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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 대자보 훼손, 대학의 실종

입력
2019.11.15 18:00
2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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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3일 서울 안암동 고려대 노동자연대 고려대모임에서 주최한 '홍콩 민주항쟁 왜 지지해야 하는가?' 포럼 행사 포스터. 이 행사를 반대하는 문구들이 써 있다. 독자 제공
지난 13일 서울 안암동 고려대 노동자연대 고려대모임에서 주최한 '홍콩 민주항쟁 왜 지지해야 하는가?' 포럼 행사 포스터. 이 행사를 반대하는 문구들이 써 있다. 독자 제공

홍콩 민주화 시위를 지지하는 대학가 대자보가 중국 유학생들에 의해 훼손되고 있다. 대자보 훼손을 막으려는 한국 학생과 중국 학생 사이에서 몸싸움 등 충돌이 빈발한다. 학생들은 대자보 게시판 앞을 지키고 있으면, 중국 학생들이 사진을 찍으며 위협하고 막말과 욕설도 서슴지 않는다고 말한다. 또 이런 상황을 중국판 소셜네트워크서비스 웨이보를 통해 중국으로 퍼 나르며 중국 내 반한 감정을 조장하고 있다. 급기야 경찰이 수사에 착수하고 주한 중국대사관이 우려 성명을 낼 만큼 사태가 심각해졌다.

□ 한국ㆍ중국 학생들 간의 갈등이 위험한 수준에 도달해도 대학 당국은 어떤 대책도 내놓지 않고 있다. 서울대에 문의했더니 “학생징계절차 등에 관한 규정상 대자보 훼손 과정에서 폭력, 폭언이 발생하지 않는 한 조치를 취할 수 없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연세대는 “학생들이 도움을 요청한 적이 없다”고 하고, 고려대는 “대자보에 반대 의견 문구를 적어 놓은 수준이어서 제재ㆍ징계를 할 수 없다”고 답했다. 그 어떤 공동체보다 ‘표현의 자유’가 소중하게 지켜져야 할 대학 내에서 그 가치가 유린당하고 있는데도 대학 당국은 외면하려고만 한다.

□ 이를 두고 대학가에서는 “우려했던 상황이 결국 수면 위로 떠올랐다”고 말한다. 국내 대학에서 공부하는 외국인 유학생은 16만명에 달하며 이중 중국 학생이 7만명이다. 대학별로 많게는 5,000명이 넘는 중국 학생 다수가 무리를 이룬 채 폐쇄적으로 움직여 한국 학생들과 교류가 드물다. 대학들이 재정적 도움이나 학교 평가 점수를 높이기 위해 유학생들을 적극적으로 선발하지만, 이후 어학이나 한국 사회 적응 교육 등은 소홀히 한 결과다. 문화와 가치가 다른 두 집단 사이에 오해와 갈등이 점점 쌓여, 급기야 우리 대학의 기본 가치마저 공격당하는 상황에 이르렀다.

□ 유럽 중세 대학이 르네상스의 요람 역할을 한 이후, 대학은 다가올 미래를 위한 새로운 가치와 지식을 모색하는 공간이었다. 이런 공간은 사상과 표현의 자유가 그 기반이며, 이를 위해 외부 권력으로부터 자율성을 지켜야 한다. 우리 사회 민주화도 불완전하나마 대학이란 공간이 없었으면 진전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사회 전반이 발전하면서 대학의 위상이 많이 약해진 건 사실이다. 그래도 과거처럼 사회를 이끌진 못하더라도, 대학이 사회 발전을 후퇴시키는 공간이 되어서는 안 된다.

정영오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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