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걸리가 뭔 술이여. 밥이제. 그랑게 시방 나는 고시에 밥을 묵는 거시여.” 그랬다. 막걸리가 밥인 막노동 일꾼, 그런 사람들이 쉬는 대폿집이 시장에는 있어야 한다. ©게티이미지뱅크

몇 년 전 여수에 갔다. 시장 뒷골목에는 여전히 허름한 술집이 있다. 대폿집이라 부르는. 이런 술집들은 대개 낮에 연다. 술이 ‘노동 음료’인 까닭이다. 일하다 말고 늙수그레한 사내들이 목수건이라도 걸친 채 들러서 왕대포를 마신다. 농주부터 시작해서 아마 근현대의 오랜 기간 왕대포는 하나의 음주 전형이 됐다. 안주라고는 고추장에 멸치, 그날 주인이 먹으려던 반찬이나 김치쪽, 더러 어떤 아저씨들은 소금만 쿡 찍어서 입가심하고 다시 일하러 가곤 했다. 요즘 이런 대폿집은 거개 망해 간다. 할매들이 그나마 건강이 버티는 동안 열고 있지만 머지않아 씨가 마를 것이다. 안줏값도 대부분 따로 없고, 변변한 안주도 드물어서 ‘매상’ 올릴 만한 여지가 없다. 콧구멍만 한 가게라 앉을 자리도 별로 없어 서서 마신다.

주인 할매들은 평생을 시장바닥에서 밥 벌어먹고 산 이들이다. 대폿집으로 평생을 보낸 건 아니고, 바닷가 여인들이 그렇듯, 어구 손질이며 어부가 잡아온 생선 떼기(그물에 붙은 생선을 떼는 일은 대개 여자들 일이다), 생선 말리기, 어물 시장 골목에서 이런저런 일을 해본 경험들이 많다. 반찬이며 안주야 그네들 평생의 업이라 무얼 해도 뚝딱 잘한다. 바닷가라도 잘 나가는 안주는 뜻밖에도 육류다. 돼지고기 넣은 김치찌개 같은 건 돈 받고 파는데, 사내들이 오후 늦게 술추렴할 때 시키는 안주다. 삼겹살을 구워 달라면 푸줏간에서 끊어다 팔기도 한다. 주점은 막노동하는 사내들의 온갖 노동의 뒷얘기가 비늘 튀듯 꿈틀거리는 곳이다. 이런 집 어물 안주는 싱싱하긴 하되, 별로 볼품없는 재료들이다. 상품성 떨어지는 건 역시 왕대폿집이나 백반집 안주로 쓰이는 게 순서다. 메뉴판도 없으니, 그날 먹을 게 뭐 있는지 물어 보거나, 아예 장에 가서 손님이 사들고 와도 된다. 요리하는 값을 드리면 될 일이다. 반짝이는 작은 삼치가 한 마리 있길래 사들고 와서 구워달라 했다. 시큼한 막걸리에 소금구이한 삼치는 썩 어울린다. 옆자리 사내가 낮게 중얼거렸다.

“고시는 삼치로 안 치제.” 고시는 자그마한, 삼치 새끼를 이르는 말이다. 그런데 그도 고시를 구워서 이른 막걸리를 마시고 있다. 나도 살짝 심통이 나서 받았다. “선생도 고시구만요.”

그가 아예 내쪽으로 몸을 돌렸다. “고시는 고시제. 고시는 밥반찬으로만 묵어, 술안주로는 안 묵어.” 나는 살짝 약을 올리듯 대꾸했다. “경우 아니라면서 선생은 고시에 막걸리 드시고 있구만요.”그가 인상을 쓰며 말했다. 외지인 친구야, 좀 머리를 굴려보시게나, 하는 투로. “막걸리가 뭔 술이여. 밥이제. 그랑게 시방 나는 고시에 밥을 묵는 거시여.”

그랬다. 막걸리가 밥인 막노동 일꾼, 그런 사람들이 쉬는 대폿집이 시장에는 있어야 한다. 다녀 보면 이제 대폿집은 사라진다. 5일장이 서면 임시 대폿집이 늘 성시였다. 이제 그 자리도 국밥집이나 순댓국집 같은 좀 어엿한 식당이 자리한다. 번다한 반찬 만들고, 그때그때 나물이며 조림이며 김치며 생선구이 같은 안주를 만들어 내는 일을 할 할매들이 줄어드는 것이다. 시골의 그런 국밥집마저도 드물다. 인공관절 수술 하시고 요양하거나, 허리가 굽어 유모차 끌고 겨우 운신이나 하고 계신다. 그런 마당에 대폿집에서 안주 만드는 할매들을 만나면 얼마나 반가운 일인가. 녹동에서 만난, 문어 입을 구워 안주로 파는 할매는 나그네에게 푸념하듯 말했다.

“소일하는 거제. 무릎이 아파서 이제 서있덜 못해. 누가 이걸 한당가. 나 죽으면 끝이여.” 요즘 뜨는 익선동 초입에는 생선조림이랑 병어회 잘하는 할매가 한 분 계신다. 어느날 갔더니 의자에 앉아서 요리를 한다. “무릎이 안 좋아 이젠 앉아서 해야 해.” 노인의 무릎을 안주로 내가 술을 마시고 있구나. 그 도가니 힘 들어간 술이 내 입으로 술술 넘어가는 게 참 치사한 일이었다.

박찬일 요리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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