용 전기료 인상이 중소기업계에 미칠 파장과 충격 최소화 방안은.

“그 동안 값 싸고 질 좋은 전기는 우리나라 산업발전의 원동력이었다. 산업용 전기요금 현실화 계획이 국정과제로 돼 있어 그 근간이 흔들리지 않을까 하는 불안감이 없지 않다. 설문조사를 해보면 중소기업에서 전기요금은 전체 평균 매출액에서 4.48%를 차지하는 정도다. 아까 얘기한대로 영업이익이 매출의 3.5% 정도니까 전기요금이 얼마나 큰 비용인가. 산업용 전기요금 현실화가 불가피하다면 생산원가 상승 압력이 최소화할 수 있도록 중소기업 지원책이 가동되면 좋겠다. 대기업은 에너지저장시스템(ESS)을 써서 야간 경부하 전기를 저장했다가 쓰지만, 중소기업은 ESS 설비가 비싸 엄두를 못 내다 보니 대기업에 비해 10% 넘게 비싼 전기요금을 부담하고 있다. 전기요금의 3.7%로 돼있는 전력산업기반기금 부담금 감면도 검토할 필요가 있다”

-중소기업 중심의 산업구조 개편을 위해 시급한 법과 제도 개선 사항을 꼽아달라.

“20대 국회 법안처리율이 29%밖에 안돼 비판을 받고 있는데, 주 52시간제 보완입법 등 중소기업 현안 입법도 함께 정체되고 있어 걱정이다. 지난 7일 경제5단체가 공동으로 입법 촉구 기자회견을 하기도 했다. 주 52시간제 관련해서는 시행유예 법 개정이 급하고, 다양한 유연근무제를 보완하는 것도 절실하다. 화평ㆍ화관법도 올해 말까지 유예기간을 뒀으나 준비가 안 된 중소기업이 43%에 달한다. 가업상속공제제도 역시 가업으로 기업을 승계하는 걸 단순히 ‘부의 대물림’으로 보는 것에서 벗어나 기술과 경영, 일자리 같은 사회적 가치를 존속시키는 일로 보고 하루 속히 개선해야 한다고 본다”

인터뷰=장인철 논설위원 icjang@hankookilbo.com

정리=변한나(논설위원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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