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체장애인 작가 신홍윤ㆍ시각장애인 가수 이현학 공동 진행
"모범사례ㆍ약자 틀 넘어 다양한 삶의 모습 전달하고파"
불쌍한 장애인이나 대단한 장애인이란 이분법을 넘어 다양한 삶의 모습을 전달하는 게 팟캐스트 ‘당장만나’의 포부다. 사진은 웹툰 ‘찌질의 연애’로 유명한 작가 김풍씨와 촬영했던 9회 ‘을의 연애’편. 왼쪽부터 신홍윤씨, 김풍씨, 이현학씨. 신홍윤씨 제공

“한국 사회에서 장애인을 보는 시선은 극과 극이에요. 도움이 필요해서 불쌍하거나 장애를 극복해서 대단하거나. 하지만 장애라는 이분법에 얽매일 필요는 없어요. 저희가 지닌 다양한 매력을 전하고 싶어요.” (신홍윤)

소망을 이루기 위해 작가 신홍윤(30ㆍ지체장애)씨와 가수 이현학(34ㆍ시각장애)씨는 지난해 12월부터 한국장애인개발원이 운영하는 팟캐스트 ‘당장만나(당신이 장애를 이해하고 싶을 때 만나고 싶은 사람들)’를 진행하고 있다. 신씨는 토크 콘서트를 진행했던 경험을 살려 직접 대본을 작성하고, 가수이자 장애 인식 개선 콘텐츠 개발자인 이씨는 영상을 직접 편집한다.

웹툰 작가 김풍씨부터 국내 최초 장애인 앵커 이창훈씨까지 다양한 분야의 게스트를 초청해 장애 청년의 시선에서 질문하고 대화한다.

두 사람은 연애, 여행, 영화, 진로 등 미디어에서 많이 다뤘던 주제도 장애 청년의 시선에서 볼 때 참신하고 새로운 주제가 된다고 말한다. “장애 청년이 떠나는 여행을 상상해보셨나요? 장애 청년이 하는 연애는요? 비장애인의 시선으로만 생각해온 주제를 장애 청년의 시각에서 생생하게 전하려고 해요.” (신홍윤)

장애 청년의 연애를 다룬 ‘을의 연애’ 편에서 짝사랑을 고민하는 제보자에게 이씨는 시각장애를 가진 자신의 경험을 살려 조언을 건네기도 했다. “짝사랑은 눈치가 중요해요. 눈치는 눈빛이나 표정을 보는 것뿐 아니라 말투나 단어를 주목해야 해요.”

이씨는 “제가 원래 인생 걱정이 많고 고민에 갇혀 사는 스타일이 아니다”라며 “장애도 마찬가지예요. 괜찮으니 다 물어봐요”라고 말했다. 신씨와 이씨 두 사람을 지난달 25일 오후 서울 종로구 혜화동 한 카페에서 만났다.

여행, 연애, 직장 등 익숙한 주제들도 장애 청년의 시선에서 바라보면 새로워진다. 장애 청년의 시선에서 함께 살아가는 삶을 질문하고 한 편의 팟캐스트로 담아낸다. 사진은 국내 최초 장애인 앵커 이창훈 아나운서가 참여한 12회 방송 캡처.
- ‘당장만나’를 소개한다면.

신홍윤(이하 신)= “‘당’신이 ‘장’애를 이해하고 싶을 때 ‘만나’고 싶은 사람들의 약자다. 웹툰 작가, 사진기자, 앵커, 공무원, 교수 등 유명 인사들과 만나며 장애에 대한 생각을 나누는 팟캐스트다. 그간 비장애인의 시선으로만 생각해 온 문제들을 장애 청년의 시선에서 전하려고 한다.”

- 당장만나를 시작하게 된 계기가 있다면.

신= “지난해 여름 한국장애인개발원과 함께 장애 청년을 주제로 한 토크콘서트를 진행했던 게 시작이었다. 사회적으로 상상되는 모습의 장애인이 아니라 장애 청년이 살아가는 진짜 모습을 전달하는 게 행사의 목적이었다. 다행히 행사는 성공적으로 마무리됐고 프로그램을 하나 더 만들어서 활동을 계속 이어가자는 생각을 했다. 마침 KBS3 라디오 ‘내일은 푸른 하늘’에 게스트로 함께 출연하던 현학이 형과 뜻을 모았다. 그 인연이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 김풍씨와 진행했던 ‘을의 연애’ 편이 유독 눈길을 끄는데.

