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쉰들러 리스트’와 ‘글래디에이터’로 미국 아카데미영화상 작품상을 두 차례나 수상한 유명 제작자이자 홀로코스트 생존자인 브랑코 러스틱이 14일(현지시간) 고국 크로아티아 자그레브에서 별세했다. 향년 87세. AP통신 등에 따르면 사인은 알려지지 않았다.
1932년 유고슬라비아(현 크로아티아)의 유대인 가정에서 태어난 고인은 2차 세계대전 당시 폴란드 아우슈비츠 수용소와 독일 베르겐 벨젠 수용소에 2년간 수감돼 고초를 겪었고, 가족 대부분을 홀로코스트로 잃었다.
고인은 1955년 유고슬라비아 국영 영화사인 야드란 필름에서 조감독으로 활약하며 영화계에 첫 발을 디뎠다. 1971년에는 유럽에서 촬영된 노먼 주이슨 감독의 할리우드 뮤지컬 영화 ‘지붕 위의 바이올린’에서 로케이션 매니저로 일했고, 1980년대엔 인기 TV드라마 ‘전쟁의 폭풍(1983)’과 ‘전쟁과 기억’(1988)에도 참여했다.
1988년 미국으로 건너온 그는 1994년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이 연출을 맡은 영화 ‘쉰들러 리스트’를 제작해 첫 번째 아카데미 작품상을 받았다. ‘쉰들러 리스트’는 2차 세계대전 당시 유대인 수백 명을 고용해 나치로부터 목숨을 구한 독일인 사업가의 실화를 다룬 작품으로, 고인은 단역으로도 출연했다.
2001년에는 리들리 스콧 감독의 ‘글래디에이터’로 두 번째 아카데미 작품상을 받았다. 이후로도 ‘한니발’(2001)과 ‘블랙 호크 다운’(2001), ‘킹덤 오브 헤븐’(2005), ‘어느 멋진 순간’(2006), ‘아메리칸 갱스터’(2007) 등에서 스콧 감독과 협업하며 할리우드에 커다란 족적을 남겼다.
2009년 고국으로 돌아온 그는 자그레브에 유대인 영화제를 설립하고, 2015년 이스라엘 예루살렘 홀로코스트 박물관에 ‘쉰들러 리스트’로 받은 아카데미상 트로피를 영구 기증했다.
안드레이 플렌코비치 크로아티아 총리는 이날 “나치 수용소에서 삶과 죽음을 알게 된 한 소년의 경험을 러스틱은 지고한 창조력을 통해 표현했다”고 애도를 표했다.
김표향 기자 suzak@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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