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시문 적십자 경북지사 회장 “없는 사람 사정은 겪어본 사람이 잘 알지요”
“기부금은 기부하는 데 써야죠.” 지난 9일 임기 3년의 대한적십자사 경북지사 제32대 회장으로 취임한 류시문(70ㆍ한맥도시개발 회장ㆍ사진) 회장은 사람들이 기부를 꺼리는 데는 기부금을 모금하거나 관리하는 단체의 관료화와 함께 기부금이 기부목적대로 쓰이지 않는 것도 한 요인이라며 이같이 지적했다.
류 회장은 회장 취임 전부터 사회복지와 문화예술분야를 적극적으로 후원해 온 ‘기부천사’로 유명하다. 지독한 가난과 장애를 극복하고 자수성가한 기업인이다. 그 누구보다 취약계층의 어려움을 이해하고 나눔을 실천한다. 사회복지공동모금회 1억원 이상 고액기부자 모임인 아너소사이어티 서울 1호, 전국 2호 회원이기도 하다. 한국사회적기업진흥원장을 역임했고, 2013년부터 노블리스오블리주시민실천 공동대표도 맡고 있다.
지난 11일 오후 경북 안동시 풍천면 갈전리 대한적십자사 경북지사에서 류 회장을 만났을 때 짝짝이인 그의 신발이 먼저 눈에 들어왔다. 왼쪽 신발 밑창이 오른쪽보다 5㎝이상 두꺼웠다. 그가 어릴 때 다친 흔적이다.
류 회장은 “7살 때 마을 뒷산에서 놀다 떨어지는 비석에 맞아 왼쪽 다리를 크게 다쳤고, 상처가 곪아 절단 위기에 처했다”며 “다행이 다리는 지켰지만 왼쪽 다리는 오른쪽보다 몇㎝ 짧아졌다”고 설명했다. 그날부터 그는 지금까지 지팡이가 없이 거동하기 어렵다. 4급 장애인 등급을 받았다. 두꺼운 신발 밑창도 양쪽 다리 길이를 맞추기 위해서다.
그때 즈음 설상가상 심한 중이염이 찾아왔다. 병원비가 없어 중이염을 방치했다가 양쪽 고막이 심하게 상해 그는 잘 듣지 못한다. 대학원 석사과정을 마칠 때까지 필기를 거의 못했다. 대화할 때 상대 입을 유심히 살피는 것으로 정확한 의미를 파악한다.
찢어지게 가난한 집안 살림살이는 초등학교만 겨우 나온 동생도 생업전선으로 내몰았다. 18살 되던 해 불의의 사고로 지금까지 50년째 병상에 누워있다.
류 회장의 고향은 예천이다. 진주 류씨이지만, 평소 자주 다니던 하회마을 동네 어르신들의 도움 등으로 고등학교를 마쳤다. 하회마을에는 풍산 류씨가 많다. 스스로 벌어 어렵게 고등학교를 나왔고, 대학, 대학원은 교수 등의 도움을 많이 받았다고 했다. 류 회장은 “어린 시절 가난은 운명처럼 따라 다녔고, 많은 사람들의 도움을 받았다”며 “없는 사람 심정은 겪어 본 사람이 잘 아는 만큼, 지금 하고 있는 사업을 열심히 해서 보다 많은 사람에게 은혜를 갚는 것이 나의 소명”이라고 강조했다.
은혜를 갚기 위해 남들보다 더 열심히 노력했고, 마흔이 넘은 나이에 건설안전진단과 보수보강공사를 전문으로 하는 한맥도시개발을 창업했다. 지금은 30명에 가까운 직원과 함께 연매출 250억의 기업을 일궜다.
그의 기부철학은 확고하다. “기부금은 기부하는 데 쓰여야 한다”는 것이다. 기부에 부정적인 사람이 많은 것도 관리단체 탓이 크다는 분석이다. 그는 “기부금 모금단체의 관료화가 가장 큰 문제이고, 그 다음이 기부금 등을 ‘기부’ 자체보다는 관리비용으로 충당했기 때문으로 본다”고 말했다. “기부금 등은 순전히 어려운 이웃들에게 전달돼야 하는데 스스로 신뢰를 저버렸으니 누가 기부를 하겠냐”고 반문했다. 또 “미국 등 기부문화가 활발한 곳은 기부자에게 그만큼 명예로운 대우가 따르는 반면 우리나라는 서로 시샘하고 경계하는 등 고운 시선으로 보지 않는 것도 문제”라고 덧붙였다.
그는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항상 가슴에 담고 살았다”며 “나이가 있다 보니 이제 고향에 와서 인도주의사업에 마지막 생을 쏟겠다는 각오로 맡았다”고 말했다. “익숙함에 속아 소중함을 잃지 말자는 말처럼 평범한 일상이 누군가에게 희망의 날이 될 수도 있다”며 “출향 기업인들도 고향에 돌아와 지역발전에 힘쓰는 문화를 창달하겠다”라고 다짐했다.
류수현 기자 suhyeonryu@hankookilbo.com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