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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 봉쇄에 홍콩 이공대 탈출 러시…무너지는 ‘최후 보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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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 봉쇄에 홍콩 이공대 탈출 러시…무너지는 ‘최후 보루’

입력
2019.11.19 17:54
수정
2019.11.19 20:44
1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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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위대가 점거한 홍콩 이공대 캠퍼스 밖에서 교수와 학교 관계자들이 19일 학생들이 속히 빠져 나오기를 기다리고 있다. 로이터 연합뉴스
시위대가 점거한 홍콩 이공대 캠퍼스 밖에서 교수와 학교 관계자들이 19일 학생들이 속히 빠져 나오기를 기다리고 있다. 로이터 연합뉴스

‘최후 보루’ 홍콩이공대(이하 이공대)를 점거한 홍콩 반정부 시위대가 경찰의 봉쇄 전략에 속수무책으로 진압될 참이다. 지난 17일부터 경찰과 사흘째 대치하며 극렬하게 저항했지만 추위와 배고픔에 지친 600여명이 밧줄을 타고 속속 캠퍼스를 떠나는 등 탈출 러시가 이어지면서 급속히 힘이 빠지고 있다. 크리스 탕(鄧炳强) 신임 홍콩 경찰청장은 취임 일성으로 “시민들이 좀더 일찍 폭력을 비판했더라면 현 상황까지 오지 않았을 것”이라며 강경대응의 수위를 높였고, 중국은 전날 홍콩 법원의 ‘복면금지법’ 위헌 결정에 제동을 걸며 시위대를 몰아세웠다. 이에 맞서 수천 명의 시민들은 경찰에 포위된 이공대 주변을 중심으로 거리 시위를 벌이면서 캠퍼스에 갇힌 학생들의 무사귀환을 요구했다.

로이터통신 등에 따르면 캐리 람(林鄭月娥) 행정장관은 19일 기자회견에서 “간밤에 18세 미만 학생 200명을 포함해 600명이 자진해서 이공대 캠퍼스를 떠났다”며 “대학 안에는 100명가량의 시위대가 남아있다”고 설명했다. 또 “이공대 시위현장에서 그동안 400여명이 체포됐다”면서 “시위대가 평화적으로 나오면 폭력 상황은 발생하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앞서 시위대를 ‘폭도’로 칭하며 비판했던 것과는 사뭇 다른 태도다. 홍콩 시위가 지난 6월 본격화한 이후 가장 격렬했던 이공대 점거 사태의 끝이 보인다는 자신감의 표현이다. 교육 당국은 지난 14일부터 중단한 초ㆍ중ㆍ고 수업을 20일 재개한다고 밝혔다. CNN은 이공대 대치 상황에 대해 이날 “폭력과 분노는 남아있지만, 거의 종료(almost over)됐다”고 전했다.

경찰과 이공대 안에서 대치하다 결국 캠퍼스를 빠져나온 어린 시위대는 배고픔과 부상을 호소했다. 또 경찰의 물량 공세에 밀릴 수밖에 없었다고 토로했다. 한 학생은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에 “교문 앞에서 경찰과 정면으로 맞붙어 충돌할 때마다 경찰이 교내로 진입해 시위대가 50명, 100명씩 붙잡혀갔다”고 말했다. 실탄을 장착한 홍콩 경찰 2,000여명이 배치돼 캠퍼스를 둘러싸고 있다 보니 뾰족한 수가 없었다는 것이다. 시위 현장을 빠져 나온 18세 미만 미성년자들은 일단 연행되지 않고 집으로 돌아갔지만 언제든 다시 불러 조사할 수 있다고 홍콩 경찰은 밝혔다. 이른 아침부터 교내 곳곳에서 불길이 치솟았던 전날과 달리 19일은 오후까지 양측의 큰 충돌이 없었다.

