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6> 인력수출 시장 넓히는 베트남
고소득을 노리고 영국으로 밀입국해 일자리를 얻으려던 39명의 베트남인이 숨진 채 발견된 ‘냉동 컨테이너 집단 사망사건’의 충격이 가시지 있고 있는 가운데, 베트남 언론들이 합법적 지위를 얻어 해외서 일하고 있는 베트남 근로자 관련 뉴스를 비중 있게 보도해 묘한 분위기를 연출하고 있다. 냉동 컨테이너 사건 이후 유사 사건 방지 대책 마련에 분주한 베트남 당국이 그 대책의 일환으로 합법적 인력 수출 확대 카드를 만지작거리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상대국 고용에도 직접적 영향을 주는 만큼 대상국과 사전 논의, 협상이 필수적인 사안이다.
◇올해 인력수출, 목표 초과
현지 매체들의 베트남 노동부 발표 인용 보도에 따르면 지난 10월말 기준 올해 해외 진출한 베트남 근로자 수는 11만8,030명에 달한다. 공식 절차를 밟아서 나간, 합법 근로자 수다. 올해 파견 목표(12만명)의 98%를 넘어서는 수준이다. 남은 기간 2개월을 감안하면 초과 달성인 셈이다.
베트남에 진출한 외신들의 취재지원 업무를 맡고 있는 관계자는 “베트남 정부가 해외서 일하는 근로자 수를 늘리기 위해 대국민 홍보를 하고 있다”며 “국민들에 양질의 일자리를 공급하면서도 외화 수입 증대, 선진 기술 습득 등 다양한 목적이 있다”고 전했다.
송출 국가별로는 일본이 6만1,937명으로 가장 많고 대만이 4만5,390명으로 뒤를 이었다. 구체적인 자료 요청에는 베트남 정부가 응하지 않고 있어 정확한 수치는 확인되지 않고 있지만, 3위는 한국이 유력해 보인다.
고용허가제(EPS)를 통해 베트남 인력을 국내로 송출하고 있는 산업인력공단 베트남사무소 관계자는 “작년 말에 허가를 받은 뒤 올 초 한국으로 들어간 인원 등을 더하면 올해 전체 약 7,000명이 한국으로 가게 된다”고 말했다. 올해 한국 정부가 베트남에 EPS로 할당한 베트남 근로자 규모는 작년보다 200명가량 많은 약 3,400명이다.
베트남 정부는 2018년 기준 28개국에 약 14만명의 자국민이 파견됐다고 밝히고 있지만, 실제 규모는 그 수 십 배에 이를 것으로 보인다. 지난달 3, 4일 하노이에서 열린 관련 회의에서 응우옌 티 하 노동부 차관은 “근로자 수출 사업은 일자리 제공에 큰 역할을 했다”며 “(해외 근로자 수는) 국내 전체 일자리의 10%에 수준에 상당한다”고 밝힌 바 있다. 하 차관도 이 자리에서 외화벌이 목적 외에도 고향으로 돌아온 이들에 의한 지역사회 기여 등을 거론하며 인력 해외 수출 사업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최대 인력 수입국은 일본
외화 수입과 선진 기술 습득 등의 목적으로 베트남 정부가 벌이고 있는 자국 인력 수출 사업에 가장 적극적으로 화답하고 있는 곳은 일본이다.
베트남의 인력 수출 1위 시장은 2017년까지만 해도 대만(6만6,926명)이었다. 일본은 5만4,504명으로 2위였다. 하지만 지난해 대만이 6만369명으로 10%가량 감소한 데 반해, 일본은 6만8,737명으로 전년 대비 26% 급증, 역전됐다. 올해도 일본은 베트남 인력 수입을 늘리며 대만과의 격차를 더 벌렸다.
베트남 언론들은 일본 정부가 최근 체류 자격에 ‘특별 기술 근로자’ 항목을 추가로 도입했고, 해당 분야에 있던 베트남 청년들이 가세하면서 일본행에 붐이 일었다고 분석했다.
3년 전 일본으로 건너가 엔지니어로 일하는 부이 딘 휜(27)씨는 이메일 인터뷰에서 “일본어 공부에 8개월, 각종 절차를 밟는 데 약 5,000달러(약 580만원)의 돈이 들었지만 월평균 28만엔(약 300만원) 수익에, 생활비로 11만엔 정도 쓰고 있다. 만족한다”고 말했다.
한국산업인력공단 베트남사무소 관계자는 “고령화 문제로 일본은 인력 수입에 더 적극적인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며 “개발도상국 인력 수입을 통한 인력 교류, 무역 수지 개선 등 외교적 지렛대로도 활용하고 있다”고 말했다. 일본 무역회사 소지쯔 베트남의 한 주재원은 “일본에서 일하다 온 인력들은 대체적으로 일본에 우호적”이라며 “일본 근무 경험자들은 채용 시장에서도 인기가 높은 편”이라고 전했다.
일본으로 송출되는 베트남 인력은 한국과 달리 고급인력이 대부분이다. 간호ㆍ조무, 호텔 등 서비스 분야는 물론, 건축, 엔지니어링, 전기ㆍ전자, 통신, 항공, 농ㆍ수산, 조선, 자동차 등 14개 분야에 이른다.
◇고급인력 쟁탈전 시대 오나
베트남 인력 수출 시장에서 ‘큰 손’인 대만도 대대적인 인력 수입 절차 개선 작업에 나서고 있다. 민간에 맡겨놓고 있는 2, 3개월가량의 사전교육, 조달 방식을 정부 대 정부 사업으로 전환하는 일이다. 주베트남 대만 경제ㆍ문화사무소(대사관 격) 관계자는 “베트남 인력을 원하는 기업은 기업대로, 대만 취업 희망 베트남인들은 또 그들대로 각 소개업소에 지출하는 돈을 환산하면 베트남 인력 1명을 데려가는데 6,000~7,500달러(약 700만~880만원)의 비용이 든다”며 “위탁 업체들을 배제하는 방향으로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고 밝혔다.
실제, 위탁업체들은 베트남 근로자들이 대만에서 겪는 문제 해결에 소홀한 채 큰 돈만 받아 챙겨 원성이 높다. 지난 3일 타이베이 시내에서는 인도네시아, 베트남, 필리핀 출신 근로자들이 대만 정부에 외국인 근로자 직접 고용을 촉구하며 시위를 벌였다. 대만 경제ㆍ문화사무소 관계자는 “한국의 시스템을 들여다 보고 있다”고 전했다.
한국의 인력 수입 프로그램으로 볼 수 있는 고용허가제(EPS)는 국가 대 국가 사업으로, 베트남에서도 인기가 높다. 이 제도를 이용해 한국으로 갈 경우 한국어시험 응시료, 항공료, 건강검진, 사전 교육(2주) 등에 654달러가 든다. 산업인력공단 베트남 사무소 관계자는 “베트남 사람들에게 인기가 있지만, 한국 내 불법 체류자 문제로 정원을 늘리는 데 한계가 있다”고 전했다.
우수한 베트남 인력 유치에 각국이 노력하고 있는 가운데 지난 7월 타결돼 발효를 앞두고 있는 유럽연합ㆍ베트남 자유무역협정(EVFTA)도 베트남 인력 유치 경쟁에 불을 당길 것이란 전망이 우세하다.
호찌민=정민승 특파원 msj@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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