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고운 제자들에게…” 손편지 쓰는 절절한 진심, 꼰대와 멘토의 경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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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고운 제자들에게…” 손편지 쓰는 절절한 진심, 꼰대와 멘토의 경계

입력
2019.11.26 0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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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작권 한국일보]그래픽=신동준 기자/2019-11-25(한국일보)

 [밀레니얼 청문회] <3>인생 멘토 수능 강사들 

수능을 거쳐온 밀레니얼에게 따끔한 쓴소리와 따뜻한 위로를 전하는 수능 강사는 ‘강사’ 그 이상의 영향력이 있습니다. 대표적인 이가 지식 전달자를 넘어 ‘인생 멘토’로 주목 받는 이지영(38) 선생님입니다.

공교육과 사교육을 넘나들며 수능 사회탐구 영역을 가르쳐온 그는 올해 기준으로 누적 수강생 240만 명을 돌파한 이른바 ‘스타강사’입니다. 지금의 그를 있게 한 비결은 꼼꼼한 판서와 뛰어난 강의력 뿐만이 아닙니다. 가난한 환경에서 공부했던 자신의 어린 시절 경험을 바탕으로 학생들에게 건네는 ‘인생 조언’ 덕분입니다. 생커피를 씹으며 졸음을 쫓았던 경험담이나 스스로 ‘나는 세상에서 제일 가치 있는 사람’이라 되뇌며 수험 생활의 외로움을 달랬다는 일화는 시험과 취직을 준비하는 밀레니얼의 공감을 끌어내고 있습니다.

밀레니얼이 스타 강사들의 쓴소리에 열광하는 현상은 비단 이 선생님에게만 국한되지 않습니다. 신승범, 이기상, 최태성 등 많은 강사들이 아이돌 못지않은 인기를 누리고 있고 최근엔 사회관계망서비스(SNS) 팬페이지와 기념품까지 등장할 정도니까요. 취직, 결혼, 출산 등 인생 여정의 모든 게 불확실한 지금, 꼰대라면 질색하는 밀레니얼이 왜 ‘죽도록 노력하라’는 인강(인터넷 강의) 강사들의 조언만큼은 귀담아들을까요? 밀레니얼은 과연 어떤 사람을 꼰대가 아닌 ‘멘토’로 생각할까요?

이지영 선생님의 강의 모습. 유튜브 캡처

 ◇따뜻한 위로부터 따끔한 팩트폭행까지 

마이마이= 난 고등학생 때 이지영 샘 사회탐구 수업을 수강했거든. 그래서 대학에 와서도 불안하거나 걱정이 많아지면 일부러 유튜브에서 ‘이지영 샘 쓴소리’를 검색해보기도 했어. 고교를 졸업하고 수능을 본 지 몇 년이 지났음에도 신기하게 위안이 되더라고.

여의도 불주먹(이하 불주먹)= 여러 고생을 겪은 사람이다 보니 학생들에게 경험에서 우러나온 조언을 해줄 수 있는 것 같아. 특히 지금이야 여자 강사들도 많아졌지만 남자 강사들 위주였던 이전 세대에서 어떻게 고군분투하며 살아남았는지 설명하는 일화는 감동이었어.

날으는 펭수(이하 날펭)= 이지영 샘은 따뜻한 위로를 건네지만 메가스터디 수학 강사 신승범 샘은 매 수업마다 따끔한 팩트 폭행을 했어. “나중에 자녀들이 ‘엄마 아빠는 어디 대학 나왔어?’라고 물어봤을 때 없어질 대학 가고 싶냐”라는 말도 하고. 나는 아픈 말로 자극을 받으며 공부했던 것 같아.

마이마이= 정말 그런 말을 대놓고 한다고? 너무한걸.

피곤한 칸트(이하 피칸)= 신승범 샘은 매 수업마다 “고쟁이(신승범샘 강의 교재) 안 풀면 지옥 간다”라고 하잖아. 공부 안 하면 정말 지옥 가는 줄 알았어.

 ◇못미더운 공교육과 학교 선생님… 의지할 곳은 인강 강사뿐 

마이마이= 왜 우리는 인강 강사의 말에 귀 기울이게 됐을까? 혹시 학교 선생님을 멘토로 삼은 사람은 없었어?

