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이 그리스와 영국 사이에 200년간 이어진 ‘문화재 반환 전쟁’에 뛰어들었다. 그리스를 국빈 방문 중인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이 12일(현지시간) 과거 영국이 약탈한 아테네 파르테논 신전의 대리석 조각들을 그리스에 반환하라며 공개적으로 그리스의 편을 들고 나선 것이다. ‘일대일로’(一帶一路) 프로젝트의 핵심 투자처인 그리스와 부쩍 경제적 밀착을 높여온 중국이 문화ㆍ역사 동맹을 통해 양국 관계를 한층 더 공고히 하려는 것으로 보인다.
미국 뉴욕타임스(NYT)는 시진핑 주석 부부가 그리스 방문 이틀째인 이날 프로코피스 파블로풀로스 그리스 대통령 부부의 안내를 받아 아테네 아크로폴리스 박물관을 구경했다고 전했다. 이 자리에서 그리스 대통령이 시 주석에게 “파르테논 조각을 되찾기 위한 노력에 대한 지지”를 요청하자, 시 주석은 “대통령 말씀에 전적으로 동의한다”고 답했다. 이들이 언급한 조각은 일명 ‘엘긴 마블스’로 불리는데, 당시 영국 외교관이던 토머스 엘긴이 1802년부터 10년간 파르테논 신전에서 떼서 영국으로 반출한 것이기 때문이다. 이들 상당수가 현재 영국 런던의 대영박물관에 소장돼있다.
시 주석은 이어 “중국도 해외로 반출된 문화재가 많다”면서 “(그리스의 노력에 대해) 지지뿐 아니라 감사의 뜻을 전하고 싶다”고 덧붙였다. 제국주의 시기 서구 열강들에게 문화재를 약탈당했던 피해국으로서 ‘동병상련’의 처지를 강조한 셈이다. NYT는 “시 주석은 5,000년 문명사를 지닌 ‘자랑스러운 중국’의 유산 수호자를 자임하고 있으며, 중국 내에서 민족주의 감정이 커짐에 따라 최근 몇 년간 중국 정부도 문화재 송환 요구를 강화하고 있다”고 전했다.
다만 NYT는 “(시 주석의 발언은) 양국 사이에 두터워지고 있는 우호 관계의 한 표시일 뿐”이라며 양국이 이미 경제적으로 상당한 교류ㆍ협력을 쌓아왔다는 점을 강조했다. 시 주석의 이번 국빈 방문 기간 중에도 중국과 그리스는 아테네 인근의 피레우스항 투자를 위한 양해각서 체결을 비롯해 에너지·수송·금융 등 총 16개 분야의 경제 협력에 합의했다. 이 중에도 6억6,000만유로(약8,500억원) 규모의 피레우스항 투자는 그 핵심으로 꼽힌다.
중국은 그리스를 교두보 삼아 유럽 전체로 영향력을 확대하려는 구상 아래, 유럽ㆍ아시아ㆍ아프리카 대륙을 가로지르는 피레우스항을 일대일로 ‘21세기 해양 실크로드’의 핵심 연결 고리로 삼기 위해 갖은 공을 들여왔다. 이번 추가 투자로 중국 국영해운기업인 중국원양해운(COSCO)의 피레우스항 지분은 51%에서 67%로 확대됐다. 이와 관련, 소아스(SOAS) 런던대의 스티브 창 중국연구소장은 NYT 인터뷰에서 “그리스는 중국 투자에 가장 개방적인 ‘구유럽’ 국가 중 하나”라면서 “중국몽을 내세우는 시진핑의 정책에 불편함을 내비치는 국가가 많아지는 상황에서, 그리스는 시진핑이 중국 국민들에게 ‘유럽으로부터 사랑받는 모습’을 보여주기에 좋은 곳으로 보인다”고 진단했다.
최나실 기자 verit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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