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예훼손 금지 가처분 기각
대학원생 제자의 논문을 대량 표절한 의혹으로 직위해제 된 서울대 국어국문학과 박모 교수가 의혹을 제기한 제자를 상대로 명예훼손 금지 가처분신청을 냈지만 법원이 받아들이지 않았다. 법원은 경미하지 않은 표절 의혹을 담은 대자보의 교내 게시를 ‘공적인 행위’로 판단했다.
17일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51부(부장 박범석)는 “박 교수의 표절 정도가 경하지 않았던 것으로 보이고 대학원생 K씨의 대자보 게시는 학내 학문공동체의 건전성 등 공적 목적을 가진 행위로 볼 여지가 크다”며 박 교수가 낸 가처분 신청을 지난 11일 기각했다.
재판부는 △K씨가 표절 제보한 20건 중 12건에 대해 서울대 연구진실성위원회(진실위)가 ‘위반 정도가 상당히 중하다’는 결과를 발표했고 △나머지 8건도 진실위가 지난 6월 ‘연구부정행위 및 연구부적절행위에 해당한다’는 예비조사 판정 결과를 내놨고 △한국비교문학회가 논문 2편을 표절로 인정해 박 교수를 제명했다는 점을 대자보 내용을 허위로 볼 수 없다는 판단 근거로 제시했다.
재판부는 “자유로운 토론을 통해 발전하는 학문과 사상의 영역에서 학문적 목적을 위한 표현의 자유는 고도로 보장돼야 하고 학문적 의미의 검증을 위한 문제제기 역시 널리 허용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앞서 박 교수는 “표절 행위를 하지 않았거나 경미한 표절만 했는데 심각한 표절 논문으로 단정적인 표현을 담은 대자보를 게재해 인격권과 명예를 침해했다”고 주장했다. 이에 K씨는 “광범위한 표절 피해를 당했지만 박 교수는 이를 은폐하거나 호도하고 보복하기도 했다”며 “대자보의 내용은 사실에 부합하고 학문에서 허용하는 비판 및 비평의 자유에 해당한다”고 맞섰다.
K씨는 2013년 지도교수인 박 교수의 논문 표절 의혹을 처음 제기했다. 주변에 피해 사실을 알려도 도움을 받지 못하자 직접 박 교수 논문과 단행본 20건에 대한 대조작업을 거쳐 1,000쪽 분량의 자료집을 만든 뒤 진실위에 보냈고, 관련 대자보를 게시했다.
박 교수 표절 의혹에 대해 학부ㆍ대학원생은 물론 동료 교수들까지 성토를 이어가자 서울대 징계위원회는 조만간 회의를 열어 박 교수 징계 수위를 결정할 것으로 알려졌다.
박진만 기자 bpbd@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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