웃음을 과학적으로 연구한 선구자… “인간의 언어능력에 기여” 야심찬 가설 제시
※ 세상을 뜬 이들을 추억합니다. 동시대를 살아 든든했고 또 내내 고마울 이들에게 주목합니다. ‘가만한’은 ‘움직임 따위가 그다지 드러나지 않을 만큼 조용하고 은은하다’는 뜻입니다. ‘가만한 당신’은 격주 월요일 <한국일보>에 연재됩니다.
인류가 ‘웃음’에 주목한 것은, 독일 언어학자 겸 독문학자 만프레드 가이어의 책‘웃음의 계보학’에 따르면, 서양의 경우 고대 그리스 때부터다. B.C 4~5세기 소크라테스와 데모크리토스 등이 형이상학이란 걸 시작한 때부터라는 얘기다. ‘이데아’의 철학자 플라톤은 웃음의 경망스러움을 경멸하다시피 했고, 중세 종교권력은 움베르토 에코가 ‘장미의 이름’에 썼듯이 웃음의 전복적 힘을, 방자함을 경계했다. 하지만 르네상스 이래 대개의 철학자들은 웃음을 긍정했고, 문학과 예술은 웃을 줄 알고 웃길 줄 아는 능력을 자랑 삼았다. 가이어의 저 책은 철학의 아버지라는 플라톤의 저주로부터 웃음을 구하기 위해 후대의 학자와 작가들이 벌여온 분투기라 할 만하다.
20세기 이래 인류는 가히 웃음 만능시대를 살고 있다. 웃음이 혈압을 낮추고 스트레스를 줄여주며, 엔도르핀 같은 호르몬 분비를 촉진해 진통 효과를 발휘하고, 면역력을 높여 아예 만병을 예방한다는 주장을 담은 책들이 있다. 웃음의 새로운 효능(의 징후)들이 밝혀졌다는 연구 사례들도 심심찮게 들린다. 창의력과 퍼즐 풀이능력, 개인ㆍ집단 작업 능률 향상에도 웃음이 기여한다는 실험 결과가 있고, 심지어 잘 웃으면 출세한다는 주장인지 덕담인지를 담은 책도 있다. 아마도 웃음 과학에 마케팅이 과도하게 개입한 결과일 테지만, 이제는 웃음이 한때 자신을 추방했던 중세 교부들의 머리 위에 가부좌 틀고 앉은 듯한 느낌도 든다.
하지만 인류가 웃음을 경험적ㆍ과학적으로 연구한 기간은 기껏해야 20년 남짓밖에 안 된다. 그 전까지 인류는, 주로 철학자와 예술가들은, 웃음을 관찰의 대상이 아닌 사유의 대상으로 여겼다. 본능이 감광된 인화지가 아니라 의식이 투영된 스크린으로 알았고, 또 그렇게 소비했다.
미국 볼티모어 메릴랜드대 심리학과 교수 로버트 프로바인(Robert Provine)은 웃음이 정말 그런 건지 과학적, 실험적으로 연구한 선구적인 학자다. 그는 거리에서, 쇼핑몰에서, 시민들이 웃는 상황을 관찰하고 기록했다. 그렇게 채집한 1,200여 장면을 상황별로 분류해 사람들은 주로 어떨 때 웃는지, 화자와 청자 중 누가 더 웃는지 등등을 분석했다. 언어ㆍ문화권에 따라 웃음의 메커니즘은 어떻게 같고 다르며, 침팬지나 쥐 등 포유동물의 웃음과 호모사피엔스의 웃음은 어떤 차이가 있는지, 성별ㆍ지위별 웃음의 빈도와 양상은 어떻게 다르고 왜 다른지, 궁극적으로 웃음이란 무엇이며 인간은 왜 웃는지 연구했다. 그럼으로써 그는 웃음과 언어 발생의 연관성 등 야심 찬 가설들을 제시했다. 그는 “특종 조류가 자기 종들만의 특별한 노래를 공유하듯, 웃음은 모든 인류가 공유하는 보편의 노래”이며, 웃음이야말로 인간 존재 및 행동의 뿌리, 언어 발생의 비밀을 품고 있는 ‘행동 화석(behavioral fossil)’이라고 주장했다. 스티븐 핑커가 ‘마음은 어떻게 작동하는가’라는 책에서 “웃음의 본질을 밝히기 위해 인류가 2000년 동안 그 누구도 생각지 못한 바를 처음 시도한 학자”라고 평한 프로바인이 10월 19일 혈액암(비호지킨 림프종) 합병증으로 별세했다. 향년 76세.
