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오스크 까막눈 면해야지” 노인 대상 무인주문 교육현장 가봤더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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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오스크 까막눈 면해야지” 노인 대상 무인주문 교육현장 가봤더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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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11.13 0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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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일 서울 서초구 내곡느티나무쉼터에서 한 어르신이 교육용 무인주문기(키오스크)로 커피를 주문하고 있다. 서초구는 전국 최초로 교육용 키오스크를 자체 개발해 노인 대상 디지털 교육에 활용하고 있다. 이한호 기자

“여기가 극장이라 생각하고 현장구매 한번 해볼게요. 한 분씩 나오세요.”

“이거 누르면 돼요? 이렇게?”

“마지막에 신용카드 뽑는 거 잊지 마시고요.”

11일 오후 서울 서초구 내곡느티나무쉼터. 백발이 성성한 한 어르신이 실제 영화관에서 옮겨놓은 것 같은 43인치 대형 무인주문기(키오스크)와 씨름 중이었다. 서초구가 전국 최초로 자체 개발한 교육용 키오스크다. 식당ㆍ카페에서 음식 주문, 영화 표와 고속버스 표 예매, 민원 서류 발급 등 6가지 상황별로 어르신 눈높이에 맞게 제작된 이 키오스크로 노인 대상 무료 디지털 교육이 이뤄진다. 이날 모인 어르신 13명은 매주 월요일 두 시간씩 4차례에 걸쳐 키오스크와 스마트폰 활용 무료 강좌를 듣고 있다. 정보화 강사인 김은희씨가 앞에서 설명을 곁들인 무인 주문 시범을 보이고 또 다른 강사 김성희씨가 어르신들 사이를 누비며 일대일로 가르쳐준다.

이날 수업에 참여한 고영희(67)씨는 “밖에 나가면 죄다 키오스크라서 당황할 때가 많은데 직접 해보니 크게 어렵지 않아서 이젠 카페에서 주문 정도는 할 수 있을 것 같다”며 “나 혼자 휴대폰으로 영화 표를 예매할 수 있게 되는 게 목표”라고 말했다.

식당부터 극장, 은행, 공항 등 생활 전반에 사람을 대신한 키오스크가 빠르게 확산되면서 노년층의 디지털 소외 문제가 대두하고 있다. 100만명 이상 구독자를 거느린 유튜브 크리에이터 박막례(72)씨가 올해 초 올린 영상 ‘막례는 가고 싶어도 못 가는 식당’은 키오스크 앞에서 작아지는 노인의 모습을 담아 화제가 됐다. 영상 속 박씨는 한 패스트푸드점에서 키오스크 주문을 하면서 한글로 적힌 외래어 ‘테이크 아웃’과 ‘후렌치후라이’의 뜻을 몰라서, 작은 글씨가 안 보여서, 선택 버튼에 손이 닿지 않아서 어려움을 겪는다. 이처럼 노인들이 겪는 생활 속 불편과 소외가 심해지면서 지자체들이 디지털 소외 계층에 대한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11일 서울 서초구 내곡느티나무쉼터에 마련된 ‘스마트시니어 IT체험존’에서 어르신들이 로봇과 함께 태블릿PC로 퀴즈를 맞추고 있다. 로봇과 노래하고, 퀴즈를 풀면서 치매 예방 등 뇌 건강을 증진시키는 취지의 프로그램이다. 이한호 기자

서초구가 2개월 간 연구 끝에 1대당 300만원인 교육용 키오스크를 마련한 것도 그 일환이다. 지난 9월부터 관내 18개 모든 동주민센터를 비롯한 23곳에 키오스크를 비치해 무료 교육을 제공하고 있다. 키오스크뿐 아니라 카카오택시 호출, KTX 표 예매 등 실생활에 유용한 스마트폰 활용법도 가르쳐준다. 이런 기회가 없다 보니 대기자가 줄을 설 정도다. 연말까지 1,500명이 넘는 어르신이 이 교육을 받게 된다. 키오스크 교육을 받은 심규섭(69)씨는 “평소 주차 요금 무인 정산이나 고속버스, 열차 표를 예약하는데 불편을 느꼈는데 마침 이런 기회가 있어 참여했다”며 “주변에 나보다 모르는 사람도 태반인데 친구들에게도 배운 걸 알려줘야겠다”고 말했다.

아울러 서초구는 노년층이 위축되지 않고 디지털 경험을 할 수 있도록 전국 최초로 ‘스마트시니어 IT체험존’을 5곳 운영하고 있다. VR(가상현실)이나 로봇, 1인 미디어 등 신기술을 무료로 경험할 수 있는 이 체험존은 입소문을 타면서 개소 10개월 만에 1만명이 넘는 노인이 다녀갔다.

최샛별 이화여대 사회학과 교수는 “정보기기를 다루는데 익숙지 않아 소외되는 노년층 문제는 우리사회에서 세대와 불공평의 문제이기도 하다”며 “각 지자체에서는 노인들이 습득하기 쉬운 방법을 고민하고 개발해서 이들이 정보기기에 가까워질 수 있는 기회를 더 많이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권영은 기자 you@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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