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구수정 한베평화재단 상임이사

구수정 한베평화재단 상임이사는 전시장에 상주하며 종종 관람객에게 유품에 얽힌 이야기를 들려준다. 그는 “전시를 위해 한국으로 가져온 사진 한 장이 유가족들의 유일한 유품이다. 그 귀한 사료를 소홀히 대할 수 없다”고 말했다. 서재훈 기자 spring@hankookilbo.com

베트남전 당시 한국군에 의한 민간인학살 희생자 유품과 명부 일부가 국내에 처음 공개됐다. 21일까지 서울 성동구 성동문화재단 소월아트홀에서 열리는 아카이브 전시 ‘확인 중’에선 탄피, 신분증, 유가족 잡기장(시, 편지, 일기, 항의서 등 다양한 잡문을 담은 기록장) 등 베트남전 민간인 희생자들의 유품과 조사 자료 등을 볼 수 있다.

11일 전시장에서 만난 구수정(53) 한국베트남평화재단(이하 한베평화재단) 상임이사는 “베트남전에 출전한 한국군의 민간인 학살에 대한 문제제기는 1999년 시민운동 ‘미안해요 베트남’이 시발점이다. 그 20년을 기린 전시다”라고 소개했다. 이 전시는 한베평화재단과 베트남평화의료연대, 성동문화재단이 공동 기획했다. 이 전시의 프로그램으로 기획된 한국, 미국, 베트남 참전군인의 대화 ‘월남에서 돌아온 그들’은 20일 서울 왕십리 갤러리 허브에서 만나볼 수 있다.

희생자 유품 숫자는 많지 않지만, 하나하나마다 사연을 담고 있다. 먼저 베트남 신분증 8장. 앞면에 사진과 주소, 뒷면에 양손 집게손가락 지문이 찍힌 모습이 한국의 주민등록증과 닮아있는데, 이 신분증 주인들의 주소는 한국군이 주둔했던 마을이다. 구 상임이사는 “통상 학살 현장은 다 불태워지기 때문에 유품을 찾기 어렵다. 이 신분증은 학살 희생자들의 유일한 사진이다”라고 설명했다.

젊은 여성의 온전한 사진과 신분증, 작은 절구도 보인다. 135명이 한꺼번에 사살당한 하미마을 학살 때 살아남은 팜티호아(1968년, 당시 40세) 할머니의 것이다. 팜티호아는 이때 두 명의 자식과 두 발목을 모두 잃었다. 같은 해 한국군에게 강간을 당할 뻔했던 팜티호아는 담배보다 중독성이 강한 ‘쩌우까우(석회바른 구장나뭇잎과 빈랑나무 열매)’를 씹어 나온 검붉은 침을 온몸에 발랐다. 얼마 후 또 마을에 찾아온 한국군이 팜티호아의 검붉게 물든 피부를 보고 기겁을 하고 도망갔다. 팜티호아는 쩌우까우를 빻는 손가락 두 마디 크기의 절구를 평생 머리맡에 두었다. 구 상임이사는 “팜티호아 할머니는 쩌우까우 덕분에 한국군에게 욕보이지 않았다고 믿었다. 그래도 세상을 떠나기(2013년) 전에 마을사람들을 불러놓고 ‘미움도 증오도 다 내가 갖고 가겠다. 이제는 내가 용서하고 떠난다고 꼭 전해달라’고 말씀하고 숨을 거두셨다”고 덧붙였다.

구수정 상임이사가 베트남전에서 한국군 과거사 실상을 알게 된 건 1993년부터 유학 생활을 하고서도 수 년이 지난 1999년이었다. 당시 한국에서 이 문제는 거의 알려지지 않았다. 서재훈 기자 spring@hankookilbo.com

‘미안해요 베트남’ 운동 이후 20년만인 올해 9월 9일 정부는 처음으로 “국방부에서 보유한 한국군 전투 사료 등에서는 주월 한국군에 의한 민간인 학살 관련 내용이 확인되지 않는다”고 입장을 밝혔다. 이런 내용을 담은 베트남전 한국군 학살에 관한 베트남, 한국, 해외 시민단체의 조사 내용, 1968년 퐁니퐁넛 학살을 기록한 미군 본 상병의 사진이 전시된다. 1965년 베트남에 파병돼 을지무공훈장과 충무무공훈장을 받은 맹호부대 1진 중대장 박동원 대위의 활약상을 소개한 당시 ‘대한늬우스’와 그럼에도 한 번도 그 전쟁을 입에 올리지 않았던 아버지를 기억하는 박 대위 아들의 다큐멘터리도 상영된다.