도논= 고등학생 때 한 선생님이 첫 수업에서 “자기는 이지영 샘 팬이다”라고 말한 적이 있어. 그리고서 이지영 샘 필기를 그대로 가져와서 수업하는 거야. “너희들도 이지영 샘 시키는 대로 하면 좋을 것 같다”고도 했어. 좀 충격이었거든. 그 뒤로 학교 선생님들을 믿을 수가 없었어.

피칸= 게다가 고3은 자기 확신이 많이 부족한 시기잖아? “내가 정말 대학에 갈 수 있을까” 매일 고민해. 그 상황에서 누군가 “이것만 하면 너 대학 갈 수 있어!”라고 말해주면 의지하게 될 수밖에 없지.

도논= 공교육 수업은 학생을 답답하게 해. 학생의 입시 고민을 속 시원하게 해결해주지 못하거든. 물론 좋은 대학에 보내고 입시에서 좋은 성과를 거두는 것만이 공교육의 유일한 목표는 아니지. 하지만 불확실성의 정점에 서있는 입장에서 누군가 확신을 심어주면 속이 뻥 뚫렸던 것 같아.

날펭= 분명 학교 선생님들이 학생들의 불안함을 잘 어루만져 주지 못 했던 적이 많은 것 같아. 그걸 사교육이 채워줬던 거고. 그래서 그때 우리가 인강 강사를 멘토로 삼게 된 것 같아.

불주먹= EBS에서 국어를 가르치는 윤혜정 샘은 학생들과 주기적으로 소통하려고 노력하거든. “얘들아, 수능 며칠 남았어. 조금만 더 힘내자!”이런 식으로 말이야. 분명 인강 강사이기 때문에 넘을 수 없는 벽이 있는데 얼굴도 모르는 학생을 위해서 대단히 노력하는 것 같아. 학교에서 놓치는 부분을 사교육이 신경 써주면서 더 의지하게 되는 듯해.

피칸= 맞아. 이지영 샘도 “나의 고운 제자들아”라는 식으로 첫 편지를 시작해. 그렇게 절절할 수가 없다니까. 고3 땐 그게 큰 도움이 되는 듯해

도논= 물론 공교육의 목표가 대입에만 한정된 건 아니고 학교 선생님의 업무 범위도 굉장히 넓어. 그럼에도 믿고 따를만한 선생님이 학교에도 있다면 인강 강사나 사교육과 그렇게 비교하진 않을 것 같아. 평소엔 바쁘다고 학생들에게 관심 없는 선생님이 대다수인데 갑자기 신경 써주는 척을 하면 학생 입장에선 우습지. 어떻게 믿을 수 있겠어?

 ◇훈계보단 생존 매뉴얼 쥐여주는 이가 멘토 

도논= 밀레니얼에게 멘토는 ‘꼰대’와 연결돼 단어 자체가 오염된 것 같아. 인강 강사들처럼 분명 우리가 따르고 좋아하는 어른들이 있거든. 그렇다면 밀레니얼은 어떤 사람을 멘토로 삼을까?

불주먹= 밥 먹고 화장실 가는 시간까지도 정해진 고등학교 생활에 익숙해진 십대들이 20대가 되고 30대가 된다고 한 들 스스로 모든 일을 척척 잘해낼 수 있을까? 난 아니라고 봐. 밀레니얼은 ‘어떻게 살아야 할까’를 고민하는 순간마다 고등학생 때부터 쌓아온 습관을 내보이는 듯 해. 딱 부러지게 알려주는 멘토를 찾아가는 버릇 말이야.

누헨지니= 그럼에도 밀레니얼은 미디어에서 상당히 자립적인 세대로 묘사되는 경향이 있는 듯 하잖아. 꼰대들의 간섭을 싫어하고 권위적인 문화를 꺼리니까. 하지만 실상은 수동적인 인생관이 내면화된 세대라고 생각해. 최근엔 취업을 준비하는 기숙 학원도 있다고 하더라고. 대입을 준비하는 기숙 학원과 비슷한 방식으로 말이야. 결국 방법만 다를 뿐이지 어딘가에 의존하는 건 고등학생 때와 마찬가지고 주체적으로 자신의 일을 꾸려가는 밀레니얼은 많지 않은 듯해.

