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지원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이 “우리나라의 통화정책 환경은 주요 선진국과 많이 다르다”고 말했다. 특히 통화(원화)가치가 금리보다는 세계 경기에 크게 좌우되는 점, 경기가 나쁠 땐 통화가치가 떨어져 경기 완충 역할을 한다는 점에서 미국 등과 상반된다고 지적했다.
임 위원의 발언은 이러한 환율 효과를 감안하면 지금과 같은 경기 하강기에 우리나라가 선진국보다 적극적으로 금리를 내릴 이유가 없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지난달 금융통화위원회의 금리 인하 결정 당시 금리를 동결해야 한다는 소수의견을 냈던 임 위원이 자신의 매파적(통화 긴축 선호) 입장을 강조했다는 분석과 함께, 향후 한은이 추가 금리 인하에 신중한 태도를 보일 거란 관측도 힘을 얻고 있다.
임 위원은 13일 출입기자단 대상 강연에서 “지난 수년 간 우리나라 통화정책에 대한 시장 기대가 주요 선진국 통화정책의 흐름을 중심으로 형성되는 경향이 많았다”며 “통화정책 작동 과정은 개별 경제의 구조나 상황에 따라 달라질 수 있는 만큼 우리나라의 정책 선택이 주요 선진국과 차별화되는 것은 결코 이상한 일이 아니다”라며 이렇게 말했다.
임 위원은 통화정책이 실물경기(물가·성장)에 영향을 미치는 주요 경로 중 하나인 환율을 주로 논의했다. 2000년대 들어 원화 환율은 한은의 기준금리 조정에 따른 내외금리차 변동보다는 글로벌 성장률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는 것이 강연의 골자다. 세계 경기보다는 중앙은행의 금리 조정에 큰 영향을 받는 주요국 통화와는 전혀 양상이 다르다는 것이다.
더구나 원화 가치는 세계 경제가 성장할수록 뚜렷한 강세를 보였다. 경기가 부진해야 안전자산으로 부각돼 가치가 오르는 선진국(미국 일본 유로존)과 정반대 양상인 것은 물론, 세계 성장률과 통화가치가 비례하는 여느 국가와 비교해도 그 상관관계가 밀접하다는 것이다. 실제 원화 가치(명목실효환율 기준)와 글로벌 성장률의 상관계수는 0.50으로, 호주(0.29) 인도네시아(0.25) 캐나다(0.20), 브라질(0.12) 등 주요국보다 훨씬 높았다. 이러한 원화 가치의 움직임은 불황기에 경기 하락세를 진정시키는 완충 효과를 낸다고 임 위원은 지적했다.
임 위원은 경기 하강기 기준금리 인하 시점과 폭만 놓고 보면 미국 등 선진국이 우리나라보다 신속하고 과감하게 금리를 내렸지만, 금리와 환율을 합성한 통화상황지수(MCI)를 기준으로 보면 우리나라의 MCI 기조 변화가 오히려 더 선제적이고 적극적이었다고 분석했다. 환율의 경기 완충 기능이 그만큼 효과적으로 작동한다는 얘기다. 그는 “환율뿐 아니라, 금융상품 다양성, 자본시장 발달 정도, 경제주체의 자산ㆍ부채 구성 내역 등 선진국들과 차별화된 여러 요인을 감안해 통화정책의 적절성을 판단해야 한다”고 말했다.
앞서 임 위원은 지난달 금통위 회의에서 이일형 위원과 더불어 금리 인하 결정을 반대했다. 지난해 5월 취임 이래 첫 소수의견 표명이었다. 임 위원의 이날 강연은 앞으로 경기 부진이 심화되지 않을 경우 금리 인하 결정과는 거리를 두겠다는 의미로 해석될 여지가 크다. 그가 이날 우리나라와 같은 신흥국은 경기 하강기에 통화가치가 급락할 위험을 대비해 어느 정도의 내외금리차를 유지해야 한다고 한 점이나, 조심스럽게나마 세계 제조업 경기 지표 반등을 전망한 점도 그의 매파적 성향을 확인하게 하는 대목이다.
이훈성 기자 hs0213@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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