호찌민에서 베트남 근현대사를 공부한 구 상임이사가 한국군 과거사를 알게 된 건 1997년 ‘한국군의 베트남 전쟁 개입’을 주제로 석사논문을 쓰면서다. 관련 자료를 찾으러 하노이까지 8번을 오가는 외국인 학생이 안쓰러웠는지, 외무부 말단 직원이 문건 사본 하나를 건넸다. 출처가 지워진 전쟁범죄 조사 보고서 ‘남베트남에서의 남조선 군대의 죄악’이었다. 끔찍한 학살 사례가 나열된 그 보고서를 베껴 적으면서도 “안 믿었고 논문에 쓸 생각도 안 했다”는 구 상임이사는 2년 후 일본의 피스보트를 타고 베트남전 한국군 학살 현장과 희생자, 희생자 가족을 찾은 국내 작가들이 유학생이던 자신을 찾아 “정말이냐”고 묻는 걸 보고 “실제로 있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처음 들었다. 보고서에 나온 마을을 찾아 희생자들의 사연을 듣고, 한국군 증오비와 한국군에 의해 희생된 베트남인을 추모하는 위령비를 찍어 1999년 그 내용을 한 주간지에 연재하기 시작했고, 시민운동 ‘미안해요 베트남’으로 이어졌다.

구 상임이사는 “반신반의하면서 서랍장에 넣어놨던 자료를 확인해야겠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사실은 굉장히 두려웠어요. 우리는 역사에서 가해의 경험이 없다고 배웠잖아요. 가해자의 입장에서 피해자를 어떻게 만날 것인가를 한 번도 생각해본 적이 없는 거예요. 놀랐던 건 (피해자들이) 절 너무 따뜻하게 맞아줬다는 거예요. 1999년 봄에 30~40개 마을을 찾아갔는데, 대부분 학살 이후 한국인이 처음 나타난 경우였어요. 적게는 수십 명, 많게는 수백 명이 와서 저한테 그때 일을 말을 하는데 울지도 못했어요. 너무 죄스럽고 미안한데, 따뜻하게 맞아줘서.”

외국인인 구수정 상임이사가 베트남에서 전쟁 관련 자료를 찾는 일은 쉽지 않았다. 사비 수천만원을 들여 자료를 모았던 그는 2007년부터 3년간 국가기록원 해외조사원으로 일하며 베트남 정부 자료를 추가로 확보할 수 있었다. 그 자료를 이번 전시회에서 일반에 선보인다. 서재훈 기자 spring@hankookilbo.com

‘미안해요 베트남’ 운동을 지원하고, 국가기록원 해외조사원(2007~10년)으로 베트남전 관련 자료를 수집했던 구 상임이사는 23년간의 베트남 생활을 접고 2016년 귀국해 이듬해 한베평화재단을 설립했다. 베트남 평화기행, 시민교육, 한국군 증오비가 서 있는 꽝응아이성 빈호아 마을의 학생 장학사업, 학술연구 등을 진행한다. 일본 내 양심적인 학자, 시민단체가 일본군 위안부와 강제징용 관련 자료를 수집하고 한국 시민단체와 연대하듯, 언젠가 베트남이 한국군 과거사 문제를 제기할 때를 대비해 국내에 베트남전 관련 시민단체가 있어야 한다는 생각에서다. “베트남은 1990년대까지 전쟁이 있었어요. 이제 막 고립에서 탈피한 베트남이 과거사 문제를 전면에 내세우긴 어렵거든요. 게다가 한국은 베트남에서 외국인 투자 1위인 나라고요. 베트남전 50년을 지나면서 피해자들이 입을 열기 시작했고 베트남 정부 입장도 조금씩 바뀌고 있습니다.”

구 상임이사의 다음 목표는 베트남전 과거사 기록관을 짓는 일이다. 구 이사는 “베트남전쟁 기록관을 만들어서 잊지 않고 전쟁의 상처까지 전시관에 기록해서 역사에 남기는 일을 해야 한다. 이번 아카이빙 기록전이 첫 시작이다”고 말했다. “우리 정부가 전향적으로 이 문제를 해결할 때 동아시아 평화를 열어가는 데 보다 주도적인 역할을 할 수 있을 거라 생각해요. 일본도, 중국도 아킬레스건이 있잖아요. 베트남전 과거사를 해결하는 게 먼 관점에서 국익에 도움이 됩니다.”

이윤주기자 missle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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