로버트 레이먼드 프로바인은 1943년 5월 11일 오클라호마 털사(Tulsa)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화학자였고, 어머니는 주부였다. 고교 시절 천체망원경을 직접 만들어 지역 신문에 ‘신동’으로 소개된 적이 있다고 한다. 천체 관측과 망원경 제작은 태권도와 함께 그의 평생 취미였지만, 더 열정을 쏟은 건 기자에게 망원경 이야기를 들려주듯 미디어를 통해 자신의 과학 이야기를 세상에 전하는 거였다.
그는 오클라호마 주립대 심리학과(1965)를 거쳐 71년 세인트루이스 워싱턴대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그 무렵 한창 성가를 올리던 신경화학- 전기생리학이 그의 전공이었고, 신경성장인자를 발견한 공로로 86년 노벨생리의학상을 탄 리타 레비-몬탈치니(Rita Levi-Montalcini, 1909~2012)와 발생학자 빅토르 함부르거(Victor Hamburger, 1900~2001) 등이 그의 대학원 스승이었다. 하지만 별을 관찰하던 그로선 “매일 하루 6~8시간씩 창문도 없는 연구실에 갇혀 신경세포 말단 시냅스에 전극을 들이대는 일”이 너무나 답답했다고 한다.(WP) 그는 신경세포 차원의 인간이 아니라 개체로서의 인간, 웃고 울고 미워하고 사랑하는 그 일상의 메커니즘을 연구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그에게 ‘하하’의 두어 음절 웃음은 복잡한 인간 행동의 가장 근본적인 단서, 이를테면 생물학의 ‘분자’같은 거였다.
웃음의 가치나 의미에 대한 진술들은 많지만, 정작 왜, 어떻게 웃는지에 대한 연구는 전무했다. 그는 웃음 현상을 직접 관찰하기로 했다. 하지만 피실험자를 모아 진행한 실험실 연구는 무참히 실패했다. 웃음이란 게 생각과 달리 “너무 섬세해서 포착하기 힘들고, 통제할 수 없을 만큼 변수가 많아서”였다. 그는 학부생 3명과 함께 웃음을 채집하러 세인트루이스의 거리와 학생회실 등지를 누볐다. 그렇게 1,200개 샘플을 모았다.
분석 결과 그는 웃음에 대한 통념(혹은 선입견)과 달리, 사람들은 웃을 만한 상황에서 웃는 경우는 드물고(10~15%), 오히려 전혀 웃을 일 없는 상황에서 실없이, 예컨대 “어디 다녀 오는 길이야?”라는 말끝에 웃는 경우가 4배 이상 잦더라는 것, 혼자 있을 때보다 여럿이 있을 때 30배나 자주 웃더라는 것, 코미디언이 아닌 이상 타인의 말을 듣고 웃기보다 자기가 말을 하며 웃을 때가 46% 정도 잦더라는 것, 남녀가 대화할 경우 여성이 남성보다 더 많이(126%) 웃고, 그 빈도는 여성들끼리 대화할 때보다 더 잦다는 것 등이었다.
