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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장→삭발→단식투쟁… 사면초가 황교안, 또 공감 없는 역주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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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장→삭발→단식투쟁… 사면초가 황교안, 또 공감 없는 역주행

입력
2019.11.21 04:40
수정
2019.11.21 07:38
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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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패트ㆍ지소미아 종료 철회 등 관철 때까지 무기한 단식” 

 박찬주 영입 등 잇단 자충수에 “리더십 위기 정면돌파” 

20일 오후 청와대 앞에서 한 시민이 단식투쟁을 시작한 황교안 한국당 대표에게 목도리를 둘러주고 있다. 연합뉴스.
20일 오후 청와대 앞에서 한 시민이 단식투쟁을 시작한 황교안 한국당 대표에게 목도리를 둘러주고 있다. 연합뉴스.

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가 20일 무기한 단식 투쟁을 시작했다. 황 대표는 이날 청와대 분수대 앞에서 “죽기를 각오한 단식”을 선언했다. ‘대국민 호소문’을 통해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 설치법 철회와 연동형 비례대표제가 골자인 공직선거법 개정안 철회,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지소미아ㆍGSOMIA) 종료 철회 등 세 가지를 문재인 대통령에게 요구하면서다.

황 대표는 공수처를 “문재인 시대에 반대자들의 입에 재갈 물리는 법”으로,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자신들(범여권)의 밥그릇 늘리기 법”이라고 부르며 투쟁 명분을 제시했다. 지소미아 폐기를 두고는 “대한민국 안보에 있어 결코 포기할 수 없는 사안”이라고 했다. 황 대표는 청와대 앞 단식으로 문재인 대통령을 정면으로 겨냥하는 그림을 구상했으나, 청와대 인근에서 밤 10시 이후 집회ㆍ시위를 할 수 없다는 규정에 가로막혔다. 황 대표는 장소를 바꿔 달라는 청와대 요청을 수용해 단식 장소를 국회 본청 앞으로 옮겼다.

측근들의 만류를 무릅쓰고 황 대표가 단식 카드를 꺼낸 것은 우선 국회 패스트트랙에 올라 있는 공수처법과 선거법을 저지할 방안이 마땅치 않다는 현실론 때문이다. 당내 중진 의원은 “황 대표는 단식 선언에 앞서 최고위원ㆍ중진회의를 주재하면서 ‘어떤 결과가 나오든 최선을 다했다는 모습을 보여 주려 하는 것’이라고 했다”고 전했다.

 공수처법과 선거법 저지 난망, 벼랑끝 카드 

올해 3월 출범한 ‘황교안 체제’는 말 그대로 바람 잘 날이 없었다. ‘공관병 갑질 논란’의 당사자인 박찬주 전 육군대장 영입 시도 논란을 비롯한 황 대표의 자충수가 쌓인 데다, 내년 총선 승리의 필수 조건인 보수통합 논의는 제대로 진척되지 않았다. 황 대표가 당내 싱크탱크인 여의도연구원 원장에 중용한 김세연 의원이 17일 차기 총선 불출마를 선언하면서 황 대표의 퇴진을 요구한 것은 결정타였다. 황 대표가 정치 무대에 제대로 등판도 하기 전에 내려 오라는 뜻이었기 때문이다.

황 대표의 측근들은 “황 대표가 단식을 결심한 건 18일”이라고 전했다. 황 대표가 리더십 위기를 돌파할 최후의 수단으로 단식을 결심했다는 뜻이다. 한 중진 의원은 “하도 여러 군데서 흔드니까 황 대표가 추스를 방법이 딱히 없었던 것”이라 말했다. 그러나 박맹우 한국당 사무총장은 “(황 대표가 단식을 하는 이유에 대해) 절대 정치공학적 해석은 말아달라”고 거듭 선을 그었다.

정치 경험도, 보수 진영 내 세력도 충분히 없는 황 대표는 정국 고비 때마다 강수를 두는 것으로 지지층 결집을 노렸다. 조국 전 법무부 장관 임명에 반대하는 대규모 장외 투쟁을 주도했고, 지난 9월엔 조 전 장관 임명 철회를 요구하며 야당 대표로는 사상 처음으로 삭발을 감행했다. 20일엔 급기야 무기한 단식까지 시작했다. 정치를 본격적으로 시작한 지 8,9개월 만에 정치인으로서 동원할 수 있는 강경책은 죄다 쓴 것이다.

