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강릉 월화거리
올림픽 앞두고 철도 지하화 “평창올림픽이 준 선물”
시내 관통 2.6㎞ 철길 걷어내고 공원 숲길 광장 조성
아기자기한 카페ㆍ식당 들어서며 식도락 여행지 중심
“어서 오우야(어서 오세요).”
강원 강릉시 교동에 자리한 강릉역 횡단보도를 건너 5분 남짓 걸으면 말끔히 단장된 공원이 모습을 드러낸다. 강릉시가 지난해 조성한 월화거리 초입인 말 나눔터 공원이다. 야생화가 피어 있는 화단과 숲길에 들어서자 금세 마음이 편안해진다.
숲 사이로 보이는 ‘널 응원해’ ‘밥은 먹고 다니냐’ 등 앙증맞은 캘리그래피 글자들은 마음을 쓰다듬어 준다. 가족, 연인은 물론 반려동물과도 함께하기 제격이란 생각이 드는 곳이다. 산책로인 말 나눔터 공원에서 힐링숲길, 임당광장~역사문화광장~생활문화광장~월화교 및 전망대~월화정 숲길로 이어지는 7개 구간(2.6㎞)으로 이뤄진 월화거리는 이렇게 손님을 맞고 있다.
◇평창올림픽이 준 선물
강릉 사람들에게 월화거리는 ‘평창올림픽이 준 선물’이다. 이곳은 2년 전만 해도 남대천을 지나 강릉역까지 도심을 가로지르던 철로였다. 소음과 먼지를 내뿜는 지상철도는 도시 발전을 가로막는다는 핀잔을 들었다.
그러던 중 평창올림픽을 치르기 위해 2017년 12월 완공한 강릉선 철도 시내구간이 지하로 조성되자, 강릉시는 쓰임새가 사라진 레일을 걷어내고 공원과 산책코스, 문화광장으로 탈바꿈시켰다.
4년 전 여름 폐철길이 경의선 숲길 공원으로 변신한 서울 연남동 일대와 태생이 비슷한 셈이다. ‘연트럴파크’란 애칭이 생긴 연남동과 마찬가지로, 월화거리 역시 공원과 산책로를 따라 예쁜 카페와 풍물시장이 문을 열자 사람들이 북적이기 시작했다. 월화거리에선 지난해 열린 평창올림픽과 패럴림픽 기간 중에도 거리응원과 콘서트, 한류스타 팬 미팅 등이 열려 존재감을 과시하기도 했다.
도시재생 측면에서도 반세기 동안 도심을 양분하던 철로의 용도를 바꿔 구도심에 활력을 불어넣었으니, 성공 사례라 부를 만하다는 게 전문가들의 평가다. 강릉 시민 이정환(42)씨는 ”골칫거리였던 기찻길이 휴식과 즐거움, 먹을거리가 함께 있는 곳으로 변모했으니 평창올림픽이 얼마나 고마운지 모른다”고 흐뭇해했다.
◇식도락 여행 천국
말 나눔터 공원과 힐링숲길, 임당광장을 지나 모습을 드러낸 역사문화광장~생활문화광장~월화교 전망대 구간은 전국에서 손꼽히는 미식 천국이다.
역사문화광장 풍물시장엔 감자전과 옹심이, 메밀전 등 강릉에 오지 않고선 맛보기 힘든 먹을거리가 가득하다. 이뿐만 아니라 보기만 해도 군침이 도는 떡볶이와 샌드위치, 어묵 등 길거리 음식도 관광객들의 발길을 멈추게 한다. 애주가라면 오징어 순대와 생선전에 막걸리 한잔이 생각날 만하다.
성남ㆍ중앙시장과 인접한 생활문화광장은 요즘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 가장 ‘핫’한 곳이다. 곧게 뻗은 가로수길 사이로 자리한 마늘빵과 중화 짬뽕빵 등 독특한 아이디어가 담긴 먹을거리를 맛보려는 미식가들이 몰려들고 있기 때문이다. 이들 가게엔 주말이면 긴 줄이 늘어서는 것이 다반사다. 길게는 1시간을 넘게 기다려야 하지만 한입 베어 물면 금세 기다린 수고를 잊게 만드는 맛이다.
게다가 이들 대부분이 3,000~4,000원이면 맛볼 수 있어 가성비도 좋다는 게 관광객들의 공통된 얘기다. ‘안 먹어 본 사람은 있어도 한번만 먹어본 사람은 없다’는 상투적인 말에도 공감이 가는 이유다. 주말을 맞아 서울에서 월화거리를 찾은 김서진(32)씨는 “아기자기한 카페와 저렴하면서 맛 좋은 길거리 음식까지 올해 찾은 최고의 식도락 여행지”라고 평가했다.