도논= 그렇게 수동적으로 살아가는 밀레니얼은 각박한 경쟁 사회에서 실질적으로 문제를 해결해줄 수 있는 사람, 자신의 불확실함을 공감해줄 수 있는 사람을 멘토로 생각하는 것 아닐까?

누헨지니= 맞아. ‘꼰대’라고 불리는 사람 중에 우리에게 열매를 쥐여주는 사람은 얼마 없잖아. 얼마 전에 한 인터넷 커뮤니티에선 “취직 부심을 부리려면(취직 자랑을 하려면) 밥이라도 사주면서 하라”라는 말도 돌더라고. 인강 강사는 한 치 앞을 모르는 입시 경쟁에서 밀레니얼에게 대학 합격이란 확실한 성과를 쥐여준 사람들이야. 그러니 밀레니얼들이 멘토로 여기는 거라고 생각해.

도논= 물론 “인생은 원래 불확실한 거고 그건 우리 세대도 마찬가지였어! 너희만 힘든 거 아니거든?”이라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을 거야.

누헨지니= 지금은 예전과 다르다고 생각해. 훨씬 낙폭이 커진 거지. 국제통화기금(IMF) 구제금융 직전엔 학과 사무실만 찾아가도 회사 별로 원서가 쌓여있었다고 해. 취직이 훨씬 수월한 세대였지. 하지만 지금은 잠깐의 실수로 우리가 감내해야 할 부담이 너무 커. 부모 세대처럼 살려면 훨씬 더 많은 노력과 수고를 감수해야 해. 이걸 이해하고 공감하는 사람에게 밀레니얼들은 멘토로서 호감을 갖는 것 같아.

날펭= 꼰대들은 우리 세대를 이해하지 못하는 게 아니라 바뀐 시대를 이해하지 못하는 것 같아.

 ◇인강 멘토의 이면… 학생 차별, 왜곡된 능력주의로 잘못된 가치관 심어주기도 

마이마이= 인강 강사들의 도 넘은 발언이 구설수에 오른 적이 많잖아. 공무원 영어를 가르치는 한 강사는 공무원 준비생들에게 “여러분이 열심히 살았더라면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지 않겠죠?”라는 발언을 하기도 했어. 정말 인강 강사가 멘토로서 적합할까? 문제점은 없을까?

도논= 학생들의 불안 심리를 파고들어 그릇된 가치관을 심는 경우를 많이 봤어.

피칸 = 맞아. JTBC 드라마 ‘스카이캐슬’에서 입시 코디네이터 역을 맡은 김서형씨가 “공부로 성공하면 네 엄마를 짓밟을 수 있어”란 말을 하잖아. 근데 이지영 샘도 비슷한 말을 해. “최고의 복수는 너를 싫어하는 사람들에게 네 웃음소리를 들려주는 것”이라 말해. 그때 느낌이 섬뜩해. 실제로 대학생 중에서도 그런 잘못된 가치관을 가진 친구들을 본 적이 있어. 고등학생 때 인강 강사에게 배운 잘못된 성공주의를 내면화한 결과라고 생각해.

도논= 뿐만 아니라 얼핏 따뜻하고 이타적인 듯 하지만 묘하게 허황된 인식을 심어주는 경우도 있어. “너희가 성공하면 어려운 사람들을 돕고 사회를 뒤집을 큰 사람이 될 수 있다”라고 말하는 강사들이 있어. 물론 단순하게 생각하면 어떤 의미의 조언인지는 알겠어. 그러나 장기적으로 봤을 때 구조적 문제의식 대신 당장 ‘나의 엄청난 성공’이 사회문제 해결로 단번에 이어질 수 있다는 시혜적 발상으로 우리 사회를 정말 바꿀 수 있을지 의문이 생겨.

피칸= 공부를 못하는 학생들을 차별하는 발언도 많이 해. 내가 수강한 한 강사는 “하위권 애들은 이거 못 풀어”라던가 “이 강의를 듣는 너희들은 달라. 하위권 애들이면 여기까지 진도를 못 나갔지”와 같은 발언은 종종 해.

마이마이= 진지한 고생담이나 어려웠던 과거 기억을 일회성으로 소모한다는 생각도 들어.

