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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대통령과 임종석 비서실장이 지난해 9월4일 청와대에서 최영애 신임 국가인권위원회 위원장 임명장 수여식에 입장하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정치권에서 마침내 내려놓기 경쟁이 불붙었다. 더불어민주당에서 문재인정부 초대 대통령비서실장으로 전성기를 보낸 임종석 전 의원이, 자유한국당에선 장래가 유망한 부산의 3선 김세연 의원이 총선 불출마를 선언했다. 두 정당의 인적쇄신 경쟁이 치열할 경우 내년 총선의 가장 큰 변수는 ‘보수통합’이 될 것이다. 난립한 보수진영이 하나로 뭉치진 않고선 소선거제 하에서 선거를 치르긴 쉽지 않다. 박빙으로 당락이 갈리는 수도권은 특히 그렇다. 지금의 집권세력이 열린우리당 시절 17대 총선(2004년)에서 압승한 이후 거의 모든 선거에서 패배한 것도 같은 지지층을 놓고 구 민주당과 벌인 출혈경쟁 구도 때문이었다고 볼 수 있다.

보수통합이 유승민은커녕 안철수 전 바른미래당 대표의 합류까지 갈지 의문이다. 안 전 대표의 영입은 중도 확장성과 직결된다. 그러나 햇볕정책을 지지한 그가 결단할 가능성은 낮아 보인다. 부인 김미경 교수가 호남출신이라 반대한다는 얘기도 들리지만, 무엇보다 안 전 대표는 ‘1노3김’시대 이후 우리 정치사에 다당제구도를 만들어낸 주인공이다. 제3정당의 필요성을 강조해온 그가 자신의 말을 번복할 명분을 찾으려면 한국당의 정책ㆍ이념적 스펙트럼이 확대돼야 한다. 보수통합이 단순한 ‘반(反) 문재인’ 몸집불리기를 넘어 가치를 창출하려면 황교안 대표가 바뀌지 않는 한 어렵다는 얘기다. 황 대표의 한국당은 여전히 ‘과거’를 상징하고 있다. 그가 삼고초려해 영입했다는 박찬주 전 육군대장은 자신을 공격한 사람에게 “삼청교육대에 보내야 할 사람”이란 취지의 말을 내뱉었다. 지난 봄 ‘5ㆍ18 망언’ 문제를 단호하게 정리하지 않았던 점까지 떠올리면 황 대표의 정체성이 ‘전두환 민정당 시대’에 머물러 있는 것 아니냐는 확신을 갖게 한다.

그럼 보수 쪽은 왜 이토록 위기 때 수혈할 ‘정치상비군’들이 없을까. 시민세력의 역사가 없어서일 것이다. 군사독재 시절 관변단체 체질에 길들여져 거리의 현장에서 투쟁한 경험이 없다. 재야에서 반독재투쟁이나 치열한 내부 노선투쟁을 겪어온 민주개혁진영에선 명망가나 시민운동가가 끊임없이 배출되지만, 권위주의 정권과 함께 해온 보수진영은 내부에서 다른 세력이 힘을 키우기 힘든 문화가 지배한다. 민주당과 과거 국민의당은 분파가 가능하지만, 보수진영은 대안세력(개혁보수)이 크지 못하는 이치와 같다.

결국 내년 총선은 최선이 아닌 차선, 그것도 아닌 차악을 선택해야 하는 난감한 선거가 될 것이다. 황교안 체제가 퇴진하고 보수단일정당의 비대위가 출범하지 않는 한 승패의 최대 관건은 여권이 국정쇄신책을 내놓을 수 있느냐에 달려있다. 역대 정권은 대선 때마다 중도확장 전략으로 당선돼 집권 후 본래의 모습으로 되돌아가는 악순환을 반복해왔다. 당선된 뒤 사라진 박근혜의 경제민주화가 대표적이다. 촛불혁명은 진보진영은 물론 중도성향과 보수진영 상당수도 참여했다고 평가받는다. 촛불로 집권한 문재인 정부도 이젠 외교ㆍ안보 고립과 소득주도성장 과속, ‘조국 사태’로 불거진 공정의 문제 등 비판이 쏟아진 부분은 실책을 인정하고 과감히 바꿔야 한다.

총선 물갈이론이 다분히 청와대출신 내리꽂기로 활용되는 것이야말로 화를 자초할 수 있다. 지난 총선 때 대구에서 ‘진박’ 후보 6명이 연대선언을 한 장면을 떠올려보자. 여기서 새누리당의 공천갈등이 본격화됐고, ‘김무성 옥새파동’을 거쳐 총선참패, 박근혜 탄핵까지 이어졌다. 차기 총리는 원혜영 의원을 비롯해 진영 내에서 신망이 두텁고 중도층까지 아우를 카드가 좋다고 느껴진다. ‘국민과의 대화’에서 문재인 대통령의 파격적인 국정쇄신책을 기대한다. 여든 야든 쇄신을 얼마나 구차하지 않고 명쾌하게 실천하느냐에 중도층의 마음이 기울 것이다.

박석원 정치부 차장 spark@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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