신= “김풍씨가 쓴 웹툰 ‘찌질의 역사’를 보고 김풍씨와 장애 청년의 연애에 대해 직접 이야기해보면 재미있겠다고 생각했다. 사실 우리는 연애와 장애를 함께 고민해본 적이 드물다. 장애인이 연애를 한다고 하면 ‘장애인이 연애도 해?’라는 반응이 나온다. 장애 청년의 연애를 이상하게 생각하는 사회적인 이유나 썸을 타는 과정에서 장애인이란 이유만으로 배제 당했던 생생한 사연을 담으려고 노력했다.”

이현학(이하 이)= “장애인의 연애는 대단한 성취로 인식된다. 비장애인이 연애를 하면 그렇게 대단한 일이 아니지만 장애인이 연애를 하면 ‘대단해, 장애를 극복하고 연애도 하는구나!’하는 식으로 보는 시선이 있다. 저번에 택시를 탔을 때도 택시 기사에게 여자친구가 있다고 했더니 ‘여자친구도 있어? 내 아들은 사지 육신 멀쩡한데도 연애를 못하는데’라는 반응이 돌아왔다. 아직 이 정도 인식이 만연했다는 생각이 든다. 어디 가서도 말하지 못했던 장애 청년의 연애를 공론화할 수 있어서 좋은 기회였다.”

- 진행자 입장에서 가장 기억 남는 대담이 있다면.

신= “장애등급제 폐지를 두고 보건복지부 서기관과 나눴던 대담이 기억난다. 대화가 중심인 팟캐스트 형식을 따르다 보니 단순하게 정부 측의 입장을 홍보하는 정도로 끝나지는 않을까 고민했다. 이 문제를 간절하게 생각하는 장애인이 많았기 때문에 그들의 시선을 더 많이 전해야겠다는 부담이 있었다.”

이= “녹음 전날 청와대 앞에서 장애등급제 폐지를 요구하는 시위에 참여했다. 현장에서 시각장애인 어머니 중 한 명이 삭발을 했다. 그분께선 ‘내가 없으면 내 자식은 누군가가 책임을 져야 하는데, 책임지는 사람의 태도가 이래서는 안 된다’라고 하셨다. 그 다음날 서기관을 만나다 보니 어머님 생각이 많이 났다. 어머님과 장애 청년을 대변해 날카로운 질문을 던지려고 노력했지만 여전히 아쉬움이 남는다. 가장 치열하게 준비했지만 가장 어려웠던 대담이었기에 기억에 남는다.”

- 당장만나는 장애를 어떤 시선으로 담고자 하나.

이= “진지하지 않게 장애인이 겪는 고충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고 싶다. 예를 들어 패스트푸드점을 방문하는 콘텐츠가 있다면, 보통은 햄버거를 먹는 장면에 치중할 것이다. 하지만 저희의 경우 키오스크로 주문하기 어려워하는 시각장애인의 모습을 콘텐츠에 자연스럽게 담는 방식이다. 키오스크는 비장애인들에겐 너무나 당연하기 때문에 인지하지 못하지만 시각장애인에겐 큰 고충일 수 있다. 이런 일상 속 제약들을 있는 그대로 전달하고 ‘장애인 입장에선 키오스크가 불편할 수도 있겠구나’라는 인식만 남겨도 충분하다. 진지할 필요가 없다.”

- 어려움은 없나.

신= “우리가 장애 청년을 대표하는 사람으로 보이지 않도록 늘 경계하고 있다. 같은 장애인이라고 해도 장애 패러다임이 저마다 다르기 때문이다. 장애를 바라보는 관점이 제각각이란 의미다. 그런데 제가 대중 앞에 서서 장애를 이야기할 기회가 다른 장애 청년보다 많았다는 이유만으로 그들의 발언권을 가져오는 경우가 있다고 생각한다. 아무리 우리가 방송에서 즐거운 이야기를 해도 많은 장애 청년에게 어려움은 분명히 존재한다. 우리 두 명이서 그들의 이야기까지 온전히 전달할 수는 없기 때문에 늘 조심하고 있다.”

- 청취자들이 당장만나를 어떻게 기억했으면 좋겠나.

이= “한국에 살고 있는 장애인이 250만 명이다. 하지만 많은 비장애인은 일상 속에서 장애인을 만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당장만나는 팟캐스트라는 매체를 통해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만날 기회를 제공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장애인은 굉장히 먼 존재라고 생각했는데 사실 우리 주변 가까이에 있고 그들도 우리처럼 유쾌하고 재밌다’는 생각을 하는 계기로 기억됐으면 한다.”

김민준 인턴기자 digital@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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