95년 논문에서 그는 웃음이란 정말 웃기거나 어이없거나 하는 등의 상황 자극에 따른 의식적-인과적 반응 현상인 경우보다 무의식적- 본능적 반응일 경우가 훨씬 많다는 점을 근거로, 웃음이 진화와 관련된 사회적 기능을 지닌 보편언어라고 주장했다. 모든 언어권의 웃음이 ‘하하’’호호’ 등 흡사한 모음 어휘로 표현되고, 약 1/15초 길이의 스타카토 음향이 초당 5회 가량 반복되는 음향 패턴도 대동소이하다는 점을 자신의 가설을 뒷받침하는 근거로 제시했다. 그는 인간은 날숨을 통제ㆍ조절하는 능력을 길러 ‘Ha-Ha’식으로 끊지만, 침팬지 등 유인원의 경우 숨 조절 능력이 부족해 ‘Ah~Ah’식으로 비분절적으로 웃는다고, 그 차별적 능력이 호모사피엔스의 고도 언어능력과 관련이 있다고 주장했다.
웃음의 젠더 차이, 즉 여성이 더 많이 더 자주 웃는다는 건, 성차별적인 의미로 해석될 수도 있는 민감한 현상이었다. 그는 관찰 결과의 유의미함을 재차 검증하기 위해, 96년 4월 28일자 지역 신문들에 실린 개인 구애-구혼 광고 3,745건의 문구들을 분석, 여성이 ‘웃음’이란 단어를 62%나 많이 쓴 점을 밝혀냈다.(psychologytoday.com) 그는 남성의 경우 자신의 유머감각을 주로 어필하고, 여성은 유머감각이 있는 남성을 원하는 경향이 뚜렷했다고 썼다. 그건 물론 관념-관습과 교육에서 비롯된 사회적 성 역할의식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한 인터뷰에서 그는 “생각해보세요. 어떤 여성이 ‘나 오늘 어떤 남자를 만났는데 끊임없이 웃는 거야’라고 한다고 해보세요. 그 남자에게 호감을 느꼈다고 말하는 것 같나요”라고 반문했다. 그는 여성들의 푸진 웃음이 남성의 호감을 얻고자 하는 동기에서 비롯된 것일 수 있다고 말하면서 “물론 우리 남자들이 모두 얼간이들(all us poor guys) 같아서 여성들이 웃는 걸 수도 있지만….”이라고 덧붙였다.
훗날 그는 지배-종속 가설, 즉 사회적 지위가 웃음의 패턴에 영향을 끼친 것으로 웃음의 젠더 차이를 이해할 수도 있다고 설명했다.(provine.umbc.edu) 직장에서 하급자는 상급자의 말이 재미있든 없든 수긍하든 않든, 대체로, 무의식적으로 웃을 때가 많다. 그 웃음은, 힘센 개 앞에서 약한 개가 꼬리를 말듯, 자기를 낮추는(self- effacing) 웃음이다. 2000년 에세이에서 그는 “키득키득 잘 웃는 강력한 리더를 본 적이 있는가? 아무 때나 잘 웃는 리더가 있다면 그는 좋은 팀 플레이어일 수 있지만, 결코 회장(president)될 일은 없을 것”이라고 썼다.
인간은 생후 3.5~4개월 즈음서부터 웃기 시작하고, 대개는 간지럽힘(tickling)같은 접촉을 통해 비롯된다고 한다. 웃음으로 호흡 통제력을 익힌 인간이 언어를 창조했으리라는 그의 가설에 따르자면, 태초에 말씀에 앞서 웃음이, 웃음에 앞서 간지럽히기가 있었던 셈이다. 그는 간지럽히기는 인류의 가장 원초적 육체적 교감의 시작, 사회적 삶과 ‘게임’의 근원적인 형식이었다고 주장했다.
웃음은 무리 속 인간이 동질감과 동류의식을 확인하는 수단도 되고, 특정인을 배척하고 조롱하는 표현도 된다. 인류는 다수로부터 소외되지 않기 위해, 진화의 본류에 편입되기 위해 웃음의 기술을 본능적으로 익혔을 것이다. 미국 NBC 코미디 프로그램 ‘행크 맥컨 쇼(The Hank McCune Show)’가 1950년 9월 처음 시도했다는 웃음 녹음트랙은 당초 시청자에게 현장감을 주기 위해 도입된 보조적 효과음이었지만, 이제는 웃음을 창조하고 증식하는 적극적인 장치로 자리잡았다. 웃음은 하품 못지않게 전염성이 강하다. 그런 무의식적 행위 패턴을 프로바인은 “사회적 공감의 뿌리, 무리 행동(herd behaviour)의 흔적(화석)”이라고 주장했다.(nature.com)
1990년 웃음 연구를 본격화한 그는 웃음 연구의 고전이 된 ‘웃음: 과학적 조사(Laughter: A Scientific Investigation(2000)’와 하품과 딸꾹질, 울음, 방귀 등의 무의식적 본능적 행동들에 대한 책 ‘신기한 행동 Curious Behaviour: Yawning, Laughing, Hiccupping, and Beyond(2012)’등 책과 다수의 논문을 발표했고, 신문 에세이와 다양한 채널의 방송을 통해 웃음의 과학을 대중에게 전했다.
