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적 기업서 인생 2막 시작한 임성수씨 
 ※ 은퇴 이후 하루하루 시간을 그냥 허비하는 분들이 적지 않습니다. 삶에서 재미를 찾지 못하고, 사소한 일에 분노를 표출하기도 합니다. 은퇴 후 삶은 어때야 하는 걸까요. <한국일보>는 우아하고 품격 있게 인생 2막을 살고 있는 분들의 이야기를 매주 수요일 연재합니다.
 
지난 13일 서울 구산동 사회적 기업 ‘스프링 샤인(Spring Shine)’ 사무실에서 만난 ‘인턴’ 임성수씨가 인생 2모작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밝히고 있다. 박형기 인턴기자

벌써 두 번째 인턴이다. 제대로 된 자리를 잡지 못한 채 인턴만 전전하다 보니 어느덧 인턴의 달인으로 거듭 난다는 뜻에서 ‘부장 인턴'이라는, 웃기면서도 슬픈 이름이 생겨났다지만 임성수씨는 ‘부장’을 넘어 ‘최고경영자(CEO) 인턴’이다. 임씨 나이는 올해로 예순일곱. 한 직장의 최고봉에 올라봤으니 이제는 좀 쉴 때라는 말을 뒤로 하고 2016년부터 인턴의 길로 접어들었다.

임씨를 찾아간 것은 지난 13일. 서울 구산동 서부장애인종합복지관과 아동복지시설 은평천사원 사이에 위치한 ‘스프링 샤인(Spring Shine)’ 사무실이었다. 스프링 샤인은 장애인 공예 예술가들을 지원하는 사회적 기업이다. 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날씨였음에도 도기를 빚고 굽는 장인들의 손놀림은 멈추지 않았다.

사무실에 들어서자 임씨가 “찾기가 쉽지 않죠?” 인사말을 건네며 밝은 표정으로 맞아줬다. 짙은 파란색 스트라이프 셔츠에 청바지를 말끔하게 차려 입은 임씨는 1주일에 월수금 3일만 출근한다 했다. 회사에서 내준 기사 딸린 차를 타고 다니다 지금은 “지하철을 2번 갈아타고 버스를 타고 다니니 40분쯤 걸린다”며 웃었다.

임씨는 최근 에어비앤비에 스프링샤인 체험 활동을 올릴 준비를 하고 있다. 박형기 인턴기자
 
 ◇”에어비앤비 아시죠?” 

임씨의 이날 업무는 ‘에어비앤비와 연결하기’였다. 의외라는 얘기에, 그게 바로 자신의 역할이라 했다. 장인들이 도기를 빚어 판매하는 것이 스프링 샤인의 주된 수익 모델이었다면, 이제는 외국인 여행객들을 불러다가 인형을 직접 디자인하고 만드는 체험 활동을 시켜보자는 것이다. “에어비앤비에 올릴 체험 공방을 준비하던 참이에요. 에어비앤비가 숙박 공유 플랫폼이지만 체험활동을 올리면 손님을 받을 수도 있어요.”

한류 바람 덕에 한국 문화에 호기심을 가진 이들이 늘고 있으니 외국인이 신청하면 스프링 선샤인 소속 디자이너가 그들을 데리고 체험 활동을 진행한다는 계획이다. 이미 체험 활동을 위한 모델도 마련해뒀다. 공방을 보여주던 임씨는 “이게 개발된 샘플”이라며 한복 차림의 손바닥만한 인형들을 내보였다. 상모를 쓴 사물놀이패 인형에서부터 삼국시대 사극에 나오는 인물처럼 차려 입힌 인형들까지 다양했다. 임씨는 “한류 드라마를 테마로 만든 인형”이라 설명했다.

