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마 시험장 주변 떠나지 못하고
종교시설에서 시험 시간표 맞춰 기도 올리고
2020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수능)이 실시된 14일 시험장 밖 학부모들은 ‘또 다른 수능’을 치렀다. 수험생 자녀를 들여보낸 뒤 주변 카페에서 기다리거나 함께 시험을 보는 마음으로 사찰이나 성당 등을 찾아 기도를 올리는 학부모들이 적지 않았다.
이날 서울 종로구 견지동 조계사 대웅전에서 진행된 2020학년도 수능 수험생 기도회는 수백 명의 학부모들로 가득 차 발 디딜 자리가 없을 정도였다. 미처 대웅전에 들어가지 못한 이들을 위해 마련된 간이천막도 만석이었다. 오전엔 체감온도가 영하 10도 가까이 내려갔지만 천막 바깥에서도 학부모들은 기도를 했다. 조계사는 학부모들을 위해 따듯한 차와 국화빵을 내왔다.
학부모들은 오전 8시 40분 시작된 1교시 국어영역부터 오후 5시 40분 5교시 제2외국어/한문영역이 끝날 때까지 수능 시간표와 똑같은 일정으로 기도를 올렸다. 촛불공양 때는 촛불을 꺼뜨리지 않기 위해 조심스레 들어 옮겼다.
2교시 수학영역 뒤 쉬는 시간에 대웅전 바깥으로 나온 서혜신(48)씨는 “나도 수능을 치르는 아들과 비슷한 마음”이라며 “수능을 잘 본 아들의 손을 잡고 꼭 이곳에 다시 오고 싶다”고 말했다.
대웅전 주변에 자리를 잡지 못한 학부모들은 맞은편의 탑을 빙글빙글 돌며 기도를 했다. 탑 둘레에는 ‘대입 합격 발원’ ‘사랑한다! 응원한다!’ 등 간절한 글귀를 적은 메모들이 빼곡히 붙었다.
정승혜(74)씨는 “재수를 한 손자가 올해는 원하는 성적을 받아 꼭 원하는 대학에 갔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한 남성은 “우리 아들은 국어에 자신이 있는데 기사를 보니 올해 국어가 작년보다 쉬웠다고 한다”며 아쉬운 표정을 지었다.
오전 10시부터 수능 미사를 진행한 서울 중구 명동성당에도 많은 학부모들이 모였다. 대부분 고요한 적막 속에서 차분히 기도를 했다. 끊임없이 눈물을 훔치며 묵상하는 학부모들도 눈에 띄었다. 일부는 기도 중에도 틈틈이 휴대폰을 꺼내 기사를 찾아보며 수능 난이도를 파악했다.
전북 전주시에서 온 김신혜(53)씨는 “서울에서 수능을 보는 딸 아이 옆에 있어주고 싶어 올라왔다”며 “낯설긴 하지만 우리나라 성당의 대명사인 이곳에서 딸을 위해 기도할 수 있어 좋다”고 말했다. 수능을 마친 딸에게 해주고 싶은 말을 묻자 김씨는 “꼭 안아주겠다”고 했다.
김영훈 기자 huni@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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