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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의 분쟁지역] 미얀마 반군 ‘아라칸군’의 해적 전술… 외국인 납치 첫 사례도 나와

입력
2019.11.15 19:00
1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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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수민족은 물론, 국회의원도 납치 대상… ‘포로 교환’ 제안했으나 정부군은 즉각 거부

미얀마의 불교계 소수민족인 라카인족 반군인 ‘아라칸군(AA)’의 신병들이 카친주 라이자 지역에 있는 캠프에서 밧줄 타기 훈련을 하고 있다. AA는 전략적 차원에서 민간인 납치 전술을 이따금씩 활용한 것으로 알려졌는데, 최근 외국 국적의 민간인 다수가 탑승한 보트를 납치하는 사건마저 발생했다. AA가 이른바 ‘해적화’하고 있는 셈이다. 미국의소리(VOA) 방송 홈페이지 캡처
미얀마의 불교계 소수민족인 라카인족 반군인 ‘아라칸군(AA)’의 신병들이 카친주 라이자 지역에 있는 캠프에서 밧줄 타기 훈련을 하고 있다. AA는 전략적 차원에서 민간인 납치 전술을 이따금씩 활용한 것으로 알려졌는데, 최근 외국 국적의 민간인 다수가 탑승한 보트를 납치하는 사건마저 발생했다. AA가 이른바 ‘해적화’하고 있는 셈이다. 미국의소리(VOA) 방송 홈페이지 캡처

지난 3일 오전 10시쯤(현지시간) 미얀마 서부 라카인주의 주류 종족인 라카인족 반군, 곧 ‘아라칸 군(Arakan ArmyㆍAA)’은 스피드 보트 두 대를 납치했다. 이들 보트는 친주(Chin state)의 팔레트와 타운십에서 라카인주의 촉토 타운쉽으로 이동하던 중이었다. 보트에 타고 있던 민간인 10명은 모두 AA 무장대원 지시에 따라 육지에 머무르다 산으로 이동했는데, 이 과정에서 한 60세 인도 남성이 숨졌다. AA측은 “(숨진 이는) 평소 심장병을 앓고 있었다고 한다”며 “우리도 그를 살리고자 최선을 다했으나, (산을 오르다) 지쳐서 사망한 것”이라고 해명했다. 납치된 10명 중에는 또 다른 인도인 노동자 4명도 포함돼 있었다. 이번 일은 미얀마 내전 지역에서 처음으로 발생한 외국인 납치 사건인 동시에, 납치된 외국인이 숨진 첫 사례로도 기록됐다.

납치된 배가 지나던 물길은 인도 동북부와 미얀마 서북부를 잇는 이른바 ‘칼라단 멀티-모달 트랜짓 교통로 프로젝트(이하 칼라단 프로젝트)’가 진행 중인 구간이었다. 인도 서벵골주의 할디야 항구에서 시작, 미얀마 라카인주 시트웨항을 지나서 촉토까지 해상로로 연결하는 사업이다. 그리고 다시 촉토에서 친주 팔레트와를 거쳐 인도 동북부 미조람까지 북쪽으로 올라가는 육로를 건설, 육지와 바다를 복합적으로 이용할 수 있는 양국 간 무역로 건설을 목적으로 하고 있다.

AA는 보트 납치 이튿날인 지난 4일 오전 5시40분쯤, 생존한 인도인 네 명과 보트 운전사 두 명, 통역 두 명 등 8명을 석방했다. 그러나 친족 출신인 집권 민주주의민족동맹(NLD) 상원의원 우 하위 틴은 15일 현재까지도 구금 중이다. 12일 미얀마타임스 보도에 따르면, 카잉 투카 AA 대변인은 “우 하위 틴 의원은 군의 스파이였다”며 전날 친족시민사회단체 43곳의 ‘우 하위 틴 의원 석방’ 요구를 거부했다.

