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민주주의 기회 놓친 베이비부머
분노하며 새 가치 모색하는 밀레니얼
무풍지대 한반도에도 전환기가 올까
독일 ‘베를린 장벽 붕괴 30주년’ 기념일인 9일 베를린 베르나우어 거리에 조성된 ‘베를린 장벽 메모리얼’ 공원에서 열린 행사에서 젊은 독일 시민들이 보존된 콘크리트 장벽에 꽃을 꽂고 있는 모습. 베를린=AP 연합뉴스

베를린 장벽 붕괴 30주년이 싱겁게 지나갔다. 언론은 구 동서독의 격차, 시민 회고담 정도를 대수롭지 않게 다뤘다. 뉴욕타임스도 동서독의 이질감, 이민의 증가 등 내부 통합에 초점을 맞춘 기사를 냈을 뿐이다. 베를린 장벽이 그 정도 의미 밖에 없었던가?

베를린 장벽이 무너졌을 때 전 세계는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 그리고 평화에 대한 기대로 가득찼다. 정치 지도자들은 이념의 경쟁이 끝나고 인류 차원의 문제들을 해결할 거라 약속했다. 그런 세계는 지금껏 오지 않았다. 약속을 내건 세대는 딴청을 피우며 자리만 지키고 있다. 새로운 세대는 구세대가 미래까지 망치려 한다고 화를 내지만, 실은 어떤 기회를 놓친 것인지 잘 모른다. 이런 기억의 공백 상태에서 30주년을 맞았다.

무엇이 잘못됐는지 1989년의 세계를 잠깐 돌아보자. 폴란드 자유노조가 선거에서 이기고, 이어 헝가리에서 시민혁명이 일어나 공산체제를 끝냈다. 그 해 봄부터 중국 시민은 톈안먼 광장 등에 모여 민주화를 요구했다. 동서독 시민들이 헝가리를 통해 자유롭게 왕래하면서 베를린의 벽은 절로 무너졌다. 시민혁명의 물결은 90년 독일 통일에 이어 91년 소비에트연방 해체로 이어졌다. 어느 나라나 시민의 요구는 같았다. 자유선거, 법의 지배, 개인주의와 다원적 가치, 시장경제와 자유경쟁, 권력의 견제와 균형, 행정의 투명성과 부패 추방, 언론과 표현 및 사상의 자유를 뜨겁게 원했다.

이 요구를 실현할 책임을 떠맡은 게 전후 세대인 베이비부머(1946~1964년생)였다. 미국에선 1992년 민주당의 빌 클린턴이 46세로 당선돼 이 세대의 첫 대통령이 됐다. 앞서 영국 총리가 된 노동당의 토니 블레어는 그 해 43세였다. 트럼프 현 미 대통령은 당시 43세였고, 2020년 대선에서 그와 맞설 조 바이든 (당시 46세), 버니 샌더스 (48세), 엘리자베스 워렌 (40세)이 모두 같은 세대다. 이 그룹이 다시 내년에 집권할 경우 베이비부머가 미국 정치 권력을 2024년까지 32년 이상 장악하는 셈이다.

그런 세상에서 밀레니엄세대 (1981~1996년생)가 자랐다. 밀레니얼 사회주의자로 불리는 알렉산드라 오카시오 코르테즈 하원 의원은 베를린 장벽 붕괴 두 달 전에 태어났다. 그의 부모는 딸을 위해 학군이 좋은 부자 동네로 이사했다. 아버지가 설계사지만 어머니도 가정부, 스쿨버스 운전사 등으로 돈을 벌었다. 그런데 오카시오가 대학에 들어간 2008년 가족은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로 집을 잃었다. 그 해 미국에선 3조 달러 이상의 부동산가치가 폭락, 50만 가구가 압류로 집을 빼앗겼다. 기업과 은행의 탐욕과 불법으로 일어난 일이지만 국민 세금으로 구제금융이 주어졌고, 경영자들은 수천만 달러를 받고 은퇴했다. 프리덤하우스는 2018년에 이어 2019년을 민주주의의 퇴각기(Democracy in Retreat)라고 규정했다. 빈곤층으로 추락할 거라는 경제적 불안감, 민주정치는 효율적으로 기능하지 않는다는 배신감, 엘리트층은 속이려 든다는 불신을 원인으로 꼽았다.

베를린 장벽 붕괴는 탈이념의 시작을 알리는 것이라고 했다. 이제는 거꾸로 세대가 갈라져 다양한 스펙트럼의 이념을 모색하고 있다. 트럼프의 노선인 경제민족주의부터, 제3의 길 계통의 중도주의, 그리고 사회주의까지 과거 이념이 모두 테이블 위에 올라왔다. 불안감과 불신 속에서 성장한 밀레니얼은 과거 해법을 받아들이지 않는다. 베이비부머가 20대 때 기성세대에 대한 저항과 대항 문화(counter culture)을 즐겼다면, 밀레니얼은 분노와 생존방식을 얘기한다. 환경, 노동 자동화, 다문화주의가 이념의 큰 부분이다. 기후변화를 막기 위한 규제와 정부의 큰 역할을 결합한 뉴 그린 딜, 인공지능의 혜택을 공유재산화하는 럭셔리 공산주의 등을 제시하고 있다. 냉전의 유물로 남겨진 한반도가 이 전환기에 어떤 흐름을 탈지는 모르겠다. 다만 평화경제 등 모색되는 방안이 민주적 가치의 변화와 많이 동떨어져 있다는 느낌은 지울 수 없다.

유승우 뉴욕주립 코틀랜드대 교수

공감은 비로그인 상태에서도 가능합니다

web_cdn 저작권자 © 한국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피니언 최신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