하지만 시위 양상을 뒤흔들 변수는 남아있다. SCMP는 홍콩 경찰을 인용, “중문대, 이공대, 시립대 등 3개 대학에서 화학물질 도난신고가 접수돼 조사하고 있다”며 “이 중에는 아비산염, 시안화 아연, 소듐 메탈 등 인체에 치명적이고 폭발성이 강한 물질도 포함돼 대학 캠퍼스가 생각보다 훨씬 위험한 일촉즉발의 상황에 놓여있다”고 전했다. 막다른 궁지에 몰린 이공대 시위대가 탈취한 화학물질을 이용해 행동에 나설 경우 어떤 사태가 발생할지 예단할 수 없다는 것이다. 온라인에서는 시위대가 ‘염소가스 폭탄 제조에 성공했다’는 확인되지 않은 루머가 떠돌았다.

이런 가운데 ‘물결 타기(tide rider)’라는 작전명으로 시위 진압을 진두지휘했던 강경파 크리스 탕이 19일 경찰 총수에 올랐다. 그의 방침에 따라 경찰은 지난 5개월여간 시위대 4,491명을 체포하고 1만여발의 최루탄과 최소 18발의 실탄을 쐈다. 언론 인터뷰에서 그는 “과격 시위대는 테러리스트나 마찬가지”라며 “시민들의 침묵과 관용이 시위대의 폭력과 파괴행위를 부추겼다”고 지적했다. 이어 지난 11일 경찰의 실탄 발사로 시위대가 중태에 빠진 것에 대해 “경찰관 다수가 잔인하게 공격당했고, 우리는 진압이 아닌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무력을 사용한다”면서 “홍콩 경찰은 여전히 아시아에서 가장 훌륭하다”고 치켜세웠다. 또 시위대가 요구하는 독립조사위원회 구성에 대해서는 “송환법 철회를 촉구해 정부가 받아들였지만 시위 상황은 전혀 개선되지 않았다”며 “시위대의 요구는 한낱 구호에 불과할 뿐”이라고 비판했다.

중국은 전날 홍콩 고등법원이 복면금지법 위헌 결정을 내린 것에 대해 “중앙정부의 권위에 도전하는 행위”라며 거칠게 반발했다. 19일 중국 CCTV에 따르면 전국인민대표대회(전인대) 상무위원회는 “홍콩 특구의 법률이 홍콩 기본법(우리의 헌법)에 부합하는지는 우리의 판단과 결정에 달렸다”며 “다른 어떤 유관기관도 이에 개입할 권리가 없다”고 주장했다. 공산당이 홍콩 기본법의 최종 해석권한을 가졌고 복면금지법의 근거가 된 홍콩 긴급법도 1997년 전인대의 결정을 거친 만큼, 홍콩 행정장관이 조례로 제정한 복면금지법에 어깃장을 놓은 법원의 판결은 무효라는 것이다. 이로써 시위대의 마스크 착용은 법적 논란까지 더해져 경찰과의 갈등을 키울 전망이다.

홍콩 사태가 격화하면서 미국과 중국도 장외 설전을 벌였다.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은 18일(현지시간) 기자회견을 통해 “홍콩의 정치적 불안과 폭력 심화에 매우 우려한다”면서 “홍콩 정부는 대중의 우려에 대처하기 위해 분명한 조처를 하고, 중국은 자유의 측면에서 홍콩 시민에 대한 약속을 존중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반면 웨이펑허(魏鳳和) 중국 국방부장은 태국 아세안확대 국방장관회의에서 마크 에스퍼 미 국방장관과 만나 “홍콩을 지킬 준비가 돼 있다”고 응수했다. 당 기관지 인민일보는 19일 “홍콩의 폭동 진압을 더는 늦출 수 없다”며 연일 무력대응을 촉구했다.

한편 이날 홍콩 교민사회에 따르면 한국인 관광객 2명이 17일 이공대에 들어갔다가 교내에 갇혀 밤을 새운 후 가까스로 탈출했다. 이들은 관광을 위해 캠퍼스에 들어갔다가 발이 묶이자 홍콩 총영사관에 연락해 경찰의 선처로 빠져나올 수 있었다. 이들은 폴리스 라인을 넘어 걸어 나오며 “나는 한국인이다(I’m korean)”라고 외쳤다고 한다.

베이징=김광수 특파원 rolling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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