이 지역 옵서버들은 ‘팔레트와 타운십-촉토 타운십 구간의 물길을 AA가 통제하기 시작하면 칼라단 프로젝트 자체가 크게 방해받을 것’이라고 본다. 로힝야 정치평론가 시디크(가명)는 기자와의 메신저 인터뷰에서 “AA가 라카인주 촉퓨에서 중국 윈난성을 잇는 ‘중국-미얀마 가스 파이프 라인 건설’ 프로젝트는 건드리지 않을 테지만, (그 반대 방향에서 진행 중인) 인도의 칼라단 프로젝트는 방해할 가능성이 크다”고 전망했다. 이와 관련, AA는 지난 7월 18일 성명에서 “(AA의 정치국인) 아라칸연합동맹(ULA)은 여러 정부와 기관이 정당하고 투명하며 상호 이익을 안겨 주는 국내외 프로젝트, 예컨대 중국의 심해 항구 건설과 연계된 사업이나 촉퓨의 특별 경제구역 프로젝트 등에 대해선 건설적 사업이라고 생각한다”고 밝힌 바 있다. 중국의 사업을 지목해 지지를 표명한 것이다. 성명은 “손에 손을 잡고 (협력할) 준비가 돼 있다”고도 덧붙였다.

지난 2016년 7월 미얀마 카친주에서 열린 소수민족 반군들 간 평화 회담에 라카인족 반군인 아라칸군(AA)의 사령관 트완 므랏 나잉(오른쪽 두 번째) 소장이 병사들의 호위를 받으며 참석하고 있다. 미얀마 매체 ‘이라와디’ 홈페이지 캡처
지난 2016년 7월 미얀마 카친주에서 열린 소수민족 반군들 간 평화 회담에 라카인족 반군인 아라칸군(AA)의 사령관 트완 므랏 나잉(오른쪽 두 번째) 소장이 병사들의 호위를 받으며 참석하고 있다. 미얀마 매체 ‘이라와디’ 홈페이지 캡처

AA가 보트 납치에 연루된 건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지난달 26일에는 라카인주 시트웨에서 북부 부티동 타운십으로 향하던 ‘스웬나디 코스탈 보트’ 두 척이 중간 지점인 라티동 타운십의 예이 뮈엣 마을에서 AA 무장대원에 의해 납치됐다. 미얀마군에 따르면 당시 배에 타고 있던 100명가량의 승객 가운데 군인과 경찰도 각각 14명, 29명이나 포함됐다. 나머지는 군경의 가족이거나, 이들과는 아무 연관도 없는 순수 민간인들이었다. 이 납치 사건은 ‘참극’으로 귀결됐다. 미얀마군은 피랍된 이들을 ‘구출한다’는 명목으로 즉각 헬리콥터 세 대를 띄워 폭탄을 투하했고, 이로 인해 AA 병사뿐만 아니라 일부 인질들도 사망한 것으로 알려졌다. 군 당국은 군경 10명을 포함, 총 15명을 구해 냈다고 주장했다. 이 아수라장에서 벗어난 이들 중 일부는 이튿날, 부티동 선착장에서 1차로 석방됐다. 미얀마 언론 ‘이라와디’ 보도에 따르면 납치 열흘 후인 지난 5일, AA는 25명을 추가 석방하면서 대변인을 통해 이렇게 밝혔다. “1인당 1500짜트(약 1,100원) 차비까지 쥐여 주며 보냈다. 우리가 인질로 잡고 있는 민간인은 이제 더 이상 없다.”

그러나 “AA가 납치한 민간인을 석방해야 한다”는 목소리는 여전히 존재한다. 라카인주와 인접한 미얀마 북서부 친주의 인권단체 ‘친족인권기구(CHRO)’의 살라이 리안 활동가는 기자에게 보낸 이메일 답변에서 “지난해 팔레트와 타운십과 라카인주에서 실종된 친족 민간인만 해도 최소 16명”이라고 했다. 그는 “AA를 포함한 이 일대 무장단체들이 구금하고 있는 민간인들을 모두 조속히 석방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살라이는 또, 지난 2월 2일 친주 팔레트와 타운십의 킨타린 마을 주민 54명이 AA에 납치됐던 사건을 상기하며 “(이때 잡혀간) 60세 여성 ‘도 난 캥’은 구금 중 사망했다”고 전했다. 하지만 납치된 이들 대부분이 여성과 소녀들이었던 이 사건에 대해 AA는 다르게 해석한다. 즉, “교전을 앞두고 주민들을 방글라데시 국경 근처로 이주시켰다”는 게 AA의 해명이다. 그러나 이런 해석을 따르더라도 ‘강제 이주’를 당한 54명 중 2명은 납치 초기에 탈출했고, 방글라데시 국경으로 끌려간 다른 52명 가운데 12명은 다시 6월 26일 AA 감시망에서 탈출을 감행해야 했다. 살라이 리안은 “AA가 이 지역에서 본격적으로 활동한 2015년 이래 적어도 8명의 친족 민간인이 숨졌다. 이 중 2명은 AA의 총살로, 나머지는 지뢰를 밟아 목숨을 잃었다”고 했다.