피칸= 맹장이 터지고도 며칠 동안 병원에 가지도 않고 수업했다는 말도 하잖아. 어릴 때 자살시도를 했다는 이야기도 하고. 공부를 열심히 하라는 맥락에서 한 말이지만 학생들 앞에서 무용담처럼 늘어놓을 이야긴 아닌 것 같아. 진지한 자살 고민을 일회성 콘텐츠로 소비하는 느낌이야.

도논= 그런 고생담이나 동기 부여가 소비되는 방식도 뻔해. ‘이렇게 고생하면서 열심히 공부하면 반드시 성공한다’는 생각을 전제로 까는 거잖아. 굳이 그럴 필요는 없는데 말이지.

날펭= 본인의 강의력으로 얻은 권위를 가지고 정치적인 이야기도 대놓고 하는 경우가 많아.

도논= 강성태씨가 생각나네. 왜곡된 능력주의에 기반한 발언이 많았어. 예를 들면, 성매매 여성들의 정착 지원을 돕는 정부 정책이 있었거든. 그 정책에 대해 열심히 살지 않고 능력이 없어서 성매매를 하는 여성들을 왜 국민 세금과 정부 재원을 써서 도와주느냐는 말을 하더라고. 세상엔 열심히 노력해도 정부 복지로부터 소외된 사각지대에 있는 사람이 많다면서 말이야.

마이마이= 성매매 여성들이 그 상황에 놓일 수밖에 없었던 사회 구조적인 원인을 보지 않고 너무 일반화했다는 생각은 들었어.

 ◇입시ㆍ학벌의 무게 줄어들어야 멘토도 바뀔 것 

마이마이= 과연 앞으로도 인강 강사를 멘토로 삼으면서 위안을 삼는 풍조가 계속될까?

도논= 수험생이 극도의 불안정성을 느낄 수 밖에 없는 우리 사회 구조가 근본적으로 개선되지 않는다면 인강 강사들이 설파하는 삶의 지침은 의심의 여지 없이 받아들여질 것 같아. 심지어 그들이 내세우는 논리는 학교를 졸업한 밀레니얼에게도 충분히 적용되니까. 하루하루를 불안하게 살아가는 학생들에게 ‘인강 강사는 멘토가 될 수 없다!’, ‘인강 강사들의 말을 의심해야 한다!’라고까지 주문하는 건 너무 비현실적이라 미안해. ‘그럼 어쩌라고’ 라는 반응이 나올 것 같아.

미트볼= 주위에 믿고 의지할 만한 좋은 어른이 있다면 정말 좋겠지. 그런데 밀레니얼은 학창시절엔 입시를 쫓도록 교육받고 그 뒤에는 취업하기 위해 아등바등 하다 보니 멘토를 찾을 여유가 없는 것 같아. 지금 학생들도 그런 학창시절을 겪고 있으니 인강 강사를 멘토로 생각하는 풍토는 앞으로도 계속되지 않을까?

누헨지니= 입시가 계급으로 작용하고, 학벌을 좇는 문화가 사람들 머릿속에서 사라지지 않는 이상 계속될 것 같아. 입시의 무게가 더, 아니 훨씬 가벼워지지 않는 이상 강사들의 말은 계속 무겁게 자리 잡을 테니까.

정리= 김민준 인턴기자

참여= 윤소정, 이미령, 이정원, 이주현, 차승윤, 한채영 인턴기자

※밀레니얼들이 열광하거나, 주목하는 ‘그들’에겐 어떤 특별한 것이 있을까요? 밀레니얼 세대인 한국일보 인턴기자들이 밀레니얼을 대표하는 것처럼 보이는, 혹은 밀레니얼 사이에서 화제가 되고 있는 인물들을 선정하고 이들을 둘러싼 문화를 어떻게 받아들이고 소비하는지 방담 형식으로 소개(매주 화요일 연재)합니다. 밀레니얼들은 어린 시절부터 끊임없이 숙제로 ‘자소서’를 써왔지만, 사실 ‘세대소개서’를 쓸 때는 난감합니다. 세대를 한 가지로 정의할 수 있다는 것은 환상이니까요. 그저 좋아하는 ‘인물’, 화제가 되는 ‘인물’을 통해 젊은 개개인이 ‘사회구성원’으로서 보고 듣고 느끼는 점을 있는 그대로 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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