에어비앤비 등록은, 그냥 등록한다고 되는 게 아니다. 체험 활동 내용, 실제 활동 사진 같은 증빙자료를 덧붙여 상세한 계획서를 만들어서 에어비앤비의 심사를 받아야 한다. 조건도 까다롭다. 체험 활동을 이끄는 ‘호스트’는 해당 분야에 충분한 지식이 있어야 하고, 독특한 시각이 엿보여야 하며, 활동 장소도 여행객 혼자서는 찾기 힘든 곳이면 더 좋다. 한마디로 여행객에게 특별하면서도 제대로 된 경험을 선사할 수 있다고 설득해야 한다. 임씨는 이를 위해 디자인 담당자를 별도로 영입했다. 또 차량을 타고 10분 거리에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된 조선시대 왕릉인 서오릉(西五陵)이 있다는 점도 강점으로 내세울 참이다.

임성수씨가 한류 드라마 등장인물처럼 디자인한 인형을 들어올리며 웃고 있다. 박형기 인턴기자
 ◇수출보국 시대의 ‘종합상사맨’ 

임씨는 종합상사 시대의 인물이다. 그의 자기소개서 첫 줄은 “1980년대 무엇이든 내다 팔던 수출보국시대, 종합상사맨”이라 적었다. 말 그대로였다. 대학에서 산업공학을 전공한 후 “무역이나 해외 시장과 관련된 일”을 해보고 싶어서 삼성물산에 취직했다. 수출만이 살길이라 외치던 1970년대가 종합상사 시대를 열었다면, 1980년대는 가발을 뛰어넘어 더 다양한 제품을 내다팔기 위해 전세계를 누볐던 상사맨의 전성시대였다.

그에게 처음 떨어진 임무는 이집트 전력청에서 발주한 기름 저장탱크 설치 사업을 따내라는 것. 상사맨은 고상하게 사무실에 앉아 계약서만 주고받는 게 아니었다. 조립에서 납품까지 모두 책임져야 했기에 이집트로 가서 현지 인력을 고용하고 자재를 옮기는 등 온 몸을 다 던져야 했다. 돌발상황도 많았다. 한 번은 현지 직원이 숙소에서 숨진 채 발견돼 경찰 조사를 받기도 했다. 그 때만 해도 출국할 때 반공교육을 받던 때라 “북한 공작원에게 납치당하는 줄 알았다”며 웃었다.

경험을 쌓은 임씨는 1980년대 말 의류 유통 분야에서 자기 사업을 시작했다. 명품 의류의 위탁생산(OEM)이 주된 일이었다. “중국이 눈을 뜨기 전이라 우리나라의 가격경쟁력이 좋았던 때”였다. 디올, 지방시 등 명품 브랜드를 위탁 생산했고 1992년에는 정부가 주는 ‘수출의 탑’ 상을 받기도 했다. .

임씨가 수출에서 수입으로 눈을 돌린 것도 이 때쯤이었다. 한국 경제 규모가 커지면서 해외 브랜드들도 한국 진출을 모색했다. 임씨는 그 제품들의 국내 유통을 맡았다. 임씨는 H사 등 몇 개 회사의 CEO를 거치면서 유명 해외 해외 브랜드들을 국내에 소개하고 유통했다.

이런 경력은 ‘인턴’ 임씨에게도 영향을 끼쳤다. 은퇴 뒤에도 뭔가 의미 있는 일을 찾던 임씨에게 ‘서울시 50플러스재단’에서 제공하는 ‘사회적 경제 강좌’가 눈에 들어왔다. 그 강의를 들으면서 자신의 경험을 좋은 데 쓸 수 있겠구나 생각했다.