무장단체들이 정적이나 민간인을 납치할 땐 통상 서너 개의 전술적 배경이 있다. 하나는 인질의 몸값을 요구해 재정을 충당하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정치적 메시지를 전하거나 ‘포로 교환’ 같은 협상을 요구하는 경우다. 아울러 굳이 돈을 요구하지도, 정치적 메시지를 전하지 않더라도 조직이 필요한 정보를 빼내기 위한 정보전 및 적진을 향한 심리전의 일환으로 행하는 납치도 있다.

지난해 11월 방글라데시 테크나프 지역에 있는 우치프랑 난민 캠프에서 미얀마 소수민족인 로힝야족 난민 어린이들이 당시 미얀마와 방글라데시가 합의한 로힝야 난민 송환 프로그램에 항의하는 시위를 하고 있다. 로힝야족도 아라칸군에 의한 납치 피해를 겪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로이터 연합뉴스 자료사진
지난해 11월 방글라데시 테크나프 지역에 있는 우치프랑 난민 캠프에서 미얀마 소수민족인 로힝야족 난민 어린이들이 당시 미얀마와 방글라데시가 합의한 로힝야 난민 송환 프로그램에 항의하는 시위를 하고 있다. 로힝야족도 아라칸군에 의한 납치 피해를 겪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로이터 연합뉴스 자료사진

AA는 이 가운데 두 번째와 세 번째의 전술을 복합적으로 활용하고 있는 듯하다. 지난 11일 AA는 “미얀마 정부가 AA 연계 의혹으로 체포된 인물들을 풀어주면, 자신들이 구금 중인 ‘군과 연계된 포로들’ 16명을 석방할 수 있다”면서 일종의 ‘포로 교환’을 제안했다. 미얀마군은 즉각 거부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앞서 지난 7월 14일 AA가 구금 중인 포로의 영상을 공개하며 벌인 심리전 역시 단적인 사례다. 영상에 등장한 ‘진 아웅’이라는 인물은 라카인주 ‘토지대장 기록부’에서 일하는 공무원으로 알려졌다. 진 아웅은 1분 20초짜리 영상에서 “비록 내가 AA에 포로로 잡혀 있지만 AA는 나를 고문하지 않고 내게 강제 노동을 시키지도 않았다”고 말했다. 이날 자유아시아방송은 “만일 정부군이 포로를 잡았으면 벌써 고문을 했을 것” “우리는 (정부군과) 다르다” 등과 같은 AA 대변인의 언급을 인용했다.

그러나 AA의 납치 전술은 2015년부터 일찌감치 시작됐다. AA의 서부전선 첫 거점이 된 친주의 팔레트와 타운십은 미얀마 정부군과 AA 간 내전으로 가장 고통받는 지역 중 하나가 됐다. CHRO의 살라이 리안은 “정부군과 AA 모두 주민들을 강제 노동으로 몰고 있다. 약탈과 대량 납치도 계속되고 있다”면서 고립된 지역 ‘친주’에서 벌어지는 전시 폭력과 인권 침해 상황에 대한 국제사회의 관심을 호소했다.

그런데 친족의 경우에도 못 미칠 만큼, 전혀 주목을 받지 못하는 AA의 납치 사례가 있다. 바로 로힝야 납치 및 실종이다. 방글라데시 동남부 치타공에 거주하는 로힝야 활동가 코코린에 따르면, AA가 납치하다시피 데려간 이후 돌아오지 못한 로힝야 사례는 최대 30건에 이른다. 그는 “납치 또는 살해된 이들의 명단을 모으는 중”이라며 “시신으로 발견된 사람도 일부 있지만, 많은 이들이 실종된 상태”라고 전했다. “AA는 로힝야를 향해 전쟁 범죄를 저지르고 있다. 로힝야에 관한 한, AA와 미얀마는 동전의 양면이다.” 코코린의 일갈이다.

이유경 국제분쟁전문 저널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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