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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5°C] ‘화’를 파는 이상한 포털

입력
2019.11.14 04:40
3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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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6.5℃’는 한국일보 중견 기자들이 너무 뜨겁지도 너무 차갑지도 않게, 사람의 온기로 써 내려가는 세상 이야기입니다.

포털사이트 네이버의 13일 모바일판 연예 뉴스 섹션. ‘공감별 랭킹 뉴스’의 ‘화나요’ 부문에 방송인 전현무와 이혜성 KBS 아나운서의 교제 뉴스가 올라와 있다.
포털사이트 네이버의 13일 모바일판 연예 뉴스 섹션. ‘공감별 랭킹 뉴스’의 ‘화나요’ 부문에 방송인 전현무와 이혜성 KBS 아나운서의 교제 뉴스가 올라와 있다.

영미권 국가나 일본에서 건너와 방송 활동을 하는 외국인들을 만나보면 공통으로 지적하는 한국 문화가 있다. 바로 욕설의 풍부함(?)이다. 한 외국인은 “영어에서 많이 쓰는 욕은 5개 안팎인데 한국에선 수십 개”라며 “나중에 욕의 뜻을 알고는 더 놀랐다”고 말했다. “한국 욕은 독하다”는 게 그가 내린 결론이다.

욕설은 감정의 배출구다. 한국어에 욕설이 많고 독하다는 건 우리가 그만큼 감정 표출을 적극적이며 거칠게 하고 있다는 방증일 게다. 예의는 감정을 드러내지 않고 말투를 단정하게 하는 일에서 시작된다. 옛 중국인들은 우리나라를 ‘동방예의지국’으로 부르기도 했다. 이제 이러한 호명은 그때는 맞고 지금은 틀린, 사어(死語)처럼 들린다. 욕만 보면, 지금의 우린 분명 예의와 거리가 멀다. 오히려 격정적이다.

습성을 강화하는 건 환경이다. 이성보다 감성을 앞세운 격정의 문화는 21세기 한국 사회에서 다양한 방식으로 확산되고 있다. 세상에 들어가는 ‘관문’(Portal)이란 인터넷 포털 사이트가 대표적이다. 특히 연예 섹션엔 감정의 폭발을 부추기는 ‘지뢰’가 매복돼있다.

네이버는 연예 뉴스 랭킹 섹션에 ‘공감별 랭킹 뉴스’를 운영한다. 기사 하단에 ‘좋아요’ ‘훈훈해요’ ‘슬퍼요’ ‘화나요’ ‘후속 기사 원해요’ 등 5개 항목의 이모티콘을 만들어 기사를 읽은 네티즌이 이 중 하나를 선택하면 그 순위를 매겨 시간별로 관련 뉴스를 노출한다. ‘화나요’ 부문에선 네티즌이 가장 많이 화를 낸 기사를 1~30위로 매겨 보여준다. 13일 연예 섹션에서 네티즌의 화를 가장 돋운 기사는 무엇이었을까. ‘좋은 모습 보여드릴 것... 이혜성, 전현무와 열애 언급’이란 제목의 기사(오전 9시 기준)였다. 방송인 전현무와 KBS 아나운서 이씨의 교제 관련 뉴스다.

포털 사이트의 ‘화나요’란 기이한 분류로 누군가의 사랑은 혐오의 ‘좌표’가 됐다. 포털 사이트에서 화는 ‘상품’이다. 네티즌의 화에 순위를 매겨 줄을 세운다. 이런 과정에서 화는 증폭된다. 커진 대중의 화는 ‘공감’으로 포장돼 클릭 수를 유도한다. 이성보다 정념(情念)으로 얼룩진, 우리가 간과한 포털의 그늘이다.

“대중의 관심을 먹고 사는 게 연예인의 숙명이라고 해도 누군가의 화를 얼마나 부추겼다는 순위까지 알려주는 게 정말 바람직한 정보인가요?” 최근 만난 K팝 대형 기획사 고위 관계자가 기자에게 되물었다. 포털 ‘다음’은 지난달 31일부터 연예 뉴스에 한해 잠정적으로 댓글 서비스를 중단했다. ‘독성 댓글(독플)’에 시달린 설리의 사망을 계기로 ‘독플’의 폐해가 재조명되면서 자정 차원에서 내린 조치였다. 그러나 더 근본적인 고름을 도려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기사를 미끼 삼아 분노를 전시하는 포털 사이트의 기사 노출 방식을 바꿔야 한다는 목소리다. 화를 앞세운 포털 사이트의 격정 마케팅이 더 큰 격정을 불러일으키는 불쏘시개로 악용될 우려가 높기 때문이다.

기우가 아니었다. 전현무와 이 아나운서의 교제 소식이 알려진 뒤 온라인엔 전현무의 연애사를 망라하는 기사들이 쏟아졌다. 일부 인터넷 연예 매체는 전현무의 전 여자친구 실명을 제목으로 활용한 기사까지 송고했다. 포털 사이트는 네티즌의 화를 부추기는 ‘공감 많은’ 뉴스로 전현무의 교제 소식을 분류했고, 일부 인터넷 연예 매체는 그 분노를 기사로 재생산했다. 격정의 연대로 클릭 수를 쫓는 포털 사이트와 일부 연예 매체의 현주소다. 설리의 죽음 뒤에도 악습의 연결 고리는 끊어지지 않았다.

댓글창 폐쇄로 인한 공론의 장 상실에 대한 부작용은 후순위 문제다. 포털 사이트의 격정 마케팅 구조를 개선하는 게 먼저다. 위험한 감정팔이의 중단, ‘독플‘을 끝내는 가장 실효성 있는 해결책이 아닐까.

양승준 문화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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