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보 모랄레스 전 대통령의 하야와 멕시코 망명에도 볼리비아의 혼란은 잦아들지 않는 모습이다. 야당 소속 헤아니네 아녜스 상원 부의장이 임시 대통령을 자처, 국정 혼란 수습에 나섰지만 모랄레스 전 대통령 지지세력은 아녜스 임시 대통령이야말로 불법으로 권력을 강탈한 인종주의자라며 극렬하게 반발하고 있다.
영국 가디언 등에 따르면 13일(현지시간) 볼리비아의 행정수도 라파스에는 전날 멕시코로 망명한 모랄레스 전 대통령의 지지자 수천 명이 결집했다. 이들은 아이마라족 원주민을 상징하는 깃발을 흔들며 볼리비아의 첫 원주민 대통령이었던 모랄레스 전 대통령의 귀환을 촉구했다. 진압 경찰이 최루가스를 쏘며 해산에 나서자 시위대는 돌과 나무판자를 던져 맞섰고, 일부는 건설현장에서 가져온 금속재를 무기로 쓰면서 폭력적인 충돌로 번졌다. 인접한 엘알토 등에서도 비슷한 시위가 동시다발적으로 진행됐다고 가디언은 전했다.
전날 모랄레스 전 대통령의 망명 직후 아녜스 상원 부의장은 의회에서 “즉시 대통령에 취임하겠다”고 선언했다. 볼리비아 헌법상 대통령 유고시 부통령, 상원의장, 하원의장 순으로 대통령직을 승계할 수 있는데, 이들이 모두 사임했기 때문에 자신이 그다음 순번이라는 것이다. 헌법재판소와 미국, 브라질 등의 지지를 받은 아녜스 임시 대통령은 이날 “역사상 최단기간에 대통령 선거를 치르겠다”며 “전체주의 정부로부터 평화롭고 민주적인 이행을 요구한다”고 밝혔다.
하지만 별다른 동의절차 없이 갑작스럽게 권력을 잡은 아녜스 임시 대통령에 대한 반발 기류가 만만치 않다. 특히 의회의 3분의 2를 차지하고 있는 모랄레스 전 대통령의 소속당 사회주의운동(MAS)은 임시 대통령의 취임과 모랄레스 대통령의 사퇴를 전면 무효화하겠다며 총력투쟁을 예고했다. 원주민들의 새해 축제를 “사악한 풍습”이라고 깎아내리는 등 과거 그가 사회관계망서비스(SNS)상에 남긴 글도 다시 회자되고 있다고 가디언은 설명했다.
이런 가운데 모랄레스 전 대통령은 복귀 가능성을 언급하며 여론전에 힘쓰고 있다. 그는 이날 멕시코시티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만약 국민들이 요구한다면 우리는 돌아갈 준비가 돼 있다”고 말했다. 또 지난 볼리비아 대선에 부정행위가 있었다는 미주기구(OAS) 감사결과에 대해 그는 “미국에 봉사하는 OAS가 정치적 결정을 내린 것”이라고 비난하면서 자신이 쿠데타로 축출됐다는 주장을 되풀이했다.
강유빈 기자 yubi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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