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크라이나 스캔들’로 탄핵 절차 밟는 美 민주당
‘Impeachment’라는 단어의 뜻, 알고 계신가요? 국내에선 박근혜 전 대통령을 계기로 2016년부터 널리 알려진 ‘탄핵’이라는 단어입니다. 최근 미국 언론에서도 이 단어가 심심치 않게 등장한다는데요, 바로 임기 3년차에 접어들어 최대 위기를 맞은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때문이죠.
이른바 우크라이나 스캔들로 촉발된 미국의 탄핵 정국, 과연 트럼프 대통령은 미국의 첫 번째 탄핵 대통령이란 이름으로 역사에 남게 될까요?
◇우크라이나 스캔들이 뭔데?
우크라이나 스캔들은 올해 7월 트럼프 대통령이 우크라이나의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대통령과의 통화에서 조 바이든과 그의 아들(헌터 바이든)에 대한 수사를 압박했다는 폭로로 시작됐습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 과정에서 미국의 군사원조 중단 카드를 무기 삼아 우크라이나에 관련 수사를 청부했다는 의혹도 불거졌어요.
조 바이든이 누구기에 트럼프 대통령이 이토록 신경을 쓰는 걸까요. 그는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 시절 부통령이자 지금 민주당의 유력 대선 후보인데요, 부통령이던 2016년 우크라이나에 검찰총장을 해임하지 않으면 10억달러 규모 미국의 대출 보증을 보류하겠다고 경고한 바 있다고 합니다. 그런데 바이든의 ‘경고’는 검찰총장이 그의 아들이 관여한 현지 에너지회사를 수사 선상에 올린 탓이라는 의심을 받고 있어요. 때문에 트럼프는 라이벌의 약점이 될 수 있는 부분을 ‘더 캐보라’고 우크라이나의 옆구리를 쿡 찌른 거죠.
미국 차기 대선의 여야 대표주자인 두 사람이 연루되면서 미국 정가에서는 이 의혹으로 트럼프든 바이든이든 한 명은 끝난다고 보고 있어요. 공격이 거세지자 트럼프 대통령은 우크라이나 대통령과의 통화는 “절대적으로 완벽했다”고 거듭 주장하며 통화 녹취록을 공개하기도 했죠. 그의 반발에도 미국 민주당은 9월 24일(이하 현지시간) 탄핵소추 조사 개시를 공식 발표했고, 내년 미국 대선(11월 3일)을 1년여 앞두고 미 정가는 사생결단의 혼돈에 빠져들게 됐습니다.
◇트럼프 탄핵 추진, 처음이 아니라며?
사실 트럼프 대통령 당선 직후부터 4년 임기를 채울 수 있을지를 두고 회의적인 목소리가 나왔어요. 취임하자마자 오바마 전 대통령의 핵심 정책이었던 ‘오바마케어’(건강보험개혁법) 폐지를 추진하는 행정명령을 발동시킨 데 이어 반(反)이민 행정명령 등을 잇따라 발표해 비판의 도마에 올랐죠. 취임 한 달도 안 된 2017년 2월엔 도박사들이 트럼프의 조기하차 가능성을 두고 배당을 벌였고, 당시 ‘트럼프 탄핵’ 웹사이트의 서명자 수는 90만명(14일 기준 147만명)에 육박했죠.
상황이 이렇다 보니 트럼프 대통령의 탄핵을 추진하는 움직임도 정치권에서 꾸준히 이어졌어요. 실제로 2016년 대선 당시 벌어진 러시아의 선거개입 혐의 관련 트럼프 선거캠프의 공모 및 트럼프 대통령의 사법방해 의혹 등으로 모두 세 차례 탄핵이 추진기도 했죠. 민주당 소속 앨 그린(텍사스) 하원의원이 탄핵소추안을 발의하긴 했으나 정작 당 지도부가 호응하지 않아 모두 부결되긴 했지만요.
