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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정부가 걸어 잠근 문, 그 너머엔 어떤 비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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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정부가 걸어 잠근 문, 그 너머엔 어떤 비밀이

입력
2019.11.15 04:40
2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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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보 머그더의 소설 '도어'는 헬렌 미렌(왼쪽) 주연의 동명의 영화로도 만들어졌다.
서보 머그더의 소설 '도어'는 헬렌 미렌(왼쪽) 주연의 동명의 영화로도 만들어졌다.

알폰소 쿠아론 감독의 영화 ‘로마’(2018)는 1970년대 멕시코 백인 중산층 가정을 중심으로, 이들을 돌보는 젊은 가정부 클레오의 삶을 그린다. 빨래를 널고, 개똥을 치우고, 가족들을 깨우는 클레오는 단순한 입주 가사도우미가 아닌 가족들의 기쁨과 슬픔을 가장 가까이에서 들여다보고 이를 기꺼이 함께 나누는 존재다. 아버지가 외도로 집을 떠나고 클레오의 아이가 사산되는 상처를 함께 겪으며, 클레오와 남겨진 가족들은 서로를 보듬는 진정한 의미의 가족이 된다. 쿠아론 감독은 “클레오의 실제 모델인 가정부 리보 로드리게즈는 어릴 적 내게 가장 큰 사랑을 가르쳐준 사람이기도 하다”고 전했다.

서보 머그더의 장편소설 ‘도어’ 역시, 헝가리 부다페스트를 배경으로 저명한 작가인 ‘나’와 20년간 ‘나’의 집안일을 돌봐준 가정부 에메렌츠와의 오랜 우정을 그린다. 그러나 에메렌츠를 단순히 ‘집안일을 돌봐준 가정부’라고 설명하는 것은 어딘가 적절하지 않다. 에메렌츠는 “노동에서 기쁨을 느꼈고, 노동을 즐겼으며, 일이 없는 시간에는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르는” 사람이다. 그러나 동시에 “업무 시간 이후에는 성가시게 하지 말라고, 이건 급료에 포함된 것이 아니라고” 주인을 향해 고함지를 수 있는 사람이기도 하다.

자신만의 방식대로 집안일을 해나가는 에메렌츠는 집주인의 입장에서 보기에는 여간 까다로운 가정부가 아닐 수 없지만, 그녀는 특유의 에너지로 이들 부부의 삶에 척척 걸어 들어와, 가장 믿음직스러우면서도 든든한 존재가 된다. 박사인 남편과 ‘나’는 지성의 측면에서 보자면 누구에게도 뒤질 것 없는 교양인이지만, 자신만의 방식대로 집안의 규율을 만들어내는 에메렌츠에게는 번번이 진다. 두 번의 세계대전을 겪어내고 부모님을 잃은 뒤 어려서부터 남의 집 하녀 일을 해야 했던 에메렌츠는 강인한 생명력으로 자신과 주변 사람들을 돌본다.

서보 머그더. 프시케의 숲 제공
서보 머그더. 프시케의 숲 제공

‘온화하고 규정된 틀에 맞는’ 종류는 아니지만, 자신만의 무뚝뚝함으로 주변 사람을 사랑하는 에메렌츠와 달리, 정작 주변인들은 받은 만큼의 사랑을 에메렌츠에게 돌려주지 않는다. 에메렌츠의 유일한 가족인 조카는 에메렌츠의 금전적 지원에 감사하면서도, 그녀의 통장을 상속받을 사람은 자신뿐이라는 사실을 늘 상기시킨다. 에메렌츠를 충분히 존중한다고 생각하는 부부조차, 종일 집안일을 하느라 TV볼 시간이 전혀 없는 에메렌츠에게 TV라는 무용한 선물을 한 뒤에 뿌듯함을 느낀다. 그런 에메렌츠의 곁을 지키는 것은 떠돌이 강아지와 고양이들뿐이다.

늘 정갈한 머릿수건을 하고 묵묵히 자신의 자리를 지킬 것 같았던 에메렌츠가, 어느 날 갑자기 집의 문을 걸어 잠그고 스스로를 가두면서 이야기는 새로운 국면으로 접어든다. 20년 간 부부의 집을 건사하고, 우편물과 전화를 담당했으며, 전신환을 수령했던 에메렌츠. 건강식을 만들어 아픈 사람들을 돌봤고, 떠돌이 고양이들을 거뒀던 에메렌츠. 그 뒤에는 병환과 노쇠함, 고독과 절망, 어찌할 수 없는 피폐함이 자리하고 있었다는 것을, 에메렌츠가 스스로 걸어 잠근 문을 강제로 열어젖힌 뒤에야 사람들은 깨닫는다. 에메렌츠를 거의 잃을 뻔한 직후에, ‘나’는 알게 된다. “글을 쓸 수 없게끔 나를 붙들어 매고 있던 모든 일을 내 주변에서 수행하고, 보이는 모든 결과 뒤에 서 있는 보이지 않는 인물, 그녀 없이는 나의 필생의 작품도 없었다”는 것을.

서보 머그더의 묘지. 그의 가정부가 서보 머그더의 곁에 함께 묻혔다는 이야기도 전해진다. 프시케의 숲 제공
서보 머그더의 묘지. 그의 가정부가 서보 머그더의 곁에 함께 묻혔다는 이야기도 전해진다. 프시케의 숲 제공

서보 머그더는 소설과 시, 아동문학, 드라마, 여행기, 에세이 등 전방위적으로 탁월한 업적을 남긴 헝가리의 대표 작가다. 그가 전업작가로 평생 왕성하게 활동할 수 있었던 데에는 머그더 부부와 오랜 세월 가까운 사이로 지내며 집안일을 맡았던 쇠케 율리어라는 실존인물이 있었고, 그가 이 소설의 모티브가 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지금도 부다페스트에는 작품의 무대가 된 거리와 작가가 살던 집, 쇠케 율리어가 살던 공동주택이 남아있다. 책은 결국 한 생을 묵묵히 타인을 돌봐온 이들에게 작가가 바치는 헌사이자, 그들의 돌봄으로 성취할 수 있었던 위대한 작품들에 대한 작가의 고백인 셈이다.


 도어 

 서보 머그더 지음ㆍ김보국 옮김 

 프시케의숲 발행ㆍ372쪽ㆍ1만5,000원 

한소범 기자 beom@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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