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S “2대 칼리프 알쿠라이시” 더 잔인한 폭력ㆍ복수 다짐
미군 시리아 철수 등 호재, 비밀 네트워크 구축 더 쉬워져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지난달 27일(현지시간) 이슬람국가(IS)의 수괴 아부 바크르 알바그다디(이하 알바그다디)가 전날 시리아 북부 이들립주(州)의 은신처에서 미국 특수부대인 델타포스 요원들과 군견에 쫓기던 중 자살폭탄 조끼를 터뜨려 자녀 3명과 함께 사망했다고 발표했다. 이로써 알바그다디는 지하디스트(이슬람 성전주의자)들의 기억 속에 자신이 주장해 왔던 ‘지하드(성전ㆍ聖戰)를 수행하다 죽어 파라다이스에 들어간 칼리프(최고 지도자)’로 영원히 남게 됐다.
IS의 최전신은 아부 무스압 알자르카위가 조직한 ‘유일신과 성전그룹(1999년~2004년 10월)’이다. 2004년 5월 한국 군납업체 가나무역 직원인 김선일씨를 납치해 참수하고, 같은 해 10월 알카에다에 ‘바이야(bai’yaㆍ충성서약)’를 했던 단체다. 이 조직은 이후 몇 차례 이름이 바뀌며 ‘이라크 이슬람국가’(ISI)로 이어졌고, 2010년 5월 ISI 수장이 된 알바그다디는 다시 조직 명칭을 이라크-샴(레반트) 이슬람국가(ISISㆍISIL, 2013년 4월~2014년 6월)로 바꾼다.
이라크 모술을 점령한 직후인 2014년 6월 29일 이곳의 알누리 모스크에서 자신의 모습을 처음 드러낸 알바그다디는 칼리프를 자처하며 IS 수립을 선포한다. ‘ISISㆍISIL’에서 ‘IS’로 명칭을 바꾼 것은 이라크와 샴(시리아ㆍ레바논ㆍ팔레스타인ㆍ요르단 지역)에 한정된 영토에서 벗어나 과거 ‘대이슬람제국’ 시대의 칼리프제를 이상향으로 했음을 시사한다. 그는 IS 선포 직후 세계 모든 무슬림들에게 ‘순수’ 이슬람국가인 IS로 히즈라(이주) 할 것을 명령했으며, 많은 젊은 ‘외로운 늑대들’과 이슬람주의 조직들은 IS와 알바그다디에게 바이야를 하고 합류한다. 부족주의 사회나 이슬람 사회에서 ‘바이야’는 ‘권리(주권) 이양’과 같은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IS 수립 선포 후, 알바그다디는 이전과는 비교되지 않을 정도의 폭력을 자행했다. 기독교도와 이슬람 시아파 같은 ‘이교도’, 수니파 내 샤리아(이슬람법)를 어긴 배교자들을 상대로 참수와 여성 성 노예화, 수장과 화장, 심지어 돌로 쳐 죽이는 극단적 형벌까지 가했다. IS는 석유지대 점령, 은행 강탈, 피랍자 석방금, 점령지 주민에 대한 과세 등을 통해 ‘세계에서 가장 부유한 테러리스트’가 됐고, 점령지에서 군과 경찰, 관료제와 세금 제도, 슈라위원회와 이슬람 법원 등을 도입해 ‘하나의 이슬람 제국형 주권국가’임을 과시하려고 했다.
알바그다디 사망 나흘 만인 10월 30일 IS는 그의 죽음을 공식화했고, IS의 최고 자문기구이자 결정기구인 슈라위원회는 7분 30초 분량의 오디오를 통해 제2대 칼리프로 ‘아부 이브라힘 알하셰미 알쿠라이시(이하 아부 이브라힘)’를 선출했으며 그에게 바이야를 했다고 발표한다. 아랍어 성명 구조상 알쿠라이시와 알하셰미는 성에 해당되고, ‘아부 이브라힘’이 이름에 해당된다.
아부 이브라힘은 분명 본명은 아니며, 성명(姓名)에서 그 의도를 가늠할 수 있다. 이브라힘은 아브라함을, 알쿠라이시는 이슬람 창시자 무함마드 부족 출신임을, 알하셰미는 무함마드의 직계나 방계 가문인 하심(하시미트) 가문을 뜻한다. 이슬람에서 이브라힘은 가장 신심이 깊었던 ‘믿음의 조상’이다. 결국 ‘아부 이브라힘 알하셰미 알쿠라이시’라는 가명을 통해 그에게 칼리프의 자격과 정통성을 부여하는 것이다.
