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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 디즈니 플러스

입력
2019.11.19 18:00
수정
2019.11.19 22:05
30면
0 0
디즈니 플러스 홈페이지 초기화면.
디즈니 플러스 홈페이지 초기화면.

“월트 디즈니(1901~1966)는 4~5회가량 회사가 망한 후 ‘디즈니 왕국’을 세웠다.” 20일 일본 헌정사상 최장기 총리에 등극하는 아베 신조(安倍晉三) 총리가 문예춘추 12월호 인터뷰에서 한 말이다. 2006년 총리 취임 후 1년 만에 사퇴했던 쓰라린 경험이 장수 총리가 되는데 힘이 됐다는 걸 디즈니의 생애에 빗댄 것이다. 아베 총리는 실패를 양분 삼아 엔터테인먼트 제국을 일군 디즈니에게서 인생 교훈을 얻은 것처럼 말했지만, 정작 디즈니가 살아 있다면 그다지 달가워하지 않았을 듯하다.

□ 2차 대전 당시 디즈니는 미국 정부를 적극 지원했다. 회사 내부에 ‘디즈니 훈련 영화 제작단’을 만들어 군사훈련용 애니메이션을 만들었다. 미국인의 전쟁 참여를 독려하고 독일과 일본 등 ‘악의 집단’을 고발하는 선전영화 제작에도 참여했다. 믿기지 않겠지만 인기 캐릭터 도널드 덕이 전쟁채권 판매를 홍보하는 만화도 만들었다. 디즈니하면 동화와 환상, 순수 등을 떠올리지만, 현실 속 디즈니는 힘에 의한 평화를 믿었던 냉엄한 인물이었다. 사업 확장 과정에서 종종 협잡하기도 했다.

□ 디즈니는 현실에 안주하는 인물도 아니었다. 그의 좌우명은 ‘꿈꾸고 믿고 도전하고 실행하라’였다. 다섯 번 파산을 겪을 정도로 무모한 도전을 마다하지 않았는데, 그를 매번 일으켜 세운 건 꿈이었다. 디즈니는 1923년 자신의 형 로이와 함께 디즈니 브러더스 스튜디오(월트 디즈니 컴퍼니 전신)를 설립한 후 애니메이션을 대중문화 중심으로 진입시켰고, 디즈니랜드를 테마파크의 대명사로 만들었다. 꿈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직원들에게 월트 디즈니 컴퍼니는 꿈의 직장이다. 디즈니랜드 직원 이직률은 30% 아래로 테마파크 업계 평균에 한참 못 미친다.

□ 월트 디즈니 컴퍼니의 동영상 스트리밍 서비스(OTT)인 ‘디즈니 플러스’가 지난 12일 미국에서 첫선을 보였다. 디즈니 애니메이션과 픽사 애니메이션, 마블 영화 등을 월 6.99달러에 마음껏 즐길 수 있다. 첫날 가입자만 1,000만명에 달하며 잭팟을 예고했다. OTT의 선두주자로 세계 동영상 시장을 흔들어온 넷플릭스가 맞수를 제대로 만났다. 신규 사업에 공격적으로 뛰어든 월트 디즈니 컴퍼니의 행보를 두고, 설립자 디즈니가 심은 ‘꿈 DNA’가 제대로 발휘됐다는 말도 나온다. 디즈니의 꿈이 업계 라이벌에게는 악몽인 셈이다.

라제기 문화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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