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 한국일보문학상] 가학적 세계의 표면 아래 깔린 인간의 고독과 외로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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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 한국일보문학상] 가학적 세계의 표면 아래 깔린 인간의 고독과 외로움

입력
2019.11.21 0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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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반백 년 넘게 한국문학계 기둥 역할을 해온 한국일보문학상이 52번째 주인공 찾기에 나섭니다. 예심을 거쳐 본심에 오른 작품은 10편. 심사위원들이 매주 화요일과 목요일 본심에 오른 작품을 2편씩 소개합니다(작가 이름 가나다순). 수상작은 본심을 거쳐 이달 하순 발표합니다.   

 <9> 정소현 ‘품위 있는 삶’ 

정소현 '품위 있는 삶'

정소현은 ‘양장 제본서 전기’라는 근사한 제목의 단편소설로 시작을 알렸다. 1983년 신문을 모조리 뒤지며 신생아 유기 사건을 찾는 주인공의 이야기였다. ‘실수하는 인간’이라는 첫 소설집에서는 처음에는 실수였지만 결국 주도면밀한 살인마가 되어 가는 주인공을 다룬다. 몇 편만 훑어봐도 정소현이 주목하는 세계가 심상치 않은 듯 보인다. 살인과 폭력, 유기와 학대가 빈번하게 소재로 사용된다. 하지만 조금만 더 읽어 보면 가학적으로 보이는 세계의 표면 아래 깔려 있는 어쩔 수 없는 인간의 고독과 외로움을 쉽게 목격할 수 있을 것이다. 남은 사람이 끝내 찾아낸 온기와 그 온기가 닿는 자리도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정소현의 소설은 정교하게 세공되어 빈 틈이 없는 게 특징이다. 문장은 낭비되지 않고 엄격하게 선택되어 흐트러짐이 없다. 치밀하게 구성된 사건과 독자를 멈칫하게 하는 반전은 인물 내면의 집중력을 도드라지게 하고, 질문의 폭을 넓히며 소설을 새로운 국면으로 이끈다. 구성에 있어 완벽한 소설을 찾는다면 정소현의 소설을 읽으면 된다.

올여름의 끝, 정소현은 ‘품위 있는 삶’이란 작품으로 7년 만에 돌아왔다. 시의성 밝은 소설들이 크고 도드라지게 목소리를 내는 한 편에서 천천히, 그러나 어느 때보다 믿음직스럽게 제 목소리를 담아낸 정교한 소설들을 묶었다.

이 책에는 다양한 죽음의 양상이 드러나지만 작가가 보다 주목하는 것은 죽음을 바라보고 인식하는 산 자의 태도이다. 안락사, 변사, 살해, 매물사고, 악의적인 소문으로 인한 자살시도 같은 죽음은 돌연하고 타율적이다. 그 때문에 산 자들은 그들의 죽음과 연루되었다는 죄의식과 죄책감을 지니고 살아간다. 그들은 소문을 퍼뜨렸거나 대형 사고의 원인을 제공했거나 타인을 대신해 살아남았다. 또는 죽은 이가 남긴 것으로 삶을 유지한다.

그러한 삶에서 품위란 어떻게 가능한가. 삶의 품위란 무엇인가. 젊은 시절 유능한 의사였던 주인공은 품위 있는 삶을 위해 노년을 완벽하게 뒷바라지해 주는 보험에 가입한다. 계약 유지 의사를 밝히기 위해 보험사에 제출하는 진술서 형식으로 된 이 소설을 읽다 보면 독자는 금세 주인공이 그다지 믿을만한 상태가 아님을 알아차리게 된다. 주인공은 기억을 잃었고, 자주 가물거리고, 깜박깜박하고, 혼돈을 겪는다. 주인공이 손자나 아들로 여겨 온 인물이 실은 보험사에서 파견한 간병인이라는 것이 손쉽게 밝혀지는 순간, 그녀의 진술이 치매에 걸린 노인의 망상이나 허위에 지나지 않음을 알게 된 순간, 망상의 근거를 헤아리며 비로소 소설의 질문이 시작된다.

기억의 일부는 손상되었을지언정 삶의 온기와 행복은 이제서야 찾은 듯한데, 그러한 순간의 행복은 거부당해야 마땅한가. 불행했던 과거의 자신에 의한 선택으로 맞는 죽음은 정당한가. 이 역설적인 제목의 소설이 던져 주는 질문 앞에서 독자는 여러 번 주저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편혜영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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