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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아리] ‘초등학교 VR 금지’는 저질 규제다

입력
2019.11.20 18:00
수정
2019.11.20 18:29
3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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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 내 콘텐츠 정책 일관성 없이 엇박자

WHO 게임 질병 등재에도 상응조치 전무

교육용 VR 활용은 덮어 놓고 ‘일단 금지’

2017년 7월 11일 오전 서울 용산구 국립중앙박물관에서 '구글과 함께하는 반짝박물관'을 방문한 어린이들이 VR을 통해 문화유산, 예술 작품 등을 체험하고 있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2017년 7월 11일 오전 서울 용산구 국립중앙박물관에서 '구글과 함께하는 반짝박물관'을 방문한 어린이들이 VR을 통해 문화유산, 예술 작품 등을 체험하고 있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세월호 사고 발생 직후다. 단원고 학생들의 안타까운 희생이 부각되면서 단체 수학여행 안전문제가 여론의 도마에 올랐다. 그러자 교육부가 허겁지겁 내놓은 대책이 ‘수학여행 전면 중단’이었다. 인터넷과 SNS가 들끓었다. 덮어놓고 수학여행 전면 중단 카드부터 꺼내 든 교육부의 행정편의적 과잉에 대한 야유가 빗발쳤다. 그 중 통렬했던 댓글 하나가 기억에 선명하다. “이런~~된장! 차라리 바다를 없애라고 해라!!”

아픈 기억 속 블랙코미디를 새삼 떠올린 이유는 ‘바다를 없애는’ 고루한 행정편의적 규제가 지금도 되풀이되고 있어서다. 교육부는 최근 전국 초등학교에 ‘학생의 건강과 안전을 위한 가상현실(VR) 콘텐츠 활용 유의사항 안내’라는 제목의 공문을 보냈다. 골자는 VR 콘텐츠 체험을 위해 머리에 쓰는 시각기기인 헤드셋이 초등학생들의 시력 등 건강을 저해할 수 있다는 ‘우려’가 있으니, VR 기기 활용을 ‘자제’하라는 것이다.

물론 ‘전면 중단’이나 ‘금지’는 아니다. VR 콘텐츠를 활용할 때 헤드셋 대신 스마트패드나 스마트폰을 쓰라고 했고, 교사의 관리 및 지도하에 VR 콘텐츠를 이용토록 하라고 했다. 그러나 자제를 지시하고 조건을 두는 것 자체가 학교 현장에선 금지나 마찬가지다. 360도 현실감이 특징인 VR 콘텐츠를 평면화면으로 보라는 권고도 난센스다. 그러니 이번 조치는 규제를 욕 안 먹을 정도로 포장해 학교의 VR 콘텐츠 활용을 억제해서 골치 아픈 논란만 일단 피하자는 꼼수처럼 여겨진다.

학생을 심신의 유해요소로부터 보호하는 건 무엇보다 중요한 일이다. 따라서 VR 기기 이용이 건강을 저해할 수 있다는 일각의 지적이나, 그런 지적을 어떤 식으로든 수용한 교육부의 반응 자체는 옳다. 문제는 최선을 도출해 내는 성의와 균형, 그리고 디테일이다.

우려대로 예민한 사람들의 경우, VR 헤드셋 사용 시 어지럼증, 구토증을 느낀다는 사례는 결코 적지 않다. VR 콘텐츠 체험 시 시각과 귀의 전정기관에서 느끼는 위치 감각의 편차, 시각 작용에서 ‘수렴(vergence)’과 ‘원근조절(accomadation)’ 간의 불일치 등이 원인으로 꼽힌다. 국내외 헤드셋 생산업체에서는 13세 이하 어린이의 사용을 권장하지 않는다는 제품 안내를 하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최근 나오는 헤드셋에는 이미 그런 부작용을 최소화하는 기술이 적용되고 있다. VR 콘텐츠 이용이 1시간을 넘어 무리한 수준에 이르지 않는 한 심각한 부작용은 없으며, 건강에 미칠 지속적 영향도 우려할 수준이 아니라는 게 전문가들의 대체적 의견이기도 하다. 2015년 후지카도 다카시 일본 오사카대학원 의학계 연구과ㆍ감각기능형성 교수는 6세 이상 정상적 소아는 입체시의 발달이 거의 완성돼 VR 헤드셋 사용이 가능하다는 의견을 냈다.

반면 5G와 연동해 빠르게 진화하는 VR와 증강현실(AR) 같은 실감형 콘텐츠들은 다양한 분야에서 생활과 산업 전반에 혁명적 변화를 예고하고 있다. 특히 VR 기술이 불편과 부작용을 줄이는 방향으로 비약적으로 발전하면서 교육 분야에서는 높은 몰입도와 체감도, 시공을 초월하는 경험 확장 가능성을 들어 학습효과를 크게 높일 보조재가 될 것이라는 기대가 크다. 유은혜 교육부총리가 지난 6월 소셜 VR를 직접 체험하면서 “학교에서 VR를 이용한 체험수업을 하면 좋겠다”며 교육현장 접목 의지를 밝힌 배경이기도 하다.

‘간과할 수 없는 우려’와 ‘VR 콘텐츠의 교육적 활용’이라는 상반된 가치 사이의 균형은 ‘닥치고 금지’가 아니다. 일단 콘텐츠 인증 등을 통해 제한적인 VR의 교육적 활용을 허용하되, 신뢰할 만한 연구를 거쳐 건강한 VR 활용 가이드라인을 조속히 만들어 내는 것이다. 정부 한 쪽에서는 세계보건기구(WHO)의 질병 등재에도 불구하고 게임 부작용 대책을 미루면서, 다른 쪽에선 교육용 VR 활용까지 덮어놓고 ‘일단 금지’하는 건 정부의 모순이자, 중구난방 행정이며, 게으르고 나쁜 규제의 반복에 불과하다.

장인철 논설위원 icjang@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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