산책로를 따라 중국 만리장성을 축소해 놓은 듯한 전망대 옆으로 자리한 카페들도 스페셜티 원두로 만든 커피와 수제 맥주를 내놓고 경쟁에 가세했다. 양꼬치와 초밥, 땅콩 아이스크림 등 아시아 푸드점도 기존 맛집들에 도전장을 냈다.
생활문화광장 인근 중앙ㆍ성남시장으로 발길을 옮겨도 싱싱한 회 등 해산물을 저렴하게 맛볼 수 있다. 시장의 히트 상품인 닭강정과 아이스크림 호떡, 어묵 크로켓은 강릉을 대표하는 음식으로 자리매김할 정도로 불티나게 팔린다. 강릉시와 성남시장 상인회가 3월부터 매주 금ㆍ토요일 연 야시장도 새로운 볼거리를 제공했다. 지난달엔 강릉의 특산물인 건어물과 맥주가 어우러진 ‘건맥 축제’를 열어 눈길을 끌었다. 요즘 케이블 방송에 자주 나오는 대만 타이베이(臺北) 야시장 등 세계 어느 미식 여행지와 견주어도 뒤처지지 않을 길거리 음식 천국인 셈이다.
최종서(48) 강릉시 시장지원 담당은 “철길을 걷어내고 만든 산책로와 공원이 구도심 활성화는 물론 전통시장에도 활력을 불어넣는 시너지 효과를 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며 “시민과 관광객들을 위한 편의시설을 확충할 계획”이라고 강조했다.
◇감성마케팅 가득한 ‘사랑의 성지’
강릉시는 이 일대가 1,300년 전 애틋한 사랑 이야기를 간직한 정자가 있던 곳이란 점에 주목, 월화거리란 이름을 붙였다. 일종의 감성 마케팅이다.
남대천을 배경으로 한 설화의 주인공은 신라 왕손인 강릉 김씨 시조 명주군왕(溟州郡王)의 아버지 무월랑과 연화부인이다. 옛 강릉의 지명인 명주와 수도인 경주를 오가며 어렵사리 부부의 연을 맺은 이곳을 두 사람의 이름을 따 월화정(月花亭)이라 부르게 됐다는 내용이다.
강릉시는 이를 활용, 월화거리를 ‘사랑의 성지’로 키우기 위한 각종 이벤트를 기획했다. 무월랑과 연화부인을 맺어줬다는 잉어 목판에 소망을 적는 소원트리, 2030 세대의 감성을 채워줄 길거리 콘서트, 마임 공연 등이 그것이다. 화려하지는 않지만 마음 한구석에 소중한 추억을 채워 주는 이벤트들이다. 강릉시는 또 야간에도 연인들이 월화거리를 찾을 수 있도록 공원과 산책로 곳곳에 특색 있는 조명을 설치했다.
반갑게도 강릉시의 바람들이 조금씩 현실이 되고 있다. 각종 이벤트와 특색 있는 카페와 공방, 전통시장이 어우러진 이곳에 20~30대 관광객이 몰리며 ‘강릉의 홍대’로 변신하고 있다는 말들이 나오고 있는 것. 온라인과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선 “KTX를 이용하면 서울에서 당일치기 여행이 가능해 잊지 못할 추억을 남길 수 있는 곳”이란 평가가 줄을 잇고 있다.
◇IoT 스마트 쉼터로 업그레이드
강릉시는 월화거리에 사물인터넷(IoT)을 활용한 미세먼지 쉼터 등 한 단계 업그레이드한 서비스를 제공할 계획이다.
시가 생각하는 스마트 쉼터는 미세먼지 농도를 측정, 수치를 전광판으로 표시해 주는 것은 물론, 일정 농도를 넘어서면 공기청정기가 작동하는 방식으로 운영한다. 시민과 관광객들이 보다 쾌적한 나들이를 보낼 수 있도록 배려하기 위함이다.
생활문화광장 입구에 자리한 ‘미디어 월’은 가상현실(VR) 기능을 활용, 강릉시내 주요 관광지를 안내하는 역할을 맡는다. 스마트폰 앱과 연동해 정동진, 안목항 커피거리 등 명소를 소개해 주기도 하고, 푸른 동해바다를 배경으로 나만의 사진을 만들 수도 있다. 지역 내 청년기업과 대학생 졸업작품 전시회, 각종 공연 홍보도 미디어 월을 통해 이뤄진다.
그뿐만 아니라 강릉시는 연말까지 실시간 이용객들의 반응을 반영하기 위해 ‘좋아요’ 기능을 설치, IoT 거리(street) 서비스를 개선할 계획이다. “5세대 이동통신 서비스와 인공지능을 기반으로 전통과 첨단기술이 공존하는 명소를 만들겠다”는 게 시의 구상이다.
강릉=박은성 기자 esp7@hankoo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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