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기본법 제정 1인 시위 나선 김선아씨
수능 한파가 몰아친 14일 오전 김선아씨가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 앞에서 청년기본법 제정을 촉구하는 1인 시위를 벌이고 있다. 배성재 기자

8년 전 이맘때쯤 청운의 꿈을 품은 채 수능시험을 본 청년이 있었다. 이후 대학을 졸업한 그는 수능 한파가 닥친 14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 앞에서 1인 시위에 나섰다. 청년문제 해결의 출발점이 될 청년기본법을 제정해 달라는 것이다.

올해 2월 한국외국어대 말레이인도네시어학과(경제학과 복수전공)를 수석으로 졸업한 김선아(26ㆍ여)씨 이야기다. 정의당 당원인 김씨는 “현 정치판은 청년을 이미지로 소모할 뿐”이라며 “청년은 정책 대상이면서도 동시에 정책의 주체”라고 강조했다.

청년기본법은 청년정책을 포괄하는 컨트롤타워 신설과 청년정책의 체감도를 높이는 게 주요 골자다. 2016년 5월 신보라 의원이 발의했다. 청년기본법 제정 1인 시위에서 더 나아가 김씨는 내년 총선에 나선다. 정치에 자신의 모든 걸 걸었기 때문이다.

김씨의 삶은 20대 청년층이 느끼는 극한의 고통과 해소되지 않는 불만의 원형을 고스란히 담고 있다. 경남 창원 출신인 김씨는 2012년 대학교에 입학할 때까지 평탄한 삶을 살았다. 그러던 중 2014년 9월 아버지의 사업 실패로 소득 최상위권에서 바닥권으로 추락했다. 2016년 초에는 어려운 집안사정으로 4년간 사귀던 남자친구와도 헤어졌다. 2017년, 2018년 졸업 유예를 하며 취업을 위해 불철주야 노력했다. 더 이상 졸업 유예가 가능하지 않아 어쩔 수 없이 교정을 떠나야 했다.

불행한 일들이 잇달아 닥치면서 2016년 초부터 4년째 우울증을 겪고 있다. 지난해 초부터 1년간 히키코모리(집 안에 틀어박혀 지내는 사람) 생활도 했다. 김씨는 여동생과 보증금 1,000만원에 월세 55만원인 33㎡ 남짓한 오피스텔에서 살고 있다.

당선 가능성이 높지 않은데도 총선에 나서는 이유를 “지금이 아니면 나중에 더 힘들 거라고 생각한다”며 “제 나이에 총선에 도전하는 것만으로도 더 많은 청년, 더 많은 여성이 도전하는 계기가 될 것”이라며 의미를 부여했다.

김씨는 지난 2일 서울 강서구 국제청소년유스호스텔에서 열린 정의당 2030 청년캠프에서 “정치를 하려면 정치에 모든 것을 걸어야 한다”는 심상정 대표의 강연 후 심 대표를 찾아가 자신은 “모든 걸 걸 수 있다”고 말했고 심 대표는 싱긋 웃었다고 한다.

어디서 그런 자신감과 확신이 나왔을까. “이미 두세 번의 자살 시도를 했고, 그때 저는 이미 죽었다고 생각한다”고 담담한 어투로 말하던 김씨는 “결혼ㆍ연애 안 해도 상관없고 청년층 이미지로 소비돼도 상관없다”며 “사회가 좋은 방향으로 바뀔 수 있다면 휴일도 없이 일을 할 수 있다”며 활짝 웃었다.

20대 사망 원인 1위가 자살인 데서 단적으로 드러나듯이 청년층의 좌절감은 매우 심각하다. 김씨는 “아무리 노력해도 끝이 없는 터널을 걷는 것 같은 기분인데 사회에서는 노력이 부족했다 말한다”며 “사회구조의 문제를 개인의 책임으로 돌려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기성 정치인에 대한 청년층의 반감은 아주 크다”며 청년층 민심도 전한다. “주변 친구들을 보면, 정치에 꾸준히 관심을 가지는 친구들도 많지만, ‘그놈이 그놈’이라며 정치혐오를 넘어서 무관심한 친구들도 꽤 많다”고 털어놨다.

청년기본법이 통과되면 많은 변화가 있을 것으로 예상했다. 김씨는 “우선 정치권이 청년을 이용하고 소모하는 것이 아니라 진정으로 위한다는 느낌을 받을 수 있을 것 같다”는 해석을 내놓았다. 특히 그는 “현재 정치판은 청년을 이미지로 소모하는 느낌이 강하고, 청년을 정책의 대상으로만 보고 있는데, 청년은 정책의 대상뿐만 아니라 정책의 주체가 될 수도 있다는 사실이 중요하다”고 역설했다. 또한 청년기본법 제정으로 국가와 지방자치단체에 청년에 대한 책무를 정하는 것에도 큰 의미를 부여했다.

정치에 모든 걸 걸겠다는 그의 꿈이 실현되길 바라는 마음과 기성세대로서의 미안함을 담아 따뜻한 커피캔 하나를 김씨에게 건네고 발걸음을 돌렸다.

배성재 기자 passio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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