웃음은 20세기 말 이래 심리학과 신경과학, 내분비학, 사회학, 경영학 등 여러 분야에서 연구됐다. 메릴랜드대 심장의학자 마이클 밀러(Michael Miller)의 연구에 따르면, 웃음은 면역력을 향상시키고 혈압을 낮추고 스트레스와 우울증을 완화한다. 영국 옥스퍼드대 연구팀은 웃음이 뇌 엔도르핀 분비를 촉진시켜 기분을 좋게 하고 통증을 완화한다. 웃음으로 서로에 대한 경계심을 누그러뜨리면 회의에서도 각자 생각을 자유롭게 말할 수 있게 되고 결과적으로 창의적인 발상과 능률이 향상된다는 런던 유니버시티 칼리지 연구도 있고, 코미디 동영상을 보고 한껏 웃은 집단이 그렇지 않은 집단보다 퍼즐 풀이에서 20%나 좋은 성적을 거두더라는 실험 결과도 있다. 하지만 영국 실험심리학자 겸 진화신경과학자 로빈 던바(Robin Dunbar)에 따르면, 웃음으로 엔도르핀 효과를 얻으려면 “배가 찢어질 만큼 웃어야 한다.(laugh till it hurts.)”(WP, 2011.10) 하버드대 경영대 테레사 아마빌(Teresa Amabile) 교수는 웃음의 다양한 효능이 “웃음 자체의 효능이라기보다는 스트레스 해소의 효능”이라고 주장했다. 프로바인도 웃음의 효과ㆍ효능이란 웃음이 만들어지는 상황, 즉 타인과의 어울림과 대화와 교감의 효과라고 주장했다. 그는 ‘웃음이 최고의 약’이라거나 ‘하루 한 번 웃으면 의사 만날 일이 없다’는 등의 “과장되고 허황되기까지 한(upbeat, often frothy)” 주장들을 못마땅해했다.
그는 자신의 웃음 연구 같은, 큰 연구비 들이지 않고 후원자의 간섭 없이 온전히 호기심을 좇아 가끔 한눈도 팔면서 행할 수 있는 ‘스몰 사이언스’의 열렬한 옹호자였다. 언젠가 그는, 디너파티 같은 자리에서 동석자들이 그의 연구에 관심을 보이다 말고 ‘지금 우리도 관찰 당하는 거냐’묻는 일이 가끔 있다고 농담처럼 말했다. 그의 대답은 “그러지 않는 과학자가 있다면 그는 좋은 과학자가 아닐 것”이라는 거였다. 그는 “과학을 하건 식당을 경영하건 성공 비결은 딱 하나다. 그 일에 몰두하라는 것.(…) 열정을 전등처럼 켜고 끌 수는 없다”고 말했다.(WP)
24시간 끄지 못한(꺼지지 않은) 그 열정 탓인지, 정작 그가 잘 웃거나 유머러스한 사람이었다고 소개한 글은 없다. 실제로 대중강연 영상들에서도, 그가 억지 웃음을 시범 보이는 장면들은 더러 있어도 흔쾌히 웃는 모습은 드물다. 그는 웃음을 두고 유익을 저울질하는 발상들을 못마땅해 할 만큼 웃음을 사랑했지만, 그의 사랑은 늘 얼마간은 탐색의 거리를 유지하려는 사랑, 이를테면 메타적 사랑이었을지 모른다. 최윤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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