황 대표는 국회의원이 아닌 탓에 국회 원내를 중심으로 돌아가는 정치판에서 소외돼 온 측면이 있다. 한국당을 ‘적폐 세력’으로 보는 데다 대화ㆍ타협의 정치에 인색한 문재인 정부의 스타일 상 황 대표가 제1야당 대표로서 존재감을 드러낼 기회는 더욱 없었다. 이에 삭발부터 단식까지 이어지는 황 대표의 ‘벼랑 끝 정치’가 불가피한 선택이었다고 보는 시각도 없지 않다.

 청년들 대안정치 요구 하루 만에… 

문제는 황 대표의 단식이 한국당과 보수 진영에서 얼마나 호응을 이끌어 내느냐다. 그러나 20일 당 안팎의 분위기는 그다지 우호적이지 않았다. ‘황 대표가 구시대적 투쟁을 반복하는 모습은 한국당에 득 될 게 없다’는 우려가 많았다. 한국당 관계자는 “19일 황 대표를 만난 청년들은 한국당을 ‘노땅 정당’ ‘꼰대 정당’이라고 부르며 실력 있는 대안 정치를 보여 달라고 요구했다”며 “불과 하루 만에 황 대표가 단식을 시작한 것은 심각한 전략 부재와 오판의 단면”이라고 지적했다.

내년 총선의 득표 확장성을 떨어뜨리는 역주행이란 비판도 이어졌다. 한 재선 의원은 “중도로 외연을 확장해야 하는 상황에서 단식이 말이 되느냐”며 “대구에 몰려 있는, 황 대표 측근들의 지역구 선거에는 보탬이 될지 몰라도, 당 전체를 생각하면 이기적인 것”이라고 꼬집었다. 황 대표가 ‘인사, 정책, 메시지’ 등 총선 승리를 위해 반드시 해야 할 과제는 외면한 채 정치 이벤트에 치우쳐 있다는 지적도 나왔다. 쇄신파인 김용태 의원은 “대표의 단식을 폄하할 생각은 없지만, 단식을 한다면 당 혁신 구상과 방향도 함께 밝히는 게 맞다”고 말했다.

 

 홍준표 “문 대통령, 미동도 안 할 것” 

야권 지도자의 단식은 초유의 일은 아니다. 김영삼 전 대통령은 목숨을 건 단식으로 전두환 정권에 큰 상처를 입혔고, 최병렬 전 한나라당 대표는 노무현 전 대통령 측근비리 특검 도입을 관철시켰다. 그러나 황 대표의 상황은 과거와 다르다는 시각이 많다. 이준한 인천대 교수는 “황 대표가 철회를 요구한 지소미아, 선거법, 공수처법은 여론조사에서 찬성 여론이 더 높은 사안들”이라며 “황 대표의 단식 때문에 청와대와 더불어민주당이 쉽게 접을 수 있겠느냐”고 반문했다. 청와대와 여야가 ‘정치적’으로 접점을 찾아야지, 황 대표의 ‘투쟁’으로 극적으로 해결되기 어려운 문제라는 것이다. 이 교수는 “황 대표의 리더십 위기 모면용이란 의심을 잠재우기 힘들 것”이라고도 했다.

황 대표를 연일 겨냥 중인 홍준표 전 한국당 대표도 “문 대통령은 미동도 안 할 것”이라고 일축했다. 박상병 정치평론가는 “황 대표의 단식은 뜬금 없고, 비전 없고, 효과도 없을 것이며, 무엇보다 국민들의 바람도 없는 ‘4무(無) 단식’”라고 비판했다.

기온이 영하로 떨어진 단식 첫날 밤을 보낸 황 대표의 ‘출구’는 패스트트랙 법안이 본회의에 오르는 12월 초가 될 것으로 보인다. 문 대통령이 황 대표의 1대1 영수회담 제안에 화답할 지 여부도 변수다. 황 대표는 “내용 있는 협상 제의가 오면 언제든 응하겠다”고 말했다.

손현성 기자 hshs@hankookilbo.com

김정원 기자 gardenk@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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