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란 정부가 휘발유 값 인상으로 촉발된 대규모 시위를 ‘폭동’으로 규정하고 강경 진압에 나섰다. 인터넷은 전면 차단됐고, 이틀 새 1,000여명이 체포됐다. 미국의 경제 제재에 돈줄이 막힌 이란 정부가 유가 인상이라는 고육지책까지 내놓자, 이미 오랫동안 생활고에 시달려 온 시민들은 폭발했다. 미국은 “평화적 반정부 시위를 지지한다”며 내심 내부 동요를 반기는 기색이다.
17일(현지시간) 로이터통신 등에 따르면 15~16일 이란 전국 100여개 지역에서 유가 인상에 항의하는 대규모 반정부 시위가 벌어졌으며, 구경꾼까지 포함해 시민 8만7,400여명이 참여했다. 이 과정에서 은행 100곳과 상점 50여곳이 불탔고, 최소 3명이 숨진 것으로 전해진다. 발단은 15일 당국이 휘발유 구매 상한량을 한 달 60ℓ로 정하고 가격을 50% 올린 것이었다.
이란 당국은 시위대를 향해 엄중 경고에 나섰다. 최고지도자 아야톨라 알리 하메네이는 17일 국영 TV 방송에서 “이란인들의 우려를 이해한다”면서도 “관공서와 은행에 불을 지르고 폭력을 행사하는 것은 폭도들이나 하는 짓“이라고 경고했다. 당국은 “외국의 사주를 받은 자들”이 시위에 개입했다고 주장하면서, 미국과 이스라엘 등을 지목해 ‘외부의 적’으로 눈을 돌렸다.
그러나 이번 시위는 미국의 경제 제재로 악화일로를 걸어온 이란 경제난의 징후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이란의 인플레이션율은 이미 40%를 넘어섰고, 국제통화기금(IMF)은 이란 경제가 올해 마이너스 9.5% 역성장할 것이라고 전망한 상황이다. 시민들은 유가 인상이 생필품 가격에도 악영향을 줄 것을 우려하고 있다. 내년 2월 총선을 앞둔 하산 로하니 정부도 여론 악화로 정치적 시험대에 오르게 됐다.
앞서 15일 이란 정부의 유가 인상 발표에 중동전문매체 미들이스트모니터는 “미국은 이를 이란의 ‘후퇴 신호’로 보고 반길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후 시위가 동시다발적으로 벌어지자, 미국은 반정부 시위대에 힘을 실으며 이란 정부에 압력을 높이고 있다. 백악관은 17일 성명에서 “미국은 이란 국민의 평화적인 반정부 시위를 지지한다"며 "시위대에 가해진 치명적인 무력과 심각한 통신 제한을 규탄한다”고 밝혔다.
최나실 기자 verit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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