IS의 제2대 칼리프로 그가 임명되자 “아부 이브라힘은 누구인가?”와 “IS의 미래상”이 최대 관심사로 떠올랐다. 그의 정체에 대해 한때 이라크 알카에다의 최고위층 일원이었던 ‘아미르 무함마드 사이드 압달 라만 알마울라’이며, ‘하지 압달라’로도 알려진 사람이라는 추정이 나온다. IS의 주장에 따르면, 아부 이브라힘은 서구 국가들과의 전투에서 베테랑급이었고, 종교 교육을 받았으며, 전투 지휘 경험을 가진 인물이다. 이슬람 학자이자 지하드 야전 사령관으로서 칼리프 자격을 갖춘 인물임을 강조하는 것이다.
지하드 조직의 온라인 활동을 추적하는 미국 기업 ‘시테 인텔리전스 그룹’의 대표 리타 카츠에 의하면, IS는 ‘이 새 지도자의 어떤 영상 연설도 보여주지 않을 것’이며 ‘그의 얼굴을 최소한으로만 공개할 것’으로 보인다. 향후 수년 동안 그의 얼굴은 노출되지 않을 것이므로 IS 내 핵심 서클 외에는 아무도 정확히 그가 누구인지 모를 것이다. 다만 지난 1일, 트럼프 대통령은 미국 정부가 아부 이브라힘의 진짜 정체를 ‘정확히’ 알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이라크 사담 후세인 군대의 고위 군인이었고, 2003년 이라크 전쟁 당시 이라크 내 미군 감옥에서 알바그다디를 만나 그의 보안을 담당해 온 압둘라 카르다시는 미국의 이 같은 주장을 일축한다. 알바그다디가 2014년 모술에서 자신을 칼리프로 드러내기 전까지만 해도 그는 ‘신비로운 인물’이었고, 그 이후에도 자신을 거의 노출시키지 않았다는 것이다. 즉 아부 이브라힘도 자신을 거의 드러내지 않고, 신비감을 통해 ‘권위 있는 통치자’로 남을 것이라는 설명이다. 참고로 일각에서는 카르다시가 아부 이브라힘이라는 말도 나온다.
“미국은 IS가 지금 유럽의 문턱에 있고, 중앙아프리카에 있음을 알지 못하고 있다. IS는 동에서 서까지 확장되고 있다. 새로 선택된 지도자는 너희들이 보았던 공포를 잊게 만들 것이다. 그리고 알바그다디 시대에 맛본 성취가 달콤하다고 느끼도록 만들 것이다.” 아부 이브라힘이 선임된 직후 나온 IS의 첫 성명의 주요 내용이다. 알바그다디보다 훨씬 더 잔인한 폭력을 자행하겠다는 것이다.
IS의 미래는 두 갈래 길로 예측해 볼 수 있다. 만일 IS가 파편화된 여러 조직들로 나뉘고. 그 능력이 약화된다면 아부 이브라힘은 ‘재만 남은 (조직의) 칼리프’가 될 것이다. 다만 IS가 과거 그랬던 것과 같이 분리되어 나온 새로운 정치이슬람 그룹이 주도권을 형성해 힘과 영토를 확장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한편 IS가 소멸 또는 약화의 길이 아닌 오히려 ‘IS 3.0’으로 진화할 가능성도 있다. 지난 3일 IS의 이집트 지부인 ‘시나이 지방’은 새 칼리프에 바이야를 했고, 4일에는 방글라데시, 소말리아 지역 지부가 바이야를 했다. 유럽, 아프리카, 아시아에 흩어져 있는 수백수천에 이르는 무자히딘(이슬람 전사)을 보유한 20여개 IS 지부나 IS 추종 그룹이 언제 어떤 방식으로 바이야를 할지 예상하기 어렵다.
시리아와 이라크에만 2,000여명의 외국인을 포함해 1만4,000여명의 무자히딘이 있다. 또 시리아 북동부 쿠르드 지역에서 미군이 철수하면서 쿠르드인으로 구성된 시리아민주군(SDF)이 관리하던 IS 대원들도 200여명 이상 감옥에서 탈출한 것으로 전해진다. 이들은 잠시 지하에 숨어 있다가 결국 IS에 합류할 것이다.
미 국방부 감찰관실도 19일 발표한 분기별 보고서에서 “IS는 알바그다디의 사망 이후를 버텨낼 준비가 돼 있다”면서 “군사 작전을 계속 펼치며 응집력을 유지할 것이며, 최소한 지금 같은 경로로 계속 나아갈 것”이라고 내다봤다. 보고서는 또 미군의 시리아 북동부 철수로 인해 “대테러 압박이 부재한 상황에서 IS가 비밀 네트워크를 구축하기 더 쉬워질 것”이라고 우려했다. 최근의 호르무즈 위기, 계속되는 시리아ㆍ리비아ㆍ예멘 내전,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의 혼란 상황 역시 IS와 다른 정치이슬람 그룹들이 성장하는 자양분이 될 것이다. 이들은 웹3.0으로 무장해 다시 세상을 어지럽힐 가능성이 높다.
정상률 명지대 중동문제연구소 HK교수ㆍ2020년 한국중동학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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