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정부가 13일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의 사유화 논란이 불거진 ‘벚꽃을 보는 모임’과 관련해 내년에는 개최하지 않겠다고 발표했다. 초청 대상 기준 등을 재검토한다는 명분을 댔지만 아베 총리의 지역구 사무실에서 유권자를 대상으로 세금이 투입된 정부 공공행사 초청을 주도하는 등 사실상 ‘총리 후원회’로 전락했다는 비판이 확산되면서 ‘꼬리 자르기’에 나선 것이다.
정부 대변인 스가 요시히데(菅義偉) 관방장관은 13일 오후 정례브리핑에서 “정부의 초청 기준과 절차의 투명화를 검토하고 예산 및 초청 인원을 포함해 전반적으로 재검토하겠다”며 내년 개최를 중지한다고 발표했다.
스가 장관은 “내각관방이 (초청 대상을) 정리하면서 총리와 부총리, 정(正)ㆍ부(副)관방장관에 추천 의뢰를 받아왔다”며 총리와 여당 추천을 받아온 사실을 인정했다. 다만 “이 같은 절차는 오랜 관행”이라고 해명했다. 2021년 재기 시엔 예산과 초청 인원의 축소를 고려할 뜻을 밝혔다. 아베 총리는 이날 중지 발표 이후 취재진에 “내년 ‘벚꽃을 보는 모임’에 대해선 이미 스가 장관이 설명한 대로다. 내 판단으로 중지 결정을 내렸다”고 했지만 구체적인 설명을 피했다.
정부와 여당인 자민당은 전날까지 야당의 공세에도 “문제가 없다”는 반응을 보였다. 그러나 이날 아베 총리의 지역구 사무실 명의로 지역구 주민들에게 벚꽃을 보는 모임과 관련한 안내장이 발송된 사실이 드러나면서 상황이 급변했다. 지난달 말 경제산업장관과 법무장관이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로 잇따라 사퇴한 마당에 야당도 아베 총리에 대한 정치자금법 위반 의혹을 제기하며 공세 강화에 나선 것을 고려한 조치로 보인다.
아사히(朝日)신문은 이날 “지난해 벚꽃을 보는 모임 일정을 포함한 관광투어를 안내하는 문서가 총리 지역구 사무실 명의로 유권자들에게 보내졌다”고 보도했다. 이에 따르면 ‘벚꽃을 보는 모임에 대하여’라는 제목의 문서에는 아베 총리 지역구 사무실의 전화번호가 기재됐고, 모임 전날 도쿄 시내 호텔에서 열리는 총리 부부가 참석하는 만찬과 4가지 코스의 도쿄 관광투어를 제시했다. “초청장은 내각부에서 직접 연락주신 주소로 송부됩니다”라고 적혀 있었다.
아베 총리의 지역구인 야마구치(山口)현 시모노세키(下関)에 거주하는 한 남성은 지난해 2월 아베 총리 지역구 사무실 명의로 된 우편물에 담긴 이 같은 안내장을 받았고, 총리의 지역구 비서를 통해 참가 의사를 전했다. 4월엔 아베 총리의 지역구 사무실 명의로 비행기와 관광버스 출발ㆍ도착시간과 아베 총리 부부와의 기념촬영 순서가 적힌 안내장을 받았고, 이후 ‘내각총리대신 아베 신조’ 명의의 정부의 안내장이 도착했다. 7만엔의 투어 참가비용은 현지 여행사로 입금했다.
이와 관련, 아베 총리는 8일 참의원 예산위원회에서 “지역구 후원회를 초청한 것이 아니냐”는 다무라 도모코(田村智子) 공산당 의원의 질의에 “초대 대상에 대해선 관여하지 않고 있다”고 부인한 바 있다.
도쿄=김회경 특파원 herme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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