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플러의 저서 ‘미래 쇼크’에 나오는 얘기다. 치열한 전투 와중에 와중에 일부 병사들이 잠에 곯아떨어지거나 초보적인 의사결정도 못 하는 무감동 상태가 됐다. 살려는 욕구도 없는 듯 보였다. 극도로 유동적인 환경에 처한 나머지 극단적인 부적응 상태가 된 것인데, 상황 변화에 적응하지 못하면 쇼크 상태에 빠지게 된다고 토플러는 경고한다.
13일 조선일보는 미 합참의장이 주한미군의 필요성에 의문을 제기한 것에 대응해 우리가 핵무장을 결단할 수 있고, 그러면 주한미군은 필요 없다는 요지의 사설을 게재했다. 사실상 북한이 간 길을 갈 수 있다는 것이다. 살다 보니 이런 날도 오는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주한미군에게 나가라는 것은 거의 동맹을 깨겠다는 것이다. 아무리 화가 나도 조선일보가 그럴 줄은 몰랐다.
우리 사회가 안보 차원의 미래 쇼크에 빠진 느낌이다. 안보 이슈가 너무 많고, 너무 빠르게 진행되니 어찌 반응해야 할지 허둥대거나 돌출적인 생각에 몰두한다. 토플러는 과잉자극하의 병사는 사소한 자극에도 과민 상태가 돼 조금만 겁을 줘도 쓰러진다고 했다. 또 적의 포성과 위험하지 않은 다른 소리를 구별하지 못하며 갑자기 불같이 화를 내거나 폭력을 휘두른다고도 했다.
요새 미국은 우리가 알던 미국이 아니다. 방위비 분담금 5배 증액 요구는 어처구니없다. 지소미아 관련해서는 원인 제공자인 일본에 침묵한다. 우리더러 어쩌라는 건가. 그러나 이 모든 것에 대해 너무 과민 반응하지 마시라. 동맹은 부부관계다. 일방적일 수도, 쉽게 깨질 수도 없다. 지소미아나 방위비 분담금 문제로 일부에서 한미 동맹에 대해 우려하지만 이걸로 흔들릴 관계가 아니다.
지소미아와 방위비 분담금 문제가 연일 보도되는 와중에 북핵 협상에 작은 돌파구가 형성됐다. 하노이에서 미국에 뺨 맞은 북한이 스톡홀름에서 미국에 어깃장을 놓은 것이 지난 달 초의 일이다. 자신들은 핵, 미사일 활동을 중지하고, 핵 실험장을 폐기했으며, 미군 유해도 송환했는데 돌아온 게 없다는 것이 북한 입장이었다. 한미연합훈련과 첨단무기 도입을 중지하라고 했다. 우리는 미군과의 연합훈련을 조정했다.
이를 두고 일부 언론은 정부가 북한 심기를 거스를까봐 연합훈련을 조정했고, 나중엔 전력증강 프로그램도 감축하는 것 아닌지 의심했다. 이쯤 되면 신경과민이 지나친 상태다. 연합훈련 조정은 북한을 협상 테이블에 앉히기 위한 인센티브다. 우리 국방이 든든하니 연합훈련은 잠시 접어 둬도 된다는 배짱도 생긴 것이다. 핵무기 완성을 선언했지만 갈 길이 먼 북한이다. 북한에 협상 복귀의 명분을 줬다. 전력증강 프로그램 우려 역시 접어둬도 된다. 현 정부는 결코 ‘강한 국방’을 포기하지 않을 것이며, 포기할 수도 없다. 이미 업체들과 계약서에 사인을 했는데, 이제 와서 파기하면 위약금을 물어야 한다. 전력증강 프로그램은 원안대로 갈 수밖에 없다.
안보와 관련한 우려 자체를 나무랄 의도는 없다. 그러나 신경과민 수준의 반응은 문제다. 과민 반응의 근원엔 북한에 의한 ‘적화’ 공포가 있다. 그러나 지금은 1950년이 아니다. 우리의 국력과 국방력이 북한을 압도한다. 이젠 적화 공포를 털어버려도 된다.
며칠 전 노동신문은 김정은 위원장의 전투비행술경기대회 참관을 보도했다. 골동품 같은 미그기와 수호이기 사진이 실렸다. 그것들은 군사 마니아들의 조롱의 대상이 됐다. 그 수준의 공군력으로 할 수 있는 것은 없다.
북한이 핵을 가지고 있지만 최후의 순간에 쓸 수 있을 뿐이다. 우리는 최후의 순간까지 가지 못하게 위기를 관리할 수 있다. 핵우산도 있다. 그러니 신경과민 상태를 좀 벗어나자. 그래야 북한과의 협상을 인내할 수 있고, 핵무장 하겠으니 주한미군 나가라는 주장도 자제할 수 있다.
부형욱 한국국방연구원 책임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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