임씨가 보기에 장애인이 디자인하고 만드는 도예품은 그 의미는 대단히 훌륭하지만 생산성 측면에서 시장에서 경쟁력을 갖기 쉽지 않다. 이걸 매력적으로 포장하기 위해 임씨는 다양성, 예술성을 발휘하는 방향으로 사업을 확대해보면 어떻겠냐고 대표에게 제안했다. 임씨는 “한류와 공예를 접목해 장애인 디자이너가 한류 브랜드를 만들어내는 게 어떨까 구상했는데, 대표가 흔쾌히 이를 받아줘서 제가 콘텐츠를 구상하고 판로를 만들어나가기로 했다”고 말했다. 지금 임씨의 목표는 40년 상사맨 경험을 녹여 이 곱고 예쁜 사회적 기업이 수익을 창출해 재정적 어려움 없이 자립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다.

 ◇”친한 친구만 만나지 마세요” 

대기업 틈바구니에서 중소기업을 이끌며 수십 년간 해외 브랜드 마케팅 사업을 해왔다지만, 처음부터 쉬웠던 것은 아니다. 건강은 이상 없었지만 젊은 세대들이 갖추고 있을 기술과 감각은 부족하지 않을까 걱정됐다. “저도 처음에는 엄청 불안했습니다. 젊은이들과 동등한 입장에서 뛰어야 하는데 지금 내가 과연 할 수 있을까, 내가 빨리 뭔가 익히고 배우지 않으면 ‘뒷방 노인네’ 밖에 안되는 걸 아닐까, 불안하고 조바심도 나고 그랬습니다.”

기초를 쌓아가는 데만도 1년 넘는 시간이 걸렸다. 그런 게 있다더라는 정도만 알던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배웠다. 부하 직원이 만들어서 가져오면 눈으로 보기만 했던 파워포인트(PPT)나 동영상 제작, 편집 기법도 배워야 했다. 이런 기술들을 요즘 사람들은 어떻게 마케팅과 접목시켜나가는지 사례 연구도 했다. “저도 구체적으로 그런 걸 배우기 전에는 ‘네이버 블로그’가 최고인 줄로만 알았어요. 그런데 자꾸 공부를 해나가다 보니 ‘이제 유튜브가 대세’라는 말이 무슨 뜻인지 이해가 되더라고요. 이런 공부는 끝이 없고 계속 쫓아가야 한다는 걸 느꼈습니다.”

13일 임성수씨가 인턴으로 근무하고 있는 서울 은평구 소재 사회적 기업 스프링 샤인(Spring Shine)에서 본인의 삶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박형기 인턴기자

그래서 인생 2막을 준비하는 이들에게 임씨가 해주고 싶은 말은, 조바심 내지 말라는 것이다. 디지털 기술 자체를 배우는 건 다소 더딜 수는 있지만 그 자체로는 어렵지 않다. 차근차근 하면 된다. 오히려 실버 세대만의 강점을 살릴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하는 편이 더 좋다.

‘스프링 샤인’ 이전 임씨는 노인용 저가 보청기 생산업체에서도 인턴으로 일했다. “그 때 제 업무가 저가 보청기에 대한 소비자 반응을 조사하는 것이었어요. 노인들을 직접 만나본 결과 그 분들의 가장 큰 불만은 색상과 디자인이었어요. 30대 젊은 대표가 만든 제품이라 기능에만 신경을 썼기 때문이지요.” 그걸 공개적으로 말하기 힘들었던 실버 세대들은 그저 속으로만 불만을 삭이다 임씨를 만나자 기다렸다는 듯이 토해냈던 것. 임씨는 “통념과 다르게 의외로 까다로운 실버 세대를 가장 잘 이해할 수 있는 것도 실버 세대”라고 말했다.

임씨는 스프링 샤인이 어느 정도 자리잡게 된 뒤 ‘인생 삼모작’도 고민 중이다. “실버 세대는 수십 년간 경험을 토대로 얼마든 일자리를 만들어낼 수 있는 능력이 있는 세대에요. 친구만 만나지 말고 창업을 꿈꾸는 젊은이 등 보람을 찾으려는 이들과 커뮤니티를 만들어야 해요.” 삼모작은, 아마 그 작업을 위한 ‘실버 멘토링’이 될 듯 하다. 홍인택 기자 heute128@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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