다만 이번에는 하원 다수당을 차지하고 있는 민주당 지도부가 탄핵 추진을 결정한 만큼 하원에서의 탄핵안 통과는 어렵지 않을 전망이라고 하네요. 미국은 하원이 탄핵소추안을 통과시키면 상원이 탄핵심판의 절차를 밟습니다. 우리나라 헌법재판소 역할을 미국은 상원이 맡는 것이죠. 하원은 전체 435명 의원 가운데 과반수 찬성으로 탄핵소추를 할 수 있고, 상원은 3분의 2 이상(100명 중 67명 이상)의 찬성으로 이를 가결하게 됩니다.
◇그럼 이번엔 진짜 탄핵 되는 거야?
현지 분위기는 어떨까요. 13일엔 트럼프 대통령의 우크라이나 스캔들을 조사하는 하원 탄핵 조사의 첫 공개 청문회가 열리기도 했는데요, 탄핵을 이끌어낼 ‘결정적 한 방’은 나오지 않았다는 평가입니다. 청문회 첫날부터 트럼프 대통령에게 불리한 내용이 폭로되긴 했어요. 그가 우크라이나 측에 지원키로 했던 군사원조를 바이든 전 부통령 부자 의혹 수사에 연계시켰단 정황을 뒷받침하는 전ㆍ현직 관료들의 새로운 증언이 나온 겁니다.
상원을 장악한 공화당이 하원에서 탄핵안을 통과시켜도 상원에서 폐기하겠다고 밝히고 있어 실제 통과 가능성은 그리 높지 않습니다. 또 탄핵 관련 첫 공개청문회(1,380만명)의 시청자 수가 과거 관심을 끌었던 청문회 사례와 비교하면 낮거나 비슷한 수준으로 나타나기도 했죠.
다만 다른 증인들이 출석하는 공개청문회는 다음주까지 계속 열린다는 점이 변수입니다. 이번 청문회의 핵심으로 꼽히는 마리 요바노비치 전 우크라이나 대사의 증언이 15일 이뤄지는 만큼 관심이 커질 가능성도 남아 있습니다.
비록 탄핵은 피하더라도, 이 과정을 통해 여론의 주도권을 민주당이 쥐게 된다면 트럼프의 차기 대선가도는 불투명해질 수밖에 없죠. 과연 여론은 트럼프와 바이든 중 누구의 손을 들어줄까요.
☞여기서 잠깐
탄핵소추 당한 미국 대통령, 또 있다고요?
200여년 미국 역사를 통틀어 하원에서 탄핵소추안이 가결됐던 첫 번째 대통령은 17대 앤드루 존슨 대통령입니다. 국방부 장관 에드윈 M.스탠턴을 해임한 것을 빌미로 ‘공무원 재직에 관한 법률’ 위반 혐의를 받아 탄핵소추를 당했죠. 그러나 상원에서 이뤄진 탄핵심판에서 1표 차이로 부결돼 임기를 무사히 마칠 수 있었습니다.
두 번째는 42대 빌 클린턴 대통령이었습니다. 클린턴이 아칸소 주지사 시절이던 1998년 저지른 성추행 의혹과 국내에도 잘 알려진 백악관 인턴 모니카 르윈스키과의 성추문 등을 이유로 하원에서 그에 대한 탄핵소추를 가결했어요. 이때 르윈스키는 ‘얼룩진 푸른 드레스’를 핵심 증거물로 내놓기도 했죠. 그러나 상원은 심리 끝에 1999년 2월 탄핵안을 기각 처리했어요.
탄핵소추 직전까지 간 대통령도 있습니다. 워터게이트로 유명한 37대 대통령 리처드 닉슨은 1974년 집권 공화당까지 자신에게 등을 돌려 탄핵소추안 가결 가능성이 높아지자 표결 전 스스로 자리에서 물러나 제럴드 R. 포드에게 자리를 넘겨줬습니다.
전혼잎 기자 hoihoi@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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