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대항마 없다” 위기의식 반영
버락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이 “평범한 미국인들은 기존 체계를 허물고 싶어 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20명 가까이 출사표를 던질 만큼 과열되고 있는 민주당 대선 경선을 겨냥해 후보들이 극단적 정책 경쟁에 매몰돼 선명성만 강조할 경우 유권자들의 마음을 얻지 못할 것이란 조언이다. 여기엔 이러다간 도널드 트럼프 현 대통령에게 다시 정권을 내줄지 모른다는 위기 의식이 깔려 있다.
15일(현지시간) 미 일간 뉴욕타임스(NYT)에 따르면 오바마 전 대통령은 이날 워싱턴에서 열린 ‘민주주의 동맹’ 연례 회의에 참석해 민주당 경선 구도가 지나치게 진보적 정책제안 쪽으로 흘러가고 있다고 지적했다. 민주주의 동맹은 부유한 진보적 기부자들의 모임이다. 그는 2008년 힐러리 클린턴 전 국무장관과의 치열했던 경선 과정을 언급하면서 “16개월 간의 전투가 나를 더욱 강한 대선 후보로 만들었다”고 회고했다.
오바마 전 대통령은 당시 경험을 떠올리며 “몇몇 후보들은 건강보험이나 이민 등 이슈에서 누가 더 진보적인 지를 놓고 싸우고 있다”며 “하지만 이런 경쟁은 대중의 생각에서 멀리 떨어진 것”이라고 충고했다. 이어 “보통 국민들은 우리가 시스템을 완전히 뜯어 고치거나 재개조하기를 원치 않는다”고 덧붙였다. 물론 후보들이 자신의 과거 업적을 극복해야 하지만 대선 후보로서 특정 계층에 치우치지 말고 모든 유권자를 포용할 수 있는 정책을 내놔야 한다는 얘기다.
NYT는 “오바마가 특정 후보를 거론하지는 않았으나 지지율 상위권인 버니 샌더스와 엘리자베스 워런 상원의원을 염두에 뒀다”고 해석했다. 워런은 연 3% 부유세 부과, 대형 정보기술(IT)기업 해체 등 ‘반기업ㆍ반재벌’ 노선을 명확히 하고 있다. 샌더스는 아예 사회주의자를 자처하며 “정치혁명을 일으키자”는 화끈한 구호를 내세웠다.
그러나 민주당 당원과 전략가들은 이들이 트럼프 대통령에 맞설 전국적 경쟁력을 갖추기에는 턱없이 부족하다고 우려한다. 오바마 행정부에서 부통령을 지낸 조 바이든 역시 마찬가지다. 신문은 “오바마 연설은 다소 이례적으로 볼 수 있지만 한해 수천만달러를 기부하는, 영향력 있는 모임에서 자신의 생각을 밝힌 것은 의도적 메시지”라고 평가했다.
민주당 대선 경선 구도는 현재 14일 더발 패트릭 전 매사추세츠 주지사가 참여를 선언하면서 무려 18명의 후보가 난립하고 있다. 여기에 클린턴 전 국무장관도 대권 도전 가능성을 거두지 않아 한층 혼전 양상으로 치닫는 분위기다.
김